그리스도교의 전통과 아리스토텔레스 학문의 만남
그리스도교적 전통과 아리스토텔레스 학문 정신의 만남은 원초적으로 원만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셈족의 초월적이고 배타적인 종교적 전통에서 역설적으로 파생된 사람의 민중 종교가 인도유럽어의 한 갈래인 그리스어로 사유하고 말했던 ‘철학’을 만나 길항하고 교섭하는 역사는 유구하지만, 12~13세기 라틴 유럽이 그 길항과 교섭의 한 절정이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파리 대학에서 반복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 금지령이 내려지고, 유명무실해진 금지령이 나중에 철회되고, 종국에는 단죄의 형식으로 다시 한 번 백래시가 일어나는 일련의 과정은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열광과 반감이 교차한 13세기의 지적 풍경을 극적으로 보여 준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는 이 소용돌이 속에서 균형을 잡으려 한 사상가이다. 그는 보나벤투라나 페트루스 요하네스 올리비처럼 아리스토텔레스를 경멸하지도 않았으며, 아베로에스주의자들처럼 아리스토텔레스를 추종하지도 않았다. 스승 알베르투스 마그누스가 갔던 길을 따라 토마스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진중하게 주해하면서 그리스도교 신학을 학문의 반석에 올려놓았다.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 묻지 않는다면 그것은 허상으로서의 행복일 뿐
이 책은 토마스 아퀴나스 윤리학의 출발점이자 정점인 ‘행복’ 개념을 설명하고 윤리학의 각론적 탐구로 나아가기 위해 알아야 할 영혼론의 기초 이론을 설명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실천철학으로서의 윤리신학은 영혼에 대한 지식을 전제로 한다. 특히 인간적 행위의 원리인 의지에 대한 지식이 중요하다. 의지는 무엇이고 어떻게 작용하는가? 의지는 왜 자유로운가? 자유로운 의지는 어떤 의미에서 행복을 원할 수밖에 없는가? 구체적 선택에서 의지(원하는 능력)와 지성(이해하는 능력)은 어떻게 협업하는가? 이런 물음 외에도, 지성과 달리 영혼의 감각적 부분에서 생겨나 의지에 영향을 주는 감정의 현상 또한 살펴보아야 한다. 감정은 무엇이며, 인간에게는 어떤 종류의 감정들이 있는가? 감정적 삶을 피할 수 없이 살아야 하는 인간에게 감정을 이성적으로 다룬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책은 이러한 물음들에 대해 토마스 아퀴나스가 그리스적 정신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특히 『니코마코스 윤리학』과 『형이상학』)을 고갱이 삼아 중세 철학에서 행복과 자유의 의미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정교해졌는지를 탐구하고 있다.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지만, 행복이 무엇인지를 물으려 하는 사람들은 드문 세상이다. 즉 행복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 사라진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나 행복은 행복하다는 느낌도 아니고, 단순히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상태도 아니다. 행복은 모든 사람이 추구해야 할 객관적 이상이자 목적인 것이다. 그것은 결코 우연적으로 얻어질 성질의 것이 아니며, ‘생각 없이’ 행복할 수는 없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중세 시대에 이를 철저히 사유했던 사상가였다. 자연스레 토마스의 윤리신학을 제대로 고구(考究)한다는 것은 곧 서양 중세 윤리학의 핵심에 다가서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