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들의 교과서,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西山大師) 휴정(休靜, 1520~1604)은 임진왜란 때 일본의 침략에 맞섰던 노승장(老僧將)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는 16세기 중반, 숭유억불(崇儒抑佛)의 나라 조선에서 짧았던 조선 불교 중흥기를 이끈 주역이자 조선 시대 내내 위기였던 불교의 명맥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고려 시대부터 3년마다 한 번씩 시행되던 승과(僧科) 시험이 조선 연산군 때 폐지되고, 뒤이어 중종(中宗)은 승과의 완전한 폐지를 공식화하는 등 극단적인 억불 정책이 펼쳐졌다. 1545년, 명종(明宗)이 열두 살 나이로 즉위해 불심이 깊던 문정왕후(文定王后)가 8년간 수렴청정하면서 불교는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다. 문정왕후가 선종과 교종을 되살린 1550년부터 문정왕후가 별세한 1565년까지의 15년이 조선 불교가 일시적으로 다시 일어난 시기였다. 휴정은 문정왕후에 의해 복원된 승과의 첫 합격자로서 곧이어 선종과 교종을 아울러 관장하는 대표 승려가 되었고, 그 막바지 시기인 1564년 이 책 『선가귀감』을 완성했다. 그러므로, 휴정은 이 시기 조선 불교의 주역이며, 『선가귀감』은 그 시대를 결산하며 선불교 부흥의 염원을 담아 만든 뜻 깊은 책이라 할 것이다.
『선가귀감』은 휴정이 불경(佛經)과 선승의 어록(語錄)에서 선불교의 핵심 어구를 뽑아 만든 책이다. 그저 본문만 제시한 것이 아니라 휴정 자신이 본문 조목마다 때로는 상세한, 때로는 간결한 주해를 달고, 일부 조목에는 게송을 붙였다. 휴정은 이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비록 불초한 사람이지만 옛날의 배움에 뜻을 두어 불경을 보배로 여긴다. 그러나 불경의 문장이 몹시 방대하고 대장경의 세계가 넓디넓어 훗날 나와 같은 뜻을 가진 이들이 좋은 글을 고르는 수고를 면치 못할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불경 가운데 중요하고 절실한 것 수백 마디를 뽑아 종이 한 장에 쓰니, 글은 간략하지만 의미는 두루 갖추었다고 할 만하다.
제자 유정이 쓴 발문에 따르면, 이 책은 서산대사 휴정이 묘향산에서 10년 머무는 동안 50여 권의 경론(經論)과 어록에서 공부에 긴요한 말을 뽑아 만든 것이라고 한다. 이 책은 불교에 입문하는 불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중생을 위한 불교 입문서 성격의 선집이다. 이 책은 조선 후기는 물론 오늘날까지 여러 차례 재간행을 거듭했고, 일본에서도 17세기 이래 20세기 초까지 여섯 차례 이상 간행되면서 불자들의 교과서 역할을 했다.
불교 경전은 기원전 1세기경부터 기록되기 시작했고, ‘8만 4천의 가르침’이라고 말할 정도로 방대한 양의 경전과 어록이 존재한다. 그 내용이 매우 철학적이어서, 한 가지 경전을 깨치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기록한 경장(經藏), 계율을 기록한 율장(律藏), 경전 주석서 논장(論藏)을 합한 삼장(三藏)에다 불교 관련 문헌 전체를 집대성한 것을 대장경(大藏經)이라고 한다.
바다처럼 넓은 대장경의 세계에서 중생을 감발할 수 있는 절실한 문장을 뽑는다는 건, 지극히 중생을 사랑한 서산대사 휴정의 마음이 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휴정에 의하면 부처의 말씀과 조사(祖師)의 말씀은 공부의 끝이 아니며, ‘문자로부터 벗어난 한마디 말’에 이르는 공부의 시작일 뿐이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이 책의 152개의 조목을 마음으로 새겨본다.
새롭게 정립하는, 정본(定本) 『선가귀감』
『선가귀감』은 현재 한문본(묘향산 간행본)과 한글본(송광사본) 두 가지 판본이 존재한다.
한문본은 1564년에 처음 간행되었다. 이 책은 현재 전하지 않지만, 1579년(선조 12) 간행본에 1564년(명종 19) 금강산 백화암(白華庵)에서 쓴 한문으로 된 서문이 전하는바, 최초 편찬 시기는 1564년으로 추정할 수 있다. 현재 전하는 가장 이른 시기의 한문본은 1579년에 사명당(四溟堂) 유정(惟政)과 의천(義天) 등이 교정하고 유정이 발문을 써서 출판한 이른바 ‘묘향산 간행본’이다. ‘묘향산 간행본’은 휴정의 최초 저술과 크게 달라졌다. 이 점은 한글본과 대조해 보면 알 수 있다. 최초 저술에 있던 58개 조목이 삭제되고 일부 구절이 첨삭되면서 편차(編次)도 일부 수정되었다. ‘묘향산 간행본’의 수정이 온전히 휴정 자신이 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휴정 생존 시기에 출판된 것이므로 이쪽을 완성본, 혹은 정본(定本)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은 올바른 판단이다. 현재 시중에서 구해 볼 수 있는 『선가귀감』의 대다수도 1579년 간행 한문본(묘향산 간행본)의 번역본이다.
한글본은 최초의 한문본이 나온 1564년에서 5년 뒤인 1569년(선조 2) 금화도인(金華道人)이라는 호를 쓰는 승려가 이 책을 한글로 번역해서 묘향산 보현사(普賢寺)에서 간행했다. 금화도인은 휴정의 제자 의천(義天)으로 추정된다. 1569년의 이 한글본이 현재 전하는 『선가귀감』 한문본과 한글본을 통틀어 가장 이른 시기에 간행된 책이다. 이 한글본은 1610년(광해군 2) 순천 송광사(松廣寺)에서 재간행되어 널리 읽혔다.
『선가귀감』 정본은 한문본(묘향산 간행본)이라는 것이 대다수의 입장이다. 그러나 이 책의 역자 정길수 교수의 의견은 조금 다르다. 한글본(송광사본)이 최초 출간된 한문본과 시기상으로도 가까울 뿐만 아니라 휴정의 최초 저술 형태를 충실하게 간직하면서 의미 맥락을 파악하기 쉬운 측면이 있다고 본다. 또한 한문본에 비해 한글본은 훨씬 많은 조목을 포함하고 있으며, 후대에 생략되어 한글본에서만 볼 수 있는 조목의 본문과 주해 중에 오히려 불교 초심자의 이해를 돕는 내용이 많다고 보았다. 이에 정길수 교수는 한글본을 저본으로 삼고, 필요한 경우 한문본에 추가된 주해와 송(頌)을 함께 제시해서 두 본의 장점을 아울렀다.
이 책은 한문본(묘향산 간행본)을 번역한 기존의 책들보다 최초의 한문본에 더 가깝고, 한글본과 한문본을 비교하여 빠트린 내용 없이 충실하게 번역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정본의 정립이라 이를 만하다.
이 책은 총 14장 152개의 조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152개의 조목 중에서 한문본에는 없고 한글본에만 있는 조목이 58개에 달한다. 매 조목은,
저본의 본문(불경과 선승의 어록) ⇨ 주해(휴정의 주석과 해설) ⇨ 역자의 해설
순서로 3단계로 구성되었다.
휴정은 좋은 글을 뽑아 단순히 나열한 것이 아니라 조목 간의 연관을 고려해 네 영역으로 구상했는데, 이 책에서는 의미 맥락을 고려해 휴정이 구상한 네 영역을 다시 총 14장으로 세분했다.
이 책의 1장은 총론에 해당한다. 여기서 ‘마음’이라고 이름을 붙여도 옳지 않다는 ‘무엇’이 책 전체의 화두로 제시되고 있다.
2장에서는 ‘선’(禪)과 ‘교’(敎)에 관한 논의를 폈다. ‘선’과 ‘교’를 분변하되 하나로 아우르다가 결국 ‘선’의 길로 결단하는데, 그 핵심은 “‘선’은 부처의 마음이고, ‘교’는 부처의 말씀이다”라는 말과 ‘교(敎)의 뜻을 놓고 오직 이 순간 자기 마음에 드러난 일념으로 선(禪)의 주된 뜻을 자세히 참구하면 출신활로를 얻을 수 있다’라는 구절에 있다.
3장부터 13장까지는 참선의 방법, 수행의 방법에 관한 내용이다.
3장에서는 화두를 참구함으로써 깨침에 이른다는 간화선(看話禪)의 세계를 다루었고, 4장에서는 미혹의 본질을 논했다. 5장에서는 돈오(頓悟) 이후에 점수(漸修)해야 하는 이유, 6장에서는 환(幻)을 떠난 진리의 세계를 논했다. 7장에서는 삼보(三寶)의 의미를 밝히고, 8장에서는 수행의 계율을 명시했다. 9장에서는 좌선(坐禪)을 통해 이르는 청정세계를 이야기하고, 10장에서는 동요하지 않는 정진(精進)을 논했다. 11장에서는 자신을 향한 공부를 역설하고, 12장에서는 수행자의 잘못된 자세를 낱낱이 질타했으며, 13장에서는 외물을 좇지 않는 곧은 마음에 진리의 길이 있음을 거듭 말했다.
14장에는 앞에서 말한 수행의 방법과 이 책 전체의 마무리에 해당하는 내용을 담았다. 선승들의 병을 논한 조목이 앞 조목의 내용을 이으면서 ‘자유인’의 경지를 말하는 내용으로 이어지고, ‘자유인’을 징검다리 삼아 책 전체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두 조목에 이른다. 일체의 분별을 다 놓고 집착에서 벗어나 내 안의 신령한 빛을 꿰뚫어 보라는 것이 이 책의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