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국민의 참여와 관심속에 더욱 성숙해지고 아름다워진다. 선거는 단순히 대리 인을 뽑는 행위에 그치지 않고, 주권자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미래를 함께 그려가는 중요한 과정이다.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는 아름다운 과정이다. 정치는 현실 제약하에서 최선의 결 과를 빚어내는 행위, 즉 ‘가능성의 예술’(비스마르크)이다. 그 핵심적 기초는 선거이다. 이 과정 에서 공직선거법은 공정하고 투명한 선거를 보장하기 위해 존재한다.
공직선거법은 정치의 본질이 아니다. 좋은 정치를 위해 활용하는 유용한 수단이며, 지남철 처럼 방향을 잡아주는 도구이다.
“북극을 가리키는 지남철은 무엇이 두려운지 항상 그 바늘 끝을 떨고 있다. 여윈 바늘 끝이 떨고 있는 한 그 지남철은 자기에게 지워진 사명을 완수하려는 의사를 잊지 않고 있음이 분명하며 바늘 끝이 가리키는 방향을 믿어도 좋다. 만일 그 바늘 끝이 불안스러워 보이는 전율을 멈추고 어느 한쪽에 고정될 때 우리는 그것을 버려야 한다. 이미 지남철이 아니기 때문이다”(민영규, 신영복의 ‘담론’)처럼 공직선거법이 떨림과 울림 그리고 열림을 중단하면 그 역할은 죽은 나침반과 같이 생명력을 다하고 더 나아가 소통의 단절, 단단한 억압의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
선거라는 큰 여정을 떠날 때마다, 공직선거법이 떨림과 울림을 계속 유지할 때 정치과정이 바른길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라고 규정했다. 이는 우리 모두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정치에 참여하고, 우리의 사회를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마이클 파머는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에서 “정치는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방식, 우리가 사회를 만들어가는 방식에 대한 것이다”라고 논파했다. 이는 정치가 단순한 권력 다툼이 아니라, 우리가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서로 소통하고 협력하는 과정임을 강조한 것이다.
또한 그리스의 위대한 정치인 페리클레스는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해서, 정치가 당신에게 관심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지 마라”라고 웅변했다. 이는 정치에 무관심할 때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경고하며, 모든 시민이 정치에 참여해야 하는 이유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공직선거법은 과도하게 규제 중심적 내용이고 그 구성도 복잡하여 유권자 친화적이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마치 매트릭스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어, 많은 이들이 그 내용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공직선거법이 연주가가 악기를 다루는 것보다 더 복잡하다는 말이 있다. 이러한 규제 중심의 법체계는 자유로운 선거운동을 제한하고, 유권자와 정치행위자 간의 소통을 어렵게 만들고 역설적으로 참여의 장벽으로 공정한 선거과정에 있어 걸림돌이 되고 있다.
공직선거법은 정당과 후보자 등 정치행위자들에게 명확하고도 친절한 안내자가 되고, 주권자인 국민에게는 아름다운 민주주의를 이끌어 내는 악보와 같아야 한다.
본질은 단순함에 있고 그 단순함은 아름답다(Simple is beautiful). 그리고 작은 것은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 공직선거법의 규제도 단순하고 작아야 한다.
헌법재판소가 “정치적 표현에 대하여는 ‘자유를 원칙으로, 금지를 예외로’ 하여야 하고, ‘금지를 원칙으로, 허용을 예외로’ 해서는 안 되는 점은 자명하고, 선거의 공정성을 이유로 정치적 표현을 과도하게 제한하면 정치신인이나 신생정당이 자신들을 알릴 기회를 충분히 갖지 못하게 되어 오히려 선거의 공정성이 저해되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헌법재판소 2023 헌가12 결정 등)라고 밝히고 있듯이, 앞으로의 공직선거법은 표현의 자유의 날개와 정치적 약자에게 기회의 창을 열어 주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는 우리 모두가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고, 다양한 목소리가 공정하게 반영되는 선거문화를 조성하는 데 필수적이다. 공직선거법이 이러한 방향으로 발전할 때, 우리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아름다움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자본주의 토대 위에서 한국 대의민주주의는 작동한다. 그러나 자본권력과 행정권력과 각종 사회권력으로부터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켜내야 한다. 선거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일반유권자의 선거운동이 광범위하게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자유로운 선택권을 방해하는 재력 · 권력 또는 위력 등에 의하여 행하여지는 선거운동이 제한되어야 한다. 즉 실질적인 선거운동의 자유를 제한하게 하는 ‘갑질’의 선거운동이나 기회의 평등을 침해하는 선거운동이 제한되어야 한다.
정치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길항관계에서 ‘생활세계의 식민화’를 경고하며, 우리가 일상과 동네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함을 강조했다. 일상적 민주주의와 동네 민주주의는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할 것이다. 일상적 민주주의와 동네 민주주의는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가 울려 퍼질 때 비로소 완성된다. 선거운동의 자유는 그 목소리를 가두지 않고,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할 수 있는 날개와 같다. 선거운동의 자유는 동네민주주의의 숨결이며, 공정하고 활기찬 공 동체를 만드는 필수 조건이다.
김수영 시인은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에서 이렇게 묻는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 50원짜리 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 년 한테 욕을 하고 / 옹졸하게 욕을 하고 / 한번 정정당당하게 / 붙잡혀 간 소설가를 위해서 /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이 시는 우리가 왜 작은 일에만 분노하고, 진정으로 중요한 일에는 침묵하는지 자문하게 한다. 공직선거법은 우리의 민주주의를 자본과 권력의 영향력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한 중요한 도구이다. 우리는 작은 일에 분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민주주의의 본질을 지키기 위해 큰 목소리를 내야 한다.
따라서 대의민주주의에서 유권자가 자유롭게 정치적 의사를 형성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선거운동은 가장 공정하고 필수적인 과정으로서 아름답게 이루어져야 한다. 표현의 자유가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 생존에 필요한 ‘숨 쉴 공간’이 보장되어야 하며(대법원 2019 도13328 판결) 선거운동은 바로 그 공간 위에서 피어나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선거운동은 아름답다(Election campaigning is beautiful)!
선거운동은 각 정당과 후보자와 유권자가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비전을 공유하는 장이다. 이 과정이 더욱 깨끗하고 공정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공직선거법의 올바른 이해와 준수가 필수적이다.
이 책, “공직선거법 완벽 이해(이론과 실제, 그리고 전망 : 선거운동은 아름답다)”는 유권자가 보 다 쉽게, 그리고 좀 더 명확하게 공직선거법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고자 기획되었다.
공직선거법의 전체 조항 중 정치적 표현의 영역에 밀접한 조문을 중심으로 이론은 알기 쉽게 풀어 설명하였다. 단순히 법조문을 나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보다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신분별, 주체별, 기간별, 그리고 행위 사례별로 내용을 재구성하였다.
또한, 이 책은 공직선거법을 이론과 실제, 전망의 세 가지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접근하고 자 하였다.
공직선거법의 기본적 틀과 이론적 배경을 충실히 설명하는 한편, 현실에 적확한 방대한 판례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구체적인 행정해석 사례를 통해 공직선거법의 쓰임이 타당성 있게 구현되고 적용하도록 ‘해설서’와 실질적인 ‘안내서’에 준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전망 부분에서 현행 공직선거법의 한계와 문제점을 짚어보고, 보다 자유롭고 공정하고 실효성 있는 법체계를 마련하기 위한 법 개정 방향도 모색하였다.
이 책이 주권자인 유권자들과 정치행위자들이 공직선거법을 알기 쉽고 정확히 이해함으
로써, 우리 사회가 더 투명하고 신뢰받는 선거문화를 만들어 가는 데 작은 밀알과 소박한 등 불이 되기를 기대한다. 선거운동의 아름다움을 함께 느끼며, 더 나은 대한민국 공동체의 내 일을 만들어가는 여정에 이 책이 동행하기를 바란다.
먼저 출간한 「정치자금법 이해 : 이론과 실제 그리고 전망」(2024. 박영사)과 마찬가지로 이 책도 선거관리위원회 동료직원들의 집단지성의 산물이다.
치열한 선거현장에서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고군분투와 헌신하고 있는 각급 선거관리위원회 직원 동료들의 넉넉한 생각의 증류와 지혜 그리고 눈과 귀를 통해 수집된 이야기를 양피지로 삼았다. 공정과 정의라는 책임윤리와 신념윤리로 펜을 손에 쥐었다. 굽이치는 현실 정치의 강과 같이 속깊고 끊임없이 흐르는 공직선거법의 속성과 강도, 굴곡, 은밀함에 숨겨진 민주주의의 파도를 잉크로 쓰고자 했다. 그러나 중과부적(衆寡不敵)이다.
공직선거법과 정치자금법, 정당법 등 정치관계법이 진정한 법치주의의 버팀목이 되었으면 한다. 정치관계법이 시민의 것이었으면 한다. 어느 법학자의 다음의 글처럼 정치관계법도 인권과 평화와 민주주의를 담아내는 마중물이었으면 한다.
“문제는 그 통치하는 사람과 법의 관계다. 통치자 위에 법이 자리하는 경우를 우리는 ‘법의 지배(Rule of Law)’ 혹은 ‘법치주의’라 이름하고, 반대로 통치자 아래에 법이 자리하는 경우를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라 한다. 전자의 법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권력을 통제하고 억제하는 법이다. 후자의 법은 통치자가 권력을 행사하는 수단이자 폭력으로서의 법이다. 전자의 법은 인권과 평화와 민주주의를 담아내는 그릇이지만, 후자의 법은 국민을 정치로부터 소외시키고 타자화하는 통치전략이 흘러가는 통로를 이룰 뿐이다. 그래서 법이 정치를 규율하는 민주사회와 달리 권위주의 사회는 법이 아닌, 법의 외관을 띤 폭력을 정치의 수단으로 삼는다. 법으로써 국가의 폭력을 은폐하고 또 엄폐하고자 하는 것 이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유지되며, 그 핵심은 공정한 선거와 법치주의에 있다. 그러나 21세기에 K-democracy라고 자부해온 대한민국에서 대명천지에 부정선거 음모론이 확산되고 있다. 탈진실(post-truth)시대의 정보왜곡과 유튜브 알고리즘의 편향성을 숙주로 증폭되고 있다. 아집과 독선, 폭력성과 교활함, 무지로 결합 된 정치적 행위자들은 이를 활용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도구로 삼고 있다. 여기에 학벌 중심의 관료주의와 비겁한 엘리트들이 순응과 동조로 책임을 방기하면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재현하며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한나 아렌트는 말했다. “생각하지 않는 것이야 말로 악의 근원이다.” 지금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악의 평범성에 굴복할 것인가?, 아니면 논리와 신뢰로 민주 주의를 지킬 것인가?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허위와 광기의 음모론을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이성과 상식으로 민주주의를 지킬 것인가?
이 책을 쓸 수 있게 직접적인 동기와 영감을 준 출퇴근 지하철에서 마주친 모든 분들께, 칼 세이건의 아름다운 헌사를 빌려 그들의 삶이 더 밝고 맑고 풍요로워지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