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명료한 의식의 대상이어야만 한다, 더불어 역사 기술이 가능하려면 ‘국가’가 전제되어야
헤겔은 역사를 ‘발생한 일’과 그것에 관한 설명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함께 들어 있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역사 기술’의 세 가지 방식에 따라 역사를 ‘근원적 역사’, ‘반성적 역사’, ‘철학적 역사’로 구분하고, 이미 ‘근원적 역사’에서부터 역사에 해당하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구분한다. 여기서 헤겔은 역사철학에서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의식’(Bewußtsein)과 ‘앎’(Wissen)을 ‘흐릿한 상태’와 대비하고 있다. 역사는 명료한 의식의 대상이어야 하고, 역사 기술은 외적으로 현존하던 사건이나 행적 등을 ‘정신 표상의 왕국’으로 가져와 ‘표상의 작품’으로 다듬어야 한다는 것이다. ‘표상’(Vorstellung)은 ‘어떤 것을 의식 앞에(vor) 세우기(stellen)’, ‘어떤 것을 의식의 대상으로 삼기’이다. 명료한 의식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들은 헤겔의 역사철학에서 일차적으로 배제되는 것이다. 헤겔이 자신의 역사철학을 ‘역사에 대한 사유적 고찰’(denkende Betrachtung)이라고 규정할 때, 이 ‘사유’도 명료한 의식의 역할을 강조한 말이다.
헤겔에 의하면, 엄밀한 의미에서 ‘역사 기술’이 가능하려면 ‘국가’가 전제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법칙에 대한 의식’을 갖춘 국가에서야 비로소 분명한 행적과 더불어 행적에 대한 ‘의식의 명료함’도 생기며, 이 같은 의식의 명료함으로 인해 행적을 그렇게 보존할 수 있는 능력과 요구도 생기기 때문이다. 흐릿한 의식은 지나간 것을 기억하지 못하며, 그래서 그것을 설명하거나 표현할 줄도 모른다. 헤겔에 의하면, 역사가 가능하려면 발생한 것에 대한 기억이 있어야 하며, 명료한 의식으로서 기억은 구체적으로 ‘자유의 실현’으로서 국가라는 조건에서만 가능하고, 기억이 가능함으로써 비로소 역사 서술, 즉 역사도 가능하다고 보았다. 따라서 흐릿한 의식을 지닌 민족들과 그들의 희미한 과거는 결코 역사철학의 대상이 아니다. 조금은 서글픈 일이기는 하지만, 세계사에서 우리는 국가다운 국가가 없어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려져 간 수많은 민족을 선명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그리고 싫든 좋든 세계사의 주역으로 기억되는 민족은 언제나 강성한 국가를 이루어 그 시대를 지배한 민족이다. 헤겔은 이러한 민족을 세계정신의 구현으로서 ‘시대정신’이라 부른다. 또한 그는 예를 들어 인도가 아주 오랜 전통을 가진 민족이며, 심지어 언어 등에서 게르만 민족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점도 인정하지만, 그들이 역사를 지녔다는 점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왜냐하면 인도에서는 ‘카스트 제도’처럼 자연적으로 확정된 질서의 항구성이 지닌 ‘부자유’로 인해 어떤 진보나 발전의 궁극목적도 부재하며 ‘기억’의 대상도 부재하기 때문이다.
역사의식의 출발은 헤로도토스, 그러나 역사철학의 성립은 근대에 접어들면서부터
헤겔이 명료한 역사의식의 출발로 삼는 것은 ‘헤로도토스’(Herodotos)이다. “그와 같은 역사 기술가로는 헤로도토스가 있는데, 그는 역사의 아버지이며 창시자이자 가장 위대한 역사 기술가였다.” 헤겔이 위대한 시인으로 높게 평가받는 호메로스의 서사시가 아니라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역사 기술의 시초로 삼는 이유는 이것이 ‘시문학’이 아니라 ‘산문’의 형식을 취한 최초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시문학과 다른 산문이 등장하면서 ‘신비롭고 신화 같은 세계’로부터 벗어난 인간이 살아가는 ‘세속의 세계’가 비로소 ‘합리적 사유’의 대상이 된다. 산문인 역사 기술은 ‘의미 있고 명성 있는 것’을 인간의 언어를 통해 계속 보존하는 데 기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고대에서는 고유한 의미에서 ‘역사철학’이 아직은 성립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보통이다. 헤로토토스와 투키디데스 시대부터 역사를 본격적으로 기록하기는 했지만 그들은 역사를 ‘철학적’으로 사유했다고는 보기 힘들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그들의 방대한 서술에서 ‘역사’를 철학의 중심 주제로 본격적으로 다루지는 못했다. 사실상 근대 이전까지는 역사는 철학의 중심 주제가 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본질적 의미에서 역사철학은 근대의 산물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그 직접적 이유는 ‘역사철학’이라는 용어가 볼테르(Voltaire)에 의해 1765년 처음 사용되었다는 사실에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점은 근대에 와서야 ‘근대다운 주체성’의 등장으로 비로소 인간의 역사 세계와 그 역할에 대한 새로운 의미 부여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평가에서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와 무관하게 역사철학의 정점에 헤겔의 역사철학이 자리한다고 보는 것이 보통이다.
헤겔의 ‘세계사’는 단순히 우연적으로 발생하는 사건의 연속이나 집합도 아니고 ‘발생한 일’로서 철학의 독립적 대상도 아니며, 오히려 정신과 맞먹는 ‘정신의 전체 운동 과정’을 포괄하는 총체로 표현된다. 헤겔의 철학 체계를 정신의 자기 운동에 대한 서술로, 세계사를 정신의 운동이자 그 결과로 본다면, 세계사는 철학 체계와 밀접한 연관을 맺을 수밖에 없다. 헤겔이 예나 시기에 자신의 철학 체계를 본격적으로 구상하면서 이처럼 ‘정신과 세계사의 관계’를 ‘철학 체계’와 연관시키고 있다는 점은 후기로 갈수록 그의 철학 체계 전체에서 ‘역사철학적 관점’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지를 예상케 한다.
헤겔의 역사철학: 보편적 세계사, 보편적 인간다움을 목적으로 삼다
헤겔은 생전에 베를린 대학에서 다섯 차례에 걸쳐 ‘세계사의 철학’을 강의했다. 그가 철학적으로 다루고자 했던 ‘역사’는 엄밀히 말해 특수한 역사가 아니라 ‘보편적 세계사’였으며, 그것은 ‘보편적 인간다움’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그의 역사철학은 엄밀히 말해 ‘세계사의 역사철학’이라고 표현해야 명확하다. 따라서 책에서 다루고 있는 각 민족이나 국가의 역사적 사실이 맞느냐, 틀리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헤겔이 어떻게 ‘역사’를 바라보느냐의 관점으로 텍스트를 읽어야만 그 진의를 파악할 수 있으며, 그것이 곧 헤겔의 역사철학에 대해 합당한 평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