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상에서 끌어올린 경이로운 순간들
하기정 시인에게 산문은 사면초가의 문학이다. 시는 은유 속으로 숨거나 직유에 기대어 버티다보면 넌지시 통용되지만, 산문은 피할 수도 돌아갈 수도 비껴갈 수도 없다. 가리려고 하면 가리려는 의도가 보이고, 비어 있는 것을 채우려 하면 단번에 발각된다. 다 드러내기에는 어쩐지 망설여지는 게 산문이다.
하기정 산문 『건너가는 마음』은 세 개의 부로 나뉘어 있다. 1부 「빈 문서와 빚문서 사이에서」는 평범한 일상에서 끌어올린 경이로움을 압축과 은유로 제시한 생각들을 모아놓았다. 아포리즘의 문장으로 관념화되는 것을 피하려고 애쓰면서, 경험 속에서 반짝이는 시적인 순간들을 바라본다.
2부 「혼자인 것의 아름다움」은 구체적인 삶의 이면과 표면에 어리는 무늬들을 골라놓았다. 시인으로서 시와 문학을 바라보는 눈과 대상과 현상에서 오는 생각들을 자분자분 들려준다.
3부 「오래전 그런 말이 있었지」는 마음에 아로새겨진 어린 시절과 경험들이 현재에 이르는 동안 영향을 주고받고 이어나가는 장면들을 담아놓았다. 시인을 이루고 있는 것들, 시가 되고 산문이 되려는 생각과 말들의 연원이다.
무엇인가를 쓰면서 날마다 다시 태어나는 사람
하기정 시인은 아름답게 살기 위해 문학을 시작했다. 혼자 있어도 같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 글을 쓰면서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는 것이 문학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여럿의 ‘나’이다. 그 안에서 한 사람은 죽고 또 한 사람이 태어났다. 쓸 때마다 새로운 나를 만나는 것. 무엇인가를 쓰면서 날마다 다시 태어나는 사람이고 싶은 것. 시인에겐 그것이 문학이었다.
『건너가는 마음』에는 어느 아름다운 날, 하기정 시인의 눈에 들어온 것, 시인의 손에 쥐어진 것, 시인의 발이 닿은 곳에 당신도 오시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쓴 글들이 모여 있다. 가만히 바라보고 어루만지고 싶은 것들을 소소하고 고요한 어둠 속에서 빛처럼 반짝이는 문장으로 그려놓았다.
하기정 산문 『건너가는 마음』은 시인이 마주한 삶과 문학에 대한 나름대로의 답이기도 하지만, 또 하나의 질문이기도 하다. 시인에게 문학은 답을 제시하기보다는 좋은 질문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