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록작 소개
안과 겉
「안과 겉」은 카뮈의 생전에 출판된 그의 작품들 중에서 사실상 최초로 발표된 것이니 가히 첫 작품이라 할 만하다. 이 책의 중요성과 한계는 작가 자신의 그 유명한 서문과 로제 키요의 해설로써 충분히 헤아려진다고 믿는다. 항상 투명하고 단순한, 그러나 정열에 찬 카뮈의 문체에 비하여 이 젊은 시절의 글은 서투르고 불분명한 구석이 많다. 그러한 한계가 때로는 우리에게
유별난 감동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그 서투름 속에서 번민하는 젊음의 진동이 아직도 가라앉지 않은 채 우리의 영혼 속으로 직접 전달되어 오기 때문이다. 빛과 어둠, 프라하와 비첸체, 죽음과 태양 등으로 끊임없이 변주를 거듭하는 삶의 ‘안’과 ‘겉’ - 이 두 가지의 뗄 수 없는 상관관계는 알베르 카뮈가 다루는 필생의 주제다. 그래서 작품 「안과 겉」은 그의 모든 작품의 출발이요 원천이다. 이 작품을 이해하지 못하고 카뮈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극단한 의식의 극한점에서 모든 것이 하나로 융합되면서 나의 생은 송두리째 버리든가 받아들이든가 해야 할 하나의 덩어리처럼 생각되는 것이었다.” 이것이 카뮈의 해답이다. 안과 겉은 ‘하나’의 덩어리인 것이다. 안과 겉 중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한다는 것은 삶에 대한 배반이다. 흔히 ‘표리(表裏)’라고 번역해 온 표제 ‘L’envers et l’endroit"를 나는 좀 더 쉽게 ‘안과 겉’으로 옮겨 보았다. 텍스트로는 플레이아드판 카뮈 전집 제2권 『ESSAIS』에 실린 것을 선택했다. 1935~1936년 작, 1937년 출간.(김화영)
결혼
알제리에서 이탈리아로, 유적의 땅에서 지중해를 다니며 카뮈는 몽상에 젖는다. 신들이 내려와 사는 티파사에서의 결혼은 태양과 압생트 향기, 푸른 하늘, 돌무더기, 그리고 향초들의 육감적인 냄새로 뒤덮여 있다. 제밀라 언덕에 부는 바람, 하늘에서 무겁게 나는 커다란 새들을 바라보며 카뮈는 이 땅 위에서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카뮈 자신이 얻으려는 것이 이 수동적인 정열 속에서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되는 것임을 느낀다. 하룻날이 밤 속으로 기우는 이 짧은 순간들에 그 무슨 비밀스러운 신호들과 부름들이 깃들어 있기에 그의 마음속에서 알제는 그 순간들과 그토록 깊숙이 이어져 있는 것일까? ‘사람이 가슴으로 확신할 수 있는 진실은 그리 많지 않다. 피렌체 들판의 포도나무와 올리브나무들을 엄청나게 말 없는 슬픔으로 뒤덮어 가는 어떤 저녁, 어둠을 가르며 달리는 기차 안에서 나는 내 속에서 무엇인가 맺힌 매듭이 풀리는 것을 느낀다. 슬픔의 얼굴을 한 이것이 행복이라고 불리는 것임을.’ 카뮈가 바라는 삶과 진리는 썩어 없어지는 진리이며, 자신의 목마름에서 기인하여 행복의 물을 찾아 나서는 여정이다. “인류의 온갖 악들이 우글거리는 판도라의 상자에서 그리스인들은 다른 모든 악들을 쏟아 놓고 난 뒤에 맨 끝으로 가장 끔찍한 악인 희망을 꺼냈다. 이보다 더 감동적인 상징을 나는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흔히들 생각하는 것과는 반대로 희망은 체념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산다는 것은 스스로 체념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이방인」의 중심 주제가 되는 카뮈 철학이 드러나는 여행 에세이. 1936~1937년 작. 1938년 출간.
여름
카뮈는 「여름」에 붙인 서평 의뢰서에 이렇게 썼다. “이 책은 1939년에서 1953년에 걸쳐 쓴 산문들을 모은 것이다. 이 글들의 공통된 뿌리는 명확하다. 이 글들은, 비록 서로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지만, 모두가 다 ‘홀로(solitaire)’라는 개별성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이 주제는 저자의 초기작들 가운데 하나인, 1938년 출간한 「결혼」의 주제이기도 하다. 이십 년의 세월이 지나 「결혼」에 실린 글들은 그러므로 그것들 나름대로 어떤 길고 변함없는 추구의 길을 증언하고 있는 셈이다.” 그는 또한 자신에 대한 최초의 중요한 연구서를 발표한 로제 키요에게 1956년 1월 21일 편지를 보내며 다음과 같이 명시했다. “당신의 연구가 「여름」에서, 그리고 나의 마흔 살에서 멈춘 것은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비록 순전히 우연이긴 하지만 이 해는 나의 창작 작업과 삶에 있어서 일종의 전환점이기 때문입니다.” 1953년 이후 카뮈는 앞서의 ‘부조리’와 ‘반항’의 사이클에서 ‘사랑’과 ‘절도’의 사이클로 진입하며 그의 마지막 미완성 유작인 『최초의 인간』의 집필 준비를 시작한다. 카뮈의 치열한 ‘여름’을 느낄 수 있는 에세이. 1939~1953년 작, 1953년 출간.(김화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