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헌석 문학평론가의 서평 중에서 발췌하였음)
#1 - 김명순 마리보나는 뇌성마비 환자였지만, 기억을 생생하게 되살릴 정도로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였습니다. 기억의 특정 부분은 부모와 형제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구술하였습니다. 〈(온몸에 열이 불덩이처럼 올라) 일주일이 흘러가고 열이 차차 내렸지만 저는 일생을 흔들거리며 살아야 하는 뇌성마비 장애자가 되었는데, 당시 의사 선생님들은 제 병명조차 모를 때였습니다.〉 〈정상아일 경우에는 제멋대로 돌아다니며 세상을 배울 나이에, 저는 일어나 앉지도 못하는 가엾은 애기였기에 아빠 엄마의 지극한 정성 속에서만 나날〉을 보낼 수 있었다고 기억합니다.
#2 - 김명순 마리보나의 기억은 6.25 피난길에서도 ‘체험한 기억’과 ‘들은 이야기’ 등이 겹쳐 당시의 상황을 증언하였습니다. 강릉에서부터 걸어 묵호항, 그곳에서 경비정을 타고 죽변항에 이르는 과정이 구체적이고 생생합니다. 〈경비정 갑판에 익수네와 자리 잡은 우리들은 엄마가 짐 속에서 꺼내어 주는 떡과 엿으로 저녁밥을 대신하고 저와 작은오빠는 짐보따리 틈에서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는데 언니한테 저를 업혀 주기 위해 엄마가 저를 깨워서 깨어보니 캄캄한 한밤중이었고, 배는 죽변항에 도착하여 피난민들은 모두 내리는데 아빠, 엄마를 따라 작은오빠까지 보따리를 짊어지고 배에서 내려〉 어디로인지 가고 있었다고 구술합니다.
#3 - 김명순 마리보나는 부자유스러운 상황에서도 시대상을 정밀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6.25 당시에는 노루나 여우를 잡아, 부족한 식량을 대신한 것 같습니다. 〈엄마가 노루 고기를 사다가 불고기를 해서 온 식구들이 먹은 적이 있었는데, 지금 봄이 되어갈 이때 여우를 잡아 와 고기를 판다며 자야 엄마는 엄마더러 저에게 먹여보라고 해서 엄마는 여우고기를 사다가 맛있게 양념하여 숯불에 구워 저에게 먹여주는 걸 저는 소고기인 줄 알고 맛있게 먹었는데, 나중에 엄마는 그 고기가 여우고기였다고 알려주었습니다.〉
#4 - 김명순 마리보나는 학교에 다니지 않았으면서도 큰오빠, 언니, 작은오빠 등을 통하여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반나절’에 구구셈을 완벽하게 익혀서 주위를 놀라게 합니다. 〈어느 날 아빠, 엄마가 모두 나가시고 저와 작은오빠가 둘이서만 있을 때였습니다. 작은오빠는 저한테 “내가 하라는 대로 해야지. 안 하면 너 혼자 있게 내버리고 난 엄마, 아빠한테로 간다.”하고 말하기에 저는 오줌 누는 것도 물 마시는 것도 작은오빠의 도움 없으면 안 되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혼자 있게 된다는데 겁이 덜컥 난 저는 말도 제대로 못 하면서 그러겠다고 했더니 작은오빠는 “좋아. 그러면 내 하라는 대로 하는 거다.”하고 다짐을 하고서 구구법을 가르쳐 주는데 저는 작은오빠가 저를 버리고 도망갈까 봐 기를 쓰고 따라 했더니 반나절 사이에 다〉 외웠다고 구술합니다.
#5 - 김명순 마리보나는 성장하여 성모님의 사랑을 증언하였는데, 어린 시절에 가톨릭 신앙과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맹수이 배 고프제?”하고 가톨릭 신자인 이 할머니는 손에 들고 있던 묵주를 허리춤에 꼬고 국을 데워 제가 먹을 만치 밥을 말아 부추김치 해서 저에게 먹여주면 저는 맛이 있어 만족해진 마음에 “아 맛있다.”하고 말하면, “맛있어? 맛이 있거던 많이 묵으라.” 말하며 밥을 숟갈로 떠서 제게 먹여주는 이 할머니는 천주교 신자답게 기도 생활도 열심히〉 하는 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