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문화 매거진 연구자의 서재 〈반디뉴스〉
인기 연재 칼럼!
18가지 키워드로 그림을 삐딱하게 보는
만화미학자의 미술 이야기!
미술과 만화는 비슷한 미학적 접점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대학에서 미학과 미술사를 전공하였으며, 현재 대학원에서 미학과 미술사를 가르치고 있다. 그러면서 만화미학자로 활동하면서 사단법인 한국만화웹툰평론가협회장을 맡고 있다. “아니 만화에도 미학이 있나요?” “대체 만화를 미학을 따져가면서 봐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는 저자는, 만화와 미술은 상호 밀접한 관계 속에서 각자 발전해왔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오히려 독자들에게 던진다.
“원시시대의 동굴벽화는 과연 미술의 역사일까?”
프랑스의 라스코나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에 그려진 벽화가 미술의 시작으로 교육받았다. 하지만 이 동굴들보다 1만 5천 년 전에 만들어진 프랑스 동남부에서 발견된 쇼베 동굴벽화에는 동물의 움직임과 원근법 등이 잘 표현되어 있다. 그래서 쇼베 동굴벽화는 정지된 순간을 포착한 회화보다 움직임을 표현한 만화에 더 가깝다.
사실 만화는 미술에 적잖은 빚을 지고 있으며, 미술의 역사 속에서 만화의 다양한 표현기법과 세계관을 배웠으며, 더 나아가 알레고리 예술로서 발달하게 되었다. 반면, 중세시대 종교개혁 시기에는 종교개혁 진영이나 반종교개혁 진영 모두 만화 같은 시사적인 그림, 다시 말해 캐리커처를 각 진영의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는 프로파간다로 활용했다.
근현대에 와서는 비어즐리, 고야, 도미에, 콜비츠, 피카소 등 많은 화가들이 캐리커처와 회화를 같이 그리기도 했다. 현대 미술이나 팝아트, 다다이즘은 의외로 만화의 독특한 표현기법에서 적잖은 영향을 받아서 탄생했다.
이처럼 시각예술로서 미술과 만화는 역사적으로 많은 접점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만화는 미술의 한 장르로서 논의될 수도 있다. 만화와 미술의 비교예술을 연구하는 학문이 만화미학이다. 그래서 만화미학은 만화에 대한 이론과 역사, 비평을 다룰 뿐만 아니라, 만화에 적용된 미술사의 이론과 역사, 그리고 화풍을 비평하고 연구하는 학문이다.
미술은 일기이자 자위다
저자는 에곤 실레나 에드바르트 뭉크처럼 자의식이 가득한 화가들의 자화상을 보면서, 미술은 인간의 역사를 담고 있기도 하지만, 인간이 쓴 일기라고 생각하게 되었으며, 더 나아가 인간이 만든 미술이 인간화가에게 고통과 위안, 불쾌함과 즐거움, 고민과 이상, 오해와 이해 등 무수한 많은 감정과 인식을 주기도 한다. 결국 미술은 인간이 스스로 누리는 자위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미술을 삐딱하게 보는 어느 만화미학자의 이유 있는 궤변’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똑같은 그림이라도 좀 다르게 보는 만화미학자의 미술 이야기를 담고 있다. 미술과 만화의 접점이 될 만한 18가지의 키워드를 뽑았다. 천지창조, 아름다움, 취향, 그로테스크, 죽음, 캐리커처, 여자 누드, 팜므 파탈, 풍자, 남자 누드, 리얼리티, 판타지, 로맨스, 나르시시즘, 포스터, 트릭 아트, 반전, 영웅 ….
이들 키워드는 다양한 주제와 소재를 다룬 미술작품을 보는 관점이기도 하지만, 글과 그림을 통해서 칸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만화를 분석하고 비평하는 만화미학에서도 논의되는 관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은 미술가와 미술작품에 대한 정보, 그 미술작품에 대한 이유 있는 색다른 생각, 더 나아가 각 꼭지별로 키워드와 연관된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서 그동안 우리가 봐왔던 미술작품을 새롭게 보는 시각을 제공할 것이다.
18가지 다른 키워드로 미술을 색다르게 읽다
이 책을 시작하는 키워드는 천지창조다. 미술사에서 천지창조를 그린 작품들은 의외로 많다. 하지만 그리스 철학자들에게 중요한 논쟁거리 가운데 하나였던, 세상만물의 근원은 무엇일까라는 주제에 맞는 그림은 누구의 어떤 작품일까? 바로 미켈란젤로가 로마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그린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다.
이 천장화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말로써 천지를 창조하고 모래로 만든 아담에 생기를 불어넣어서 인간으로 만드는 그림이 있다. 성경대로라면, 여호와는 아담의 코 가까이서 생기를 불어넣어야 하는데, 그림은 정작 아담과 여호와가 서로 손가락을 맞대고 있다. 왜 일까? 또한 과연 천지창조와 인간창조는 하나님의 말과 생기로 이뤄졌을까?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에 대비되는 작품이 바로 18세기 시인이며 화가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태고의 그날〉이다. 이 그림에서 천지를 창조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는 알 수 없는 모양의 기구가 들려 있다. 이것은 무엇이며, 그는 왜 이것으로 천지를 창조하고 있을까?
이처럼 만화미학자인 저자는 미학과 미술사를 전공한 덕분에, 미술을 그냥 역사적인 맥락으로써만 이해하지 않는다. 뻔하게 생각하고 봐왔던 그림들이 다른 각도로 보이기 시작하며, ‘아름다움’이라는 진정 무엇이며, 왜 인간은 아름다움을 자신의 취향이라고 착각하면서 열광하는지를, ‘추’라는 대척점이 없다면 ‘아름다움’도 없다는 점. 더 나아가 결국 대중이 공감하는 아름다움의 기본 원리에는 균형, 비례, 조화라는 황금비율의 수학적 원리가 그 바탕에 깔려 있음을 다 빈치의 〈모나리자〉에서 찾아낸다. 모든 미술작품에는 그 탄생배경도 있지만, 같은 주제를 말하지만 전혀 다른 방식의 이야기를 풀어내기도 한다.
그 외에도 추는 왜 그로테크라고 표현하는지, 우리가 터부시하는 죽음은 결국 추의 아름다움인지, 추의 미학으로서 최초의 그림인 캐리커처가 무엇인지, 여자 누드는 정말 아름다움의 결정체인지, 미술사에서 여자를 왜 살인자로 묘사하는지, 그림의 진짜 무기가 왜 시대풍자인지, 남자 누드는 정말 완벽하기만 한지, 미술 화파마다 왜 리얼리티를 다르게 표현하는지, 그림은 왜 공상에 빠진 판타지인지, 로맨스는 과연 정말 순수하기만 한지, 나르시시즘이 왜 미술사에서 중요한지, 포스터는 정말 그림이 맞는지, 미술은 눈속임 예술인 이유는 무엇인지, 그림에서 반전은 어떻게 표현되는지, 영웅은 진짜 용감했는지 등 18가지의 이유 있는, 그러나 다른 관점의 미술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 이 책은 늘 봐왔던 뻔한 미술작품을 다루지만,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본 미술 에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