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도령. 너, 미래를 맞춘다던데.”
내일을 미리 알면, 우리의 내일은 정말로 행복할까
‘잘 맞는 타로점 봐 드립니다.’ ‘미래 운명을 예언합니다’ ‘꿈풀이, 운세 상담’ 등 사람들은 늘 다가올 자신의 미래를 알고 싶어 한다. 그것을 미리 알 수만 있다면 엄청난 비용이 들어도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미래를 알고 대비하면 더 나은 삶,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을 거라 여기면서. 그런데 정말, 나에게 일어날 일을 미리 안다면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 운명의 방향을 바꿀 수 있을까?
중학생 재승은 내일 일어날 일을 하루에 한 개씩만 예지해 주는 블랙북을 손에 넣는다. 처음에는 들뜬 마음에 로또 번호도 알아내려 하면서 블랙북을 요긴하게 쓰겠다며 다짐한다. 하지만 같이 급식 먹을 변변한 친구 하나 없이 학교와 집, 학원만 오가는 단조로운 일상을 살던 재승은 곧 블랙북에 적을 내일에 대한 질문이 동이 나게 된다. 이대로 질문을 허투루 낭비할 수 없다고 생각한 재승은 처음으로 같은 반 아이들을 관찰하기로 한다. 그리고, 블랙북에 반 아이들의 내일에 관한 질문을 적기 시작한다. ‘우리 반 김형민은 내일 이로치 포켓몬을 잡을 수 있을까?’, ‘최서인이 내일 김형민한테 고백하면 사귈 수 있을까?’, ‘정유주는 내일 아이돌 오디션에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을까?’ 등등…….
그렇게 재승은 처음으로 내일이 기다려진다. 궁금해진다. 친구들도 재승을 ‘박도령’이라 부르며 관심을 보이고, 조용하던 재승의 일상은 점점 친구들로 북적거린다. 갑작스레 변한 일상에 재승은 휩쓸리듯, 블랙북에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질문을 의미 없이 써 내려간다. 그렇게 큰 폭의 감정 변화를 경험하며 갈팡질팡하던 재승은 점점 자신만이 아는 누군가의 ‘내일’의 무게를 체감한다. 동시에 내일에 대한 발설이 누군가에겐 행복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두려움이자 괴로움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런 재승을 더욱 절망하게 만드는 것은 내일을 미리 아는 것만으론 같은 반 소진이를 폭력에서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오늘보다 내일을 더 욕망하는 사람들에게
블랙북이 가르쳐 주고 싶었던 진짜 답은?
그동안은 혼자 지내도 별 아쉬움이 없다고 생각했던 재승의 일상에 블랙북과 반 친구들이 끼어들면서, 한번 생겨난 일상의 균열은 거침없이 번져 나간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균열을 메우는 것은 그 균열의 원인인 ‘친구’들이었다. 국어 수행 평가로 모둠별 단편 영화를 촬영하게 된 재승은 블랙북이 연결해 준 인연인 수행 평가 만점의 회장과 그림책 작가가 꿈이자 결석이 잦은 소진, 밤늦게까지 아이돌이 되기 위한 연습을 하느라 학교에서는 잠만 자는 유주와 같은 모둠이 되어 10분 내외의 단편 영화를 만들면서, 자신이 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소진의 가느다란 손목에 든 검붉은 멍이 궁금해지고, 계속 치마 대신 체육복 바지만 입는 것이 신경 쓰인다.
‘나’에 한정되어 있던 재승의 시야가 ‘타인’에 머물게 되자, 재승은 타인과 고민을 나누고 함께 큰 소리로 웃는 것도 꽤 괜찮은 일이라는 것을 어렴풋 깨닫는다. 동시에 블랙북의 질문을 나를 위한 질문에서 타인을 위한 질문으로 스스로 바꾸어 나간다. 그리고 그 질문으로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한다. 이전의 재승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드라마틱한 변화는 마침내 재승이 블랙북에 ‘우리’라는 단어가 들어간 질문을 아로새기게 한다.
다른 이의 아픔을 공감하고 이해하는 법을 알게 된 재승은 그제야 애써 외면해 온 자신의 상처를 마주한다. 조각난 기억의 파편을 하나씩 이어 붙여 거울처럼 내일을 비춰야 함을 깨닫는다. 그리고 더 이상 블랙북에게 의지하지 않고 내일을 향한 발걸음을 내딛는다.
매일이 고인 웅덩이인 것 같지만 결국 소중한 이들과 쌓아 가는 하루하루가 내일로 향하는 힘찬 물줄기임을, 그것만이 변하지 않는 예지임을, 《블랙북》은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