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네 가지 ‘사소한’ 주제로 만나는
일상의 ‘깊은’ 울림
이 책에서 동은 스님은 스물네 가지 ‘사소한’ 주제와 관련해 직접 경험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40여 년 전 토굴 시절 사용하던 ‘찻잔’을 보고는 초발심을 경책하는 선지식이라도 만난 듯 정신이 번쩍 들기도 하고, ‘일주문’ 앞에서는 생애 가장 위대한 포기이자 탁월한 선택을 했던 출가의 순간을 떠올리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산책길에 만난 ‘의자’ 덕분에 오솔길에 멈추어 서서 숲의 고요함과 아름다움을 더 깊이 음미하기도 한다.
찻잔, 일주문, 의자… 이런 것들은 누구나 비슷비슷하게 인식하고 있는 개념이지만, 자기 시각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저 그런 ‘사소한 존재’가 아닌 아주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이 책이 독자들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바로 이것이다. 우리 삶을 풍성하게 채워주는 것이 이런 사소한 존재들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마음에 깊이 되새기는 일 말이다. 그리하여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존재에 대해 각자가 의미를 부여하고 곱씹어보면 ‘사소함’은 결국 ‘소중함’이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세상 모든 일에는 사연이 있다. 혼자서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어지면 저것도 없어진다. 부처님께서도 6년 고행 끝에 깨달으신 것이 바로 이 연기의 도리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끝없이 상호작용을 한다. 우연이든 고의든 그것을 피할 수는 없다. 이 한 몸 살아내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인연들이 모이고 모여 애쓰고 있는지 모른다. 수많은 인연들의 도움이 있어야 마침내 성공도 하고 아름다운 꽃을 피워낼 수 있는 것이다.” _‘책을 다시 펴내며’ 중에서
“티끌 하나에도 시방세계의 진리가 담겨 있다”
티끌 같은 사소한 일들이 우리 삶을 바꾼다
〈법성게〉에 따르면, ‘한 티끌 가운데에 시방세계의 진리가 담겨 있다(一微塵中含十方)’고 했다. 진리는 깨달은 자의 큰 뜻에만 있는 게 아닌, 티끌 같은 사소한 것들 어디에나 있다는 말이다. 저자인 동은 스님은 이런 사소한 것들을 깊이 바라볼 수 있어야 자기 삶이 더 소중해지고, 거기서 인생의 깊은 의미를 배울 수 있다고 말한다. 즉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정답이 따로 없으며, 각자가 간직하고 있는 이야기들을 깊이 바라볼 수 있어야 내 삶이 풍성해진다는 이야기일 테다.
이를테면 ‘와불’이란 주제에서 스님은 오래전 인도 순례길에서 친견한 와불을 떠올리며, 45년간 중생을 위해 설법하시다가 쇠약해지고 지친 몸으로 사라수 아래 누워 다시 일어나지 못한 부처님의 마지막 모습을 들려준다. 그러면서 ‘가장 인간적인 삶이야말로 가장 수행자적인 삶’이라는 생각을 와불을 통해 자연스레 펼쳐놓는다.
이 책은 이렇듯 ‘나’만의 시각으로 존재를 바라보고 이해하고 가슴에 새길 수 있어야 자기 삶이 더욱 풍성해질 수 있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를 스물네 가지 소재를 통해 잔잔하지만 깊은 울림의 메시지를 전한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소중한 물건이 하나쯤 생기게 마련이다. 내겐 오래된 찻잔 하나가 그러하다. 출가 후 가장 힘들었던 시절, 지리산 토굴에서 정진할 때 사용하던 찻잔이다. 투박하며 멋도 없고 여기저기 금이 가 있다. (…) 그런데 이 찻잔에 차 한잔하고 있노라면 문득 퇴색되어가는 초발심을 경책하는 선지식이라도 만난 듯 정신이 번쩍 들게 해주니 나에게는 아주 소중한 물건이 아닐 수 없다. ‘사소한’ 찻잔 하나가 수행의 의지처가 되고 위대한 포기의 밑거름이 되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이다.” _‘시작하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