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인 2015년 KBS-TV 대하드라마 〈징비록〉 이후 ‘징비(懲毖)’는 신드롬이 되었고, 서애 류성룡(西厓 柳成龍, 1542~1607)의 『징비록』 국역과 축약본들이 일약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 바탕에 서애 종가 풍산류씨의 현양 노력과 함께,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의 『위대한 만남: 서애 류성룡』(2007)이 있었다. ‘징비 신드롬’은 서애 연구모임 ‘징비포럼’과 학술지 『서애연구』로 결실을 맺었다. 『중용의 길: 류성룡 리더십』(기파랑 刊, 2025년)은 ‘징비 신드롬의 아버지’ 송복 교수의 20여 년에 걸친 서애 천착의 총결산이다. 책 제목처럼 ‘중용(中庸)’을 키워드 삼아, 『서애연구』 등에 기고했던 글들을 다듬고 재배열하고 일부 장(章)을 새로 썼다.
서애정신은 ‘마음(심덕)’의 중용과 서애 시관(時觀)
“어느 정도가 돼야 명사나 이름 뒤에 ‘정신’을 붙일 수 있을까?”
그에 값하는 대표적인 정신으로 책은 우리의 ‘화랑정신’과 ‘충무공정신’, 세계사에서 ‘로마정신’을 돌아보고, ‘서애정신’ 또한 정신이라 불리기에 손색없다고 결론짓는다.
서애정신의 요체를 책은 ‘중용’에서 찾았다. 사서삼경 『중용』의 그 철학적, 사변적 중용이 아니라, 심덕(心德)으로서 중용이다. 『중용』의 첫 문장, “성자 천지도야 성지지 인지도야(誠者, 天之道也. 誠之者, 人之道也)”에 두 번 나오는 성(誠), 그리고 그 자연스러운 발현인 용(用)과 공(公)까지, ‘성·용·공’을 저자는 서애정신의 핵심으로 꼽았다. 임진왜란의 거의 유일한 개인 기록인 『징비록』은 그래서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서애의 징비정신, 징비철학이 특히나 돋보이는 것은 실패한 과거의 징(懲)에 머무르지 않고 만들어갈 미래의 ‘비(毖)’를 겸한 시관(詩觀, 시간 의식)에 있다고 보았다.
‘서애 리더십 7장면’과, 위대한 만남들
‘성·용·공의 중용 리더십’이 생생한 발현으로 책은 류성룡의 생애 후반, 특히 왜란 직전부터 전쟁 후 낙향해 타계할 때까지 20여 년에서 일곱 장면을 꼽았다. 400여 년 전의 일인데도 지금 우리의 리더십 실종 현실에 주는 울림이 묵직하다.
통찰. 서애의 통찰력은 미래에 대한 예지(豫知)이고 예지(叡智)였다. 당시로서는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한반도 지킴의 통찰력이었고, 그 통찰력으로 한반도는 끝내 조선의 것으로 돌아왔다.
지감(知鑑). 서애는 어떻게 이순신을 알아봤을까? 어떻게 종6품을 종3품 당상관으로, 육군을 수군으로, 그중에서도 요직인 전라좌수사로? 사람을 보는 그의 지감력은 너무 놀랍고 너무 적중했다.
방법. 군량 확보의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모속(募粟)과 공명첩(空名帖)… 한민족 최초의 국민개병제 속오군(束伍軍)…. 서애는 ‘무엇을 할까’의 체(體)와 ‘어떻게 할까’의 용(用)을 겸비한 리더였다.
준비. 예감(豫感)하면 예견(豫見)하고, 예견하면 예측(豫測)하고, 예측하면 예비(豫備)한다. 서애는 준비의 달인이었다. ‘준비’의 유무가 임진왜란 평양 전투 승리와 벽제관 전투 패배를 갈랐다.
유연(柔然). 야만적인 명나라 장수들도 ‘조선에는 오직 류성룡뿐’이라는 듯, 이상하리만큼 서애 앞에서는 순했다. 서애의 유연의 리더십엔 단순히 연성(軟性), 부드러움 이상의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권력 비(非)이데올로기화. 그는 보스가 아니라 리더였다. 위압으로서의 권력자가 아니라 존경으로서의 권위자였다. ‘책임을 지는 자’였고 ‘책임을 묻는 자’가 아니었다. 그의 자리는 봉사(奉事) 봉공(奉公)의 자리였다.
물러남의 리더십. 그리고 서애는 떠났다.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현실 정치가로서 서애 최대의 공적은 임란 7년 거의 내내 영의정과 도체찰사(都體察使)로서 정무(政務)와 군무(軍務)를 총괄하며 전쟁을 승리로 이끈 데 있다. 여기에는 그가 직접 발굴하고 중용(重用)한 이순신(李舜臣, 1545~1598)과의 ‘위대한 만남’이 큰몫을 했다. 한국사에서 류성룡-이순신에 필적할 위대한 만남들로 책은 △삼국통일을 이뤄 한민족·한국문화의 기틀을 놓은 ‘김춘추-김유신의 만남’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가능케 한 ‘이승만-미국의 만남’, 그리고 △한국을 선진국 반열에 올릴 기초를 닦은 ‘박정희-일본의 만남’을 더 꼽는다.
시심(詩心)으로 돌아가 서애를 읽다
그러나 도대체 무엇이 서애를, 한국은 물론 세계사적으로도 유례가 드문 리더십의 소지자로 만들었는가? 역사 기록과 서애 자신의 서술적 기록을 넘어서는 ‘서애의 본연(本然)’을 그의 의식의 저류(底流)’에서 찾기 위해 서애의 시심(詩心)을 탐구하는 것이 저자의 근년의 접근이었다. 그래서 『중용의 길』 9개 장(章)의 3분의 1이나 차지하는 마지막 3개 장을 책은 서애의 시와 시심에 할애했다. 서애 자신 약관을 갓 넘긴 27세 시에 내비친 대로, ‘큰 도(道)’는 직설만 갖고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기에.
대도(大道)는 입과 귀로는 전하기 어렵나니
이런 마음가짐이면 어딜 가나 유유자적해진다네. (334)
(大道難從口耳傳, 此心隨處自悠然. 대도난종구이전 차심수처자유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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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송복 교수는 2024년에 미수(米壽, 88세)를 맞았다. 『중용의 길』은 송 교수의 학계 제자들과 서애학 도반(道伴)후학들이 주축이 되어 스승을 기려 준비한 봉정집(奉呈集) 기획 중 하나다. 출판기념회를 겸한 봉정식은 2025년 5월 2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