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한국불교 실천적 사상가 소천 스님의
활공(活空) 사상을 이어받은 《금강경》 실천 지침
수많은 경전 가운데 《금강경》은 《반야심경》과 더불어 가장 널리 읽히는 경전이고, 깨달음으로 이끄는 지혜를 밝히는 경전이며, 대한불교조계종의 소의경전이기도 하다. 《금강경》은 부처님 가르침의 고갱이를 담고 있지만 그 뜻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수많은 해설서가 계속하여 세상에 나오는 것도 《금강경》에 담긴 뜻을 조금이라도 분명하게 풀어서 사람들의 이해와 실천을 돕기 위한 것이다. 진우 스님은 《금강경》 강설집을 펴내게 된 동기를 〈서문〉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고등학교 1학년 무렵 운동을 하다 팔목을 다쳐 글자를 쓰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학업도 포기한 채 깊은 절망 속에서 헤매고 있을 때, 손에 잡힌 것이 바로 《금강경》이었다. … 신소천(申韶天) 스님의 《금강경 강의》를 숙독하면서 비로소 내 안의 번민이 멈추었다. 이미 출가한 몸이었으나 다시 한번 진정으로 출가를 결심하는 계기가 되었다. … 2020년 교육원장 소임을 맡은 후, 다시 한번 신소천 스님의 《금강경 강의》를 펼쳤다. 새벽마다 아무런 참고 자료 없이 오직 스님의 글만 읽으며 내 생각을 덧입혀 나갔다. …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멈추지 않은 까닭은 다름 아닌 《금강경》의 가르침이 나의 중심을 잡아주었기 때문이다.”
‘금강반야의 길을 걸어간 실천적 사상가’로 알려진 신소천 스님은 근현대 한국불교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대한제국이 선포된 1897년 출생한 스님은 독립의 길을 찾던 중 《금강경》의 공사상에서 국가와 민족을 구할 하화중생의 길을 찾았다. 신소천 스님이 저술한 《금강경 강의》(1936년)는 앞 사람들의 학설이나 주석에 의존하지 않은 독창적인 강설로 당시에는 전인미답의 강의서라 불렸다.
신소천 스님의 사상은 ‘활공주의(活功主義)’로 정의된다. 이는 ‘국가와 민족을 구하는 것으로 하화중생의 실천불교를 지향하는 것’이다. 또한 스님은 “불법은 널리 알고 많이 기억함보다도 깨달음이 있고 몸소 행(行)함이 중요”함을 강조하였으며 남긴 글 가운데 상당 부분이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었다. 이는 스님의 사상이 ‘관념적이 아니라 구세(救世)와 구국(救國)의 구체적 방안을 실천하려는 치열함’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라 평해진다.
“불법은 널리 알고 많이 기억함보다도 깨달음이 있고 몸소 행(行)함이 중요”하다는 신소천 스님의 말씀처럼, 진우 스님은 “불교는 지극히 현실에 적용되어야 한다. 그래야 살아 있는 현실 불교가 되고 나의 부처님이 된다”고 강하게 말한다. 그래서 스님은 어려운 교리적 해설보다 현실의 삶 속에서 분별을 여의는 구체적인 실천법을 전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주변의 일상적인 경험을 소개하며 그때그때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를 간결하고 분명하게 전한다.
흔들리는 순간마다 《금강경》으로 중심을 잡아
일상에서 부처님 가르침을 실천하라
좋다, 싫다는 생각도 감정도 내려놓고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라
《금강경》에서 부처님께서는 상(相)에 머물지 말고 떠나야 함을 거듭 말씀하신다. 상(相)은 곧 분별(分別)이다. 좋다 싫다, 옳다 그르다 나누는 분별심이 인과를 낳는다. 인과는 좋은 것과 싫고 나쁜 것이 똑같이 생기는 것이다. 분별을 여의어야 업이 멸하고 인과가 사라지며 윤회가 멈춘다.
좋다 싫다, 옳다 그르다는 분별심이 크면 클수록 마음의 파도는 거칠어질 뿐이다. 상대적인 분별을 떠나려면, 감정이 머무는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를 벗어나지 못하면 분별이 생겨 좋은 것에 집착하게 되고 인과가 생기게 되어 결국 싫고 나쁜 고통과 괴로움, 불편과 불안, 불평이 필연적으로 뒤따르게 된다.
어떤 일이든 욕심이 만들어낸 감정에 끄달려 좋다거나 싫다고 분별하게 되면 인과의 업이 생겨난다. 마음을 평안하게 다스리는 것은 감정을 다스리는 것이고,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욕심을 달래야 한다. 욕심을 내려놓으면 자연히 마음이 고요하고 평안해진다. 욕심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굳은 의지로 정진해야 한다. 다만 인과를 철저히 믿고 어떤 상황에서도 인욕하면서 깊은 신심을 가지면 된다고 스님은 친절히 안내한다.
말이든 생각이든 행동이든 어떤 일에서든 좋은 것은 가지려 하고 싫은 것은 피하려 하지 말라고 스님은 말한다. 모든 일을 있는 그대로 보고 대하며 순간순간 하는 일에 집중하면 된다. 최선을 다한다고도 생각하지 말고 그저 해야 할 일을 행하면 된다고 한다.
좋다거나 싫다거나 무엇도 분별하지 않고 어떤 감정도 일으키지 않으며, 다만 지금 이 순간 내가 하는 일에만 집중하는 것. 간단하고 명료한 일이지만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꾸준히 정진해야 함을 스님은 거듭거듭 말한다. 누구나 겪을 법한 경험담을 풀어내며 다정하고 친근하게 일상의 언어로 우리를 안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