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건축은 누가, 어떻게 만드는가?
건축주를 중심으로 다시 쓴 건축 이야기
건축은 개인 또는 공동체의 열망을 공간으로 구체화하는 작업이다. 그러므로 개인뿐만 아니라 공동체도 ‘제2의 건축주’로서 건축의 전 과정에 개입한다. 건축물의 외형적 화려함이나 규모, 비용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공동체가 품었던 열망이 이루어졌는지, 그들이 건축물을 통해 실현하고자 했던 가치가 얼마나 충실하게 구현되었는지가 핵심이다. 이 책의 4장~7장은 바로 그런 ‘좋은 건축’의 사례들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케냐 마히가 호프 고교의 ‘빗물 코트’ 지붕은 화려한 자재나 복잡한 공법과는 거리가 멀지만 공동체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꾼 희망의 지붕이 되었다. 이 구조물의 건축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제목은 ‘Building Hope(희망을 짓다!)’다. 건축이란 곧 희망을 짓는 일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제목이다. 미국 앨라배마의 시골 마을에 건설된 ‘메이슨즈 벤드 커뮤니티 센터’는 폐차장에서 구해온 자동차 앞유리로 외관을 덮었지만 마을 주민 전체를 넉넉하게 품어주는 대승건축이 되었다.
현대적인 철근콘크리트나 철골구조 대신 주민들이 손수 만든 진흙 벽돌로 지은 부르키나파소의 간도 초등학교는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행복감을 선사하며 더 나은 미래를 꿈꾸게 만들어주었다. 이 소박한 학교를 지은 건축가는 2022년에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 상’을 받은 디에베도 프랑시스 케레다. 건축 과정에 참여한 사람들만이 그로써 얻어낸 결과의 진가를 알아볼 수 있다는 그의 말에는 좋은 건축을 만드는 비결에 대한 남다른 통찰이 담겨 있다. 글쓴이는 이렇게 말한다. “(건축주인) 주민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면서 그들과 함께 사회적 해결책을 제시하는 건축, 그래서 누군가에게 늘 고맙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건축물이 이 땅에 더 많이 지어져야 한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로 손꼽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건축주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글쓴이는 건축가 가우디의 천재성보다 그의 무모한 계획을 고심 끝에 승인해준 건축주 ‘성 요셉 협회’에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경험도 없는 새파란 건축가가 언제 끝날지도 알 수 없는 엄청난 규모의 성당을 짓고자 했을 때, 건축주는 대체 무슨 생각에서 가우디의 제안을 받아들였을까? 1882년에 착공되어 143년째 지어지고 있는 이 건축물에 얽힌 수많은 사연들을 상세히 소개한 뒤에, 글쓴이는 이런 결론을 내놓는다.
“건축가 가우디가 아무리 뛰어났어도 ‘그래, 이런 성당이라면 대를 이어서라도 지어보자’라고 결심하고 용단을 내린 건축주가 없었다면 이토록 오래 건물을 짓고 있을 리 없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건축주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짓기로 결정한 ‘성 요셉 협회’ 사람들이다.” (7장 ‘모든 이들이 지은 건축’ 중)
건축과 건축물을 향한 근본적 질문
“왜 건축물을 짓는가? 그것을 짓는 사람은 누구여야 하는가?”
강의 도중 사보아 주택의 건축주가 누구냐고 물었을 때 대답하는 학생이 하나도 없었다는 에피소드에서 시작한 책은 아득한 옛날 솔즈베리 평원 위에 지어진 스톤헨지 이야기에서 끝난다. 글쓴이는 말한다. 이 거대한 구조물은 당시 공동체 구성원들이 지녔던 공동의 가치를 드러내고 있다고! 그리고 묻는다.
“사람은 왜 건축물을 짓는가? 건축물을 이렇게 짓자고 결정하는 이는 누구인가? 그 결정은 어디에 근거한 것인가? 그 건축물을 짓는 사람은 과연 누구여야 하는가?”
이 질문은 모든 인간이 본디 건축가였다는 것, ‘짓는 인간’으로서의 본성을 되살려야 한다는 것, 거주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지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건축은 미래를 함께 짓는 것이라는 건축가로서의 오랜 소신과 맥을 같이한다. 또한 “건축이란 우리 공동체 안에 이미 존재하는 ‘건축 이전의 것’을 발견하여 구조물로 만드는 작업”이라는 전작(『건축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들』)의 메시지와도 일맥상통한다. 장장 650여 쪽에 걸쳐 ‘제2의 건축가’가 갖는 중요성을 얘기한 뒤에, 글쓴이는 이렇게 글을 맺는다.
“먼 옛날에 지어진 구조물을 향해 던지는 질문은 오늘 우리 곁에 지어지는 건축물에 대해서도 똑같이 주어져야 한다. 스톤헨지를 향한 질문은 건축과 건축물을 향한 근본적 질문이다. 우리는 함께 살기 위해 건축을 배워야 한다. 건축은 모든 이가 함께 짓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