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성이 회화적 이미지를 띤 영활(靈活)의 시
- 전호균 시인의 시는 ‘교응(交應)의 미학’이 절묘하다
소 재 호
(시인·문학평론가·전 전북예총회장)
문학적 표현 방법으로서 ‘상징’의 문제를 맨 먼저 화두로 삼아야 할 당위성을 느낀다. 말하자면 문학이란 상징적 화법의 구현이라고 정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징은 자기 아닌 다른 것을 표현하는 어떤 것, 어떤 유추적인 상호 관계의 힘을 빌려서, 자기 아닌 다른 것을 표현하는 것, 어떤 유추나 유사 관계를 통해서 정신적인 것을 드러나게 하는 감각적인 표현방법, 겉으로 드러난 것(통상 물질적인 것에 속하는 것)이 교합 관계의 힘을 빌려서 그 이상의 어떤 것, 또는 그 밖의 어떤 것(통상 비물질적인 것에 속하는 것)을 의미하는 일종의 표현방법 등으로 정의를 내릴 수 있다.
한편 상징주의 문학론에서는 상징과 더불어 중요한 것이 교응(交應, 조응)의 이론이다. 왜냐하면 상징주의 철학의 한 이론적 기초가 되었던 이원론, 존재와 체계와 본질 체계간의 이원적 대립을 극복하고 거기에 조화로운 통일의 세계를 건설해 주는 것이 교응의 이론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교응은 모순과 대립 속에 빠져 있는 상징주의 철학자 문학에게 아름다운 조화와 통일을 가져다 주는 이론인 셈이다. 상징주의에 있어서 상징이 모든 개체 대상의 존재의 존재성을 해석하는 이론적 근거가 된다면, 교응은 그 개체 대상들간의 존재의 관계성을 해석하는 이론적 근거가 된다. 교응은 실상성을 획득한 개체 대상들의 존재와 본질간의 무루한 통합을 전제로 하여 궁극적으로는 그것들 상호간의 조화로운 통일 양식을 획득해 주는 이론 체계이다.
상징주의에 의하면 교응의 세계를 체험할 수 있는 자는 특이한 능력을 지닌 탁월한 시인뿐이라고 강변한다. 일상적, 주정적(主情的), 논리적 자아를 탈피해서 자아를 객관 세계와 우주적 범주에 전입시켜 만물과 자아와의 신통스러운 교합을 이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시인은 자아가 동시에 타자가 되고 타자가 곧 자아가 될 수 있는 무소불위(無所不爲)의 신통력을 지닌 자인 것이다. 그래야 비로소 시인은 바람과 노닐고 구름과 더불어 이야기하는 교응의 시인이 되고 또 인생을 굽어보며, 언어를 이해하는 견자(見者, 행보의 견해)의 시인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주객 합일의 세계는 물론 인식 대상 상호간에도 이미 비밀스러운 내적 교통이 행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이론으로 보들레르는 그의 유명한 시 「교응」에서 “향기들, 색깔들, 소리들이 화합한다”고 했다. 보들레르의 시 「교응」을 알아 보자
“자연은 사원(寺院), 살아 있는 기둥들이
간간히 어렴풋한 말들을 내보내는
인간은 친근한 시선으로 자산을 바라보는
상장의 숲을 건너 그리로 들어간다.”
이 시는 자연과 인간과 사원 즉 신 사이에 이룩되는 어떤 조화롭고도 숭고한 교합 관계, 합일 관계, 교응 관계를 극명하게 보여 준다. 다시 말하자면 가시적이고 물질적인 현상으로서의 자연과 불가시적인 정령적인 실체인 본질이나 관념으로서의 사원이 하나로 결합되어 있고 또 자연이 암시하고 있는 상징 체계를 빠르게 해독해서 그 안에 들어가 동참하게 되면 지상적 존재인 인간도 천상적 존재인 신의 거처로서의 사원으로 들어가 그 안에서 사원 즉 신과 일체가 되는 숭고한 합일의 세계를 실현할 수 있음을 이 시는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와같이 존재와 본질, 물질과 정신, 현상과 실상, 인간과 신 사이 등에서 이뤄지는 교응 형태를 일컬어 수직적 교응이라 한다.
전호균 시인의 시편들을 감상해보면 저러한 교합의 경지가 시편마다 합융해 있다. 화가이기도 한 전호균 시인은 피사(被寫)되는 만물의 질료를 그 근원적 실재에서 통찰하고 소위 견자(見者)의 논법대로 아우라를 묘사하는 재능이 빼어난다. 「벼루 강물」에서 ‘둥근 세월을 돌아온 / 검은 얼굴들이다’에 보여지는 표현은 절묘하다. 세상(비물질적인 것)을 물질의 형용으로 ‘둥글다’고 표현한 것이 교응의 기법이다. 또 「가을 소리」에서 ‘가을 익는 소리’는 역시 공감각적(共感覺的) 표현으로 빼어나다. ‘익는 것’이 ‘소리’가 되는 교응의 수단이 매우 특별하다. 「쥐수염 붓」에서는 ‘어둠속에서 바람과 흙 냄새가 쫑긋하게 길러낸 수염’이라 했는데, 냄새가 수염을 길러낸다는 표현은 역시 넘나듦의 미학이 아니겠는가? 시마다 현묘한 형상화가 함유된다. 근래 보기드문 현대시를 만난 기쁨이 필자에게도 넘친다.
전호균 시인이 시 편편을 숙독해보면 몇 가지 특징이 보여진다.
첫째, 감성적 정조는 알맞게 조절되고 감상(感償)은 사뭇 절제된다. 지성적 상징성을 띠므로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의 한 사람인 말라르메의 시풍에 근접한다. 온갖 사상(事象)의 실존과 본질 사이, 또는 그 간극의 대칭적이면서 조화로음을 이끌어내며 양자의 틈에서 바람을 쏟아낸다. 그 바람은 리얼리티에서 판타지로 넘어가는, 보여지지 않음을 실감있게 그려내는 견자의 눈뜸이 명확하다. 전호균 시인의 시는 모더니풍의 시로서, 시가 매우 젊다.
둘째, 온갖 수사법의 활용으로 시적 테크닉이 빼어난다. 공감감적 기교가 가장 많이 운용되며, 시의 결기에 가장 이바지되는 형상화가 자주 구조되어 시의 품격이 높다. 또한, 은유나 상징이 시 편편에 고루 작동되고 있다.
셋째, 시의 삼요소인 음악적 요소, 회화적 요소, 의미적 요소가 상호 적절히 배합되고 융합을 거치면서도 특히 회화적 요소가 뺴어난다. 그림으로 형용되는 상징물들은 이미지즘의 단계를 밟는다. 이미지의 아우라 변용으로 다양한 시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시 몇 편을 골라 깊이 음미해 보고자 한다.
우산은 누군가를 위해
손잡이를 항상 비워 놓는다
비를 허락하지 않을 때
우산은 세상의 존재가 된다
컵은 누군가를 위해
항상 공간을 하얗게 비워 놓는다
때때로 생명의 물을 받을 때
컵이 되고 존재가 된다
나도 우산이 되고 컵이 되어
누군가의 마음을 받고
뭇 사람들에게 나의 사랑을 담아주는
존재의 그릇이 되었으면...
오늘 밤은 내 가슴 북극성에 보내어
내 그릇에 담긴 존재가
사랑으로 붉게 물들고 있는지
알아볼 일이다.
-「존재」전문
노자가 말한다. “찰흙을 빚어 그릇을 만든다 / 그 그릇의 밤에 그릇의 쓰임이 있다 / 문과 창을 뚫어 방을 만든다 / 그 방의 밤에 방의 쓰임이 있다 / 그러므로 / 있음의 이로움이 됨은 없음의 쓰임이 있기 때문이다 // ”
비어 있음 [空]은 존재의 근원이라는 말에 다름이 아니리라. 본시 그릇은 ‘비어 놓음’을 목적으로 생산된다. 이 시에서 우산이나 컵은 ‘다른 것의 존재’에 이바지하기 위한 도구이다. 시가 철리(哲理)를 품는 명상의 시이다. 그래서 주지시 범주에 속한다. 시적 기교, 수사법 활용은 절제되어 있다. 시가 시다움은 마지막 연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오늘 밤은 내 가슴 북극성에 보내어 / 내 그릇에 담긴 존재가 / 사랑으로 붉게 물들고 있는지 / 알아볼 일이다” ‘사랑으로 붉게 물들다’의 시구가 시인의 차별화된 정서를 함유한다. 존재와 비존재의 대칭은 다시 상호 보완의 상보적 관계로 조화를 갖춘다. 불경에서 색(色)이 곧 공(空)이요, 공(空)이 곧 색(色)이라는 어법에 상응한다.
벼루 강물에서
불쑥불쑥 문자들이 튀어나온다
둥근 세월을 돌아온
검은 얼굴들이다
거북등처럼 갈라진
연해硯海의 마른강
숨죽여 오래 채색되어 쌓인
지난 삶의 자국을 본다
빛을 잃은 검은 강물이
깊은 침묵이 되어 툭 터지고
강물의 등허리에서 일렁이던
새 빛이 굽이쳐 흐르는 벼루 강물
먹물 냄새가 울려 퍼진다
붓봉은 강물을 끌고
강 밖의 하얀 세상에서
꺾이고 휘몰아치고 고였다 흐르는
벼루강 길을 낸다
저 먹 냄새 진동하는 강물
옛 선비들이 도열하여 나오고 있다.
-「벼루 강물」전문
이 시는 현대시의 전범(典範)이다. 벼루는 물이 담긴 작은 용기이면서 먹을 갈아 먹물을 생산하는 평면 구조의 맷돌인 셈이다. 먹물의 연상은 무한히 확대된다. 문자들, 검은 얼굴들, 삶의 자국들, 선비들… 먹물을 찍어 붓이 흐르는 대로 시대의 문화 문물이 되고, 대문호들의 문장이 되었으리라. 벼루의 옹달샘을 넘쳐 강물이 되고 바다가 되고 강 밖은 광대무변한 세상이 펼쳐진다고 했다. 빛을 잃은 검은 강물(깊은 침묵)이 하얀 세앙을 열고 그 세상에 넘쳐나는 먹물 냄새의 강물 속에서 선비들이 도열하여 나오는 형상을 줄줄이 엮어낸다. 비약적 판타지로서 시적 발상이 기발하다.
호두산虎頭山 밑에서
툭툭 밤톨 떨어지는 소리
마른 햇살에
가을 익는 소리가 난다
길섶에 낮게 세월 엉킨
덤불 더미에 날개 비비는 멧새들
쥐똥나무 열매 먹 빛깔로 익는
자연의 소리가 난다
한낮 가을 익는 소리가
어느 순간 땅에 떨어진다
기러기떼 무리를 지어 하늘 화폭에
그려놓은 가을소리.
-「가을 소리」전문
이 시는 가벼운 단상의 이미지이지만, 시적 묘미는 매우 융숭하다. 저 보모들레르의 ‘교응의 미학’이 매우 번뜩인다. 회화적 요소가 강하여 이미지즘의 시상을 노린 듯 하다. ‘가을’이 ‘익는 것’도 공감각적인데 다시 그 ‘익는 소리’가 등장하여 이중적 공감각으로 기교 부렸다. 비실제를 존재 사물로 비약시킨다. 시공의 무형 개념이 유형의 물상으로 넘나듦이 바로 ‘교응의 미’이리라. ‘기러기떼 무리를 지어 하늘 화폭에 / 가을 소리를 그려 놓고 간다. //’에서 청각이 시각으로 완벽한 공감각적 어법인데, 가을 소리가 그림이 되는, 가을 소리가 가을 그림의 이미지로 익는 형상화는 매우 현묘하다.
미술실 앞뜰
감나무에 앉은 까치
웃고 있는 것을 봅니다
작작 작작
하늘에 새긴 소리가
세상 상처에
살구꽃으로 핍니다
작작 작작
저 꽃잎 속에
우리의 봄소식
반짝 빛나고 있습니다.
-「봄 까치」전문
이 시도 짧은 단형시이나 품고 있는 시적 품격은 매우 높다. ‘하늘의 소리 = 까치소리’ → ‘세상 상처 → 살구꽃’으로 구도되어 있는바, 하늘의 소리는 신의 목소리(하느님의 게시)이며, 까치는 신의 전령사쯤 되는 존재이며, 하늘의 말씀을 까치가 옮겨다가 ‘세상 상처’ 치유를 돕는 형국이다. 세상 상처가 치유된 상태가 ‘살구꽃’핀 상태이리라. 상처의 치유 현상이 ‘살구꽃’으로 형상화 되었으니, 시의 완성도는 너무나 훌륭한 것이다. ‘반짝 빛나고 있음’은 승화된 상태로서, 상처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의미한다. 여기서도 청각과 시각의 공감각적 형용이 절묘하다.
결론에 이르렀다
서로 모의하던 새 몇 마리가
새 한 마리가 날아왔다
잘 마른 소나무에 햇빛을 털고 앉는다
새는 소나무의 마음을 만진다
바람이 지나간 행간을 읽으며
더 많은 질감을 느낀다
겨울 동안 새와 소나무가
푸른 영혼을 새겨넣고 있다
흑백 시간을 풀어내면서
세밀한 손길이 전신에 닿는
또 다른 사랑을 만든다
조용한 공기를 건드리며
환조丸彫의 이목구비가 눈을 뜬다
새 생명이 다시 태어난다
그리고 바람 한 떼가 날아와
온갖 파란 이야기를 불러 놓고 간다.
-「자각상」 전문
미켈란젤로가 그렸다는 ’천지창조‘의 이야기와 흡사한 서사를 품은 시가 「자각상」이다. 신은 땅에서 흙을 가져와 아담이라는 이름의 첫 번째 사람을 만들었고, 아담의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어 그를 살아 있는 생명체로 만들었다. 성경에 있는 설명이다.
이 시에서는 한 마리 새가 날아든다. 절대 유일의 새 한 마리는 신의 대행자 이미지이다. 새가 소나무 마음을 만지고, 바람의 언어를 읽으며 더 많은 질감을 느낀다고 했다. 생명을 깨운 소나무에게 바람은 무엇인가? 아마도 그 신성한 생명의 탄생을 축복하거나 응원하는 세상의 모든 부수적 존재들일 것이다. 새와 소나무는 합일의 관계가 되고 영혼을 새겨 넣어 완전한(영육이 함께 융합한) 생명체가 된다. 영혼의 주고 받음이 동양 사상이기도 한 수수(授受)의 원리쯤 되리라. ‘흑백 시간을 풀어 내면서’ → ‘세밀한 손길이 전신에 닿아’ → ‘새로운 사랑을 만듦’에 진화하는 그림은 탁월한 테크닉을 구사한다. 흑백 시간은, ‘죽은 시간’일 것이며, ‘지난 적 시간일 터’이고, 그 변환으로 화려한 색깔의 빛나는 사랑으로 전이된다. 숨결을 넣자 이목구비가 눈을 뜨고 새 생명이 창조된다. 그리고 한 떼의 바람(하늘 가득 천사의 무리)이 날라와 새 생명(새 사랑)에게 파란(생동하는 빛깔)이야기(서사, 삶을 영위하는 여정)를 불어 놓는다고 하였다. 시적 발상이 경이롭다. 역시 형상화, 공감각적 테크닉이 시의 결기를 복돋운다.
댓잎이
바람을 조각조각 자른다
폐목선에 살던 쥐들
이렛날 부안댁 대숲으로 입주했다
어둠 속에서 바람과 흙냄새가
쫑긋하게 길러낸 수염
대숲 뒤란에서 한 의식을 치르고
잿빛 수염은 제단에 놓여 있다
저녁연기 휘며 가만가만 뻗어 오른다
필장의 기운은
흑백색의 역사를 빗질하고
붓대의 영혼의 뿌리를 옮겨 맨다
이윽고 흰 새벽 자궁 밖에서
탯줄을 끊고 쥐 수염은
세상의 큰 붓으로 다시 태어난다
쥐수염붓,
한 획을 그을 때마다 강이 일어선다
흠뻑 먹물을 찍어
하늘에 휘저은 일필휘지는
새벽 대문에 걸릴 입춘대길이다.
-「쥐수염 붓」 전문
쥐의 빳빳한 수염으로 붓을 만들고 그 붓이 이뤄낸 역사(役事)를 기술한다. 쥐의 수염이 붓이 되기까지 의식이 경건하다. 붓이란 위대한 사명을 띤 인간(학자, 선비)의 분신으로 역할하기 때문이다. 붓이 이뤄낸 세상을 밝은 문명의 세계일 터이고, 인간에게 지혜와 슬기를 주여할 터이다. ‘흑백색의 역사를 빗질하고 / 붓대에 영혼의 뿌리를 옮겨 맨다’고도 하였다. 쥐수염붓은 작은 세필로 시작했지만 장차 세상을 호령할, 거룩한 선언문을 작성할 큰 붓으로 성장할 것이다. 지상뿐만 아니라 하늘에 일필휘지하며, 인간 세상에 입춘대길(立春大吉)의 행운을 받아 내릴 것이다. 전호균 시인의 시편들의 공통 특징은 소아적인 것에서 대아(大我)적인 것으로 확대해가는 묘미를 발견한다. 세계의 확장은 바로 ‘하늘’, ‘대도(大道)’, ‘우주’, ‘진리의 세계’ 등으로 쏠려가는 점층적 수법이 영명하다. 시의 성공 여부는 최초 기발한 발상에서 좌우되는바, 전 시인의 경우 이에 합당하다.
하늘에 괄호문을 초승달이 열었다
그 공간에서 사람들은 산다
바람과 햇살을 두르고
춤추고 노래를 부른다
서로를 묶고 또 묶이어 사랑을 만든다
날마다 길을 만들어 내며
바람의 생각을 좇지만
나는 늘 뒤를 버리진 못했다
그러나 또 다른 문을 나설 것이다
흰빛 목련꽃 같은 곳으로
내가 우러러 받든 하늘에
어느새 조용히 그믐달이 와서
하늘에 괄호문을 닫았다
또 멀리 떠나는 달의 시간
그렇게 만물의 생성과 소멸은
달의 괄호 속에서만 존재한다
-「달의 괄호」 전문
사실 하현달과 상현달은 괄호를 열고 닫는 형상이기도 하다. 달이 처음 시작되고 소멸까지를 한 달로 여기겠지만 만물이 보였다가 지워지는 주기이기도 하고 바닷물의 밀물 썰물도 이 달의 인력에 의한 결과이기도 하다는 과학적 논거도 퍽 인상적인 이야기다. 달의 괄호는 달의 공간이고 확대해 보면 우주의 시발과 종국인 셈이다. 달의 처음과 끝은 ‘만물의 생성과 소멸’이라는 정의가 이 시의 주요 맥락이다. 달에게서 시선을 조금만 움직여도 광활한 하늘이다. 하늘은 그대로 어둠이니 달을 내세워 하늘의 섭리를 설파한다. ‘내가 우러러 받든 하늘에 / 어느새 그믐달이 조용히 와서 / 하늘에 괄호문을 닫았다 / 또 멀리 떠나는 달의 시간 / 그렇게 만물의 생성과 소멸은 / 달의 괄호 속에서만 존재한다’ 이 종결 문단이 시의 주제를 확실하게 각인시킨다.
푸른 하늘 베란다에
간간이 들리는 햇살의 소리가
음악으로 흐른다
양지에 앉은 떡갈고무나무
가지를 만져준다
쇠귀 같은 잎을
초록 소리로 달고 산다
이국땅에서도 외롭지 않은
스텀프타운 커피 원두향 소리가
집안 곳곳에 매달리고
TV의 바람 소리가 뉴스로 흐른다
테이블 위에 커피잔 속의 시간이
피카소 그림으로 떠 오르고
내 시간의 소리가 분홍으로 물든다
하루의 푸른 소리들이
하얀 세상을 밀고 간다.
-「하루의 푸른소리」 전문
전 시인은 화가이지만 상당한 기간 시를 공부한 내공이 보인다. 필자의 짐작일 뿐이지만, 시가 가는 길을 맹랑한 숲에서도 잘도 찾는다. 시 시계의 길이 얼마나 삭막하고, 요리저리 얼마나 헝클어져 있는가? 보들레르가 말한 교응(交應)의 실감을 잘도 터득하고 있다. ‘하늘에 베란다’를 설정하고, ‘햇살의 소리’로 공감각을 건너 ‘음악’으로 승화하는 시의 테크닉을 보면 금방 저런 짐작이 가능하다.
실존과 본질, 존재와 무(또는 존재와 시간), 시각과 청각(또는 청각의 물질 감각), 물상과 개념, 시·공의 감각화, 인간과 자연, 인간과 신 등으로 넘나드는 큰 틀의 조화로움이 전 시인의 시 체계이다. 무지개 빛, 빨·주·노·초·파·남·보 7개를 물감으로 한데 합하면 검은 색이 되고, 이 7개의 빛을 합하면 흰 빛이 된다는 사실을 잘도 알고 있듯이, ‘하루의 푸른 소리들이 / 하얀 세상을 밀고 간다 / ’고 하였다. 전 시인의 시에서 ‘하얀 세상’이 자주 등장한다. 이 하얀 세상은 이상적 세상이리라. 또는 유토피아일 터이고…
김춘수 시인의 주장에 의하면, 시에서 주제는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무의미의 시를 강조하기도 했다. 이미지, 또는 시인의 독특한 세상을 그려내면 된다고도 했다. 전 시인의 경우도 더러는 의미적 요소보다는 회화적 요소가 더 인상 깊게 표상되고 있는 시가 많았다. 이를 현대시의 궁극적 방향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전 시인의 시는 시의 삼요소가 균등하게 배분되면서 또 회화적 이미지로 형상화되는 특별한 색채를 띤다. 물상에 대한 다채로운 아우라가 소위 피카소의 쇼비즘처럼, 행보의 견자(見者)이론처럼, 시적 변용이 활발하여, 시가 영활(靈活)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 보기 드물게 우수한 작품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