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치와 동시대 사상가들로 알아보는 정치와 문화의 교차점
“정치는 하나의 수단이고, 문화가 목적이다.” 이 문장은 루카치의 문예이론 전체를 관통하는 신념이다. 그는 문학이 단순한 이야기의 집합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총체적 형식이며, 예술이야말로 소외된 현대인을 구원할 수 있는 힘이라고 믿었다.
『루카치의 문예이론』은 루카치의 문예이론이 독일 시민문학과 고전주의에서 출발해 마르크시즘을 거쳐 토마스 만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변화하고 발전해왔는지를 추적하는 책이다. 1976년 독일에서 저자가 박사학위논문으로 발표한 이 책은 루카치의 미학과 독일 고전주의, 그리고 토마스 만 문학의 관계를 심층적으로 분석한 연구서로, 출간 직후 독문학계에서 활발한 논의와 서평의 대상이 되었다. 저자 반성완은 루카치의 저작을 시대 순으로 분석하며 그가 관념주의적 비평가에서 마르크스주의자로 변모하는 과정에서도 괴테와 헤겔을 중심으로 한 독일 고전주의 미학에 대한 애정을 결코 잃지 않았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증명한다.
저자의 논문을 우리말로 옮기고 서론을 덧붙인 이 책은 국내 연구자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까지 루카치의 이론을 습득할 수 있도록 그 지평을 넓혔다. 특히 루카치와 브레히트, 아도르노 사이의 논쟁을 학문적으로 설명하고 객관화함으로써 기존의 대립적 구도 너머에 존재하는 공통점을 밝혀낸다. 또한 토마스 만과 루카치의 관계를 역사적 맥락 속에서 면밀히 분석함으로써 문학과 철학, 미학과 정치가 교차하는 지점을 정교하게 포착한다. 이 책은 루카치의 문예이론에 대한 개론서이자 브레히트와 아도르노, 토마스 만에 대한 입문서이며 독일 정신사 탐색을 위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문학의 사회적 역할을 탐색하기 위한
루카치의 여정을 따라가다
이 책은 루카치가 관념적 미학자로 출발해 사회주의 이론가로 변모한 뒤 다시 미학으로 회귀하는 사유의 흐름을 정리하며, 그가 끝까지 놓지 않았던 ‘총체성’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시대와 사상의 변화 속에서 새롭게 해석되었는지를 보여준다.
1848년 시민혁명의 실패로 철저한 좌절을 맛본 후 독일인들은 봉건적 지배귀족과 이들의 군국주의에 타협하고 순응했다. 이들은 ‘체념’에 잠겼지만, 그러면서도 ‘의연한 태도’를 유지했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는 루카치의 에세이집 『영혼과 형식』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영혼과 형식』에서 루카치는 시민계급의 몰락에 슬퍼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완고할 만큼 ‘의연한 태도’로 시민적 가치를 옹호했다. 그는 지나간 시민문화를 향한 동경을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향수와 연결했다. 그의 전 생애에 걸친 라이트모티브, 즉 총체성을 향한 지적 탐구는 이미 이 에세이집에서 옅게 나타나 있다.
『소설의 이론』에는 본격적으로 총체성이란 개념이 등장하는데, ‘완결성’, ‘완전성’, ‘일원성’을 뜻한다. 루카치는 이 책에서 서사시와 소설의 차이점을 더욱 뚜렷이 부각한다. 서사시가 ‘그 자체로 완결된 삶의 총체성’을 형상화한다면 소설은 ‘숨겨진 삶의 총체성’을 찾아내 이를 다시 구성한다는 것이다. 1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사회주의자가 된 루카치는 『역사와 계급의식』에서 현실의 이원성을 지양하고 총체적 현실상을 실현할 가능성을 마르크시즘과 프롤레타리아 계급에서 모색한다. 여기서 루카치는 총체성이라는 미학이념을 정치화하게 된다. 40년 뒤에 발간된 『미적인 것의 고유한 특성』에서는 고전주의 예술이념의 본질적 특징들을 마르크시즘에 맞게 개념화하고 체계화한다.
루카치와 브레히트, 아도르노, 토마스 만의 관계성으로
예술의 운명을 묻다
저자는 루카치의 저서를 개관한 후 브레히트, 아도르노, 토마스 만과 루카치의 학문적 관계를 조명하며 특히 루카치의 만에 대한 지적 사랑의 근원을 탐구했다. 1930년대에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둘러싸고 루카치와 브레히트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다. 루카치는 예술이 현실을 총체적으로 형상화하는 과정에서 객관적 진실과 역사적 필연성을 포착할 수 있다고 보았다. 반면 브레히트는 예술이 사회적 실천의 일부로 기능해야 하며, 기존 질서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촉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논쟁은 단순한 미학적 차이를 넘어, 예술이 사회 변화에 기여하는 방식과 예술의 독립성에 대한 근본적인 태도 차이를 보여준다.
루카치와 아도르노는 모두 예술과 총체성을 중요시했다. 루카치는 고전주의적 형식이 인간 소외를 극복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본 반면, 아도르노는 예술의 부정성을 강조하며 총체성이 이미 해체된 시대에서 예술은 이를 재구성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기존 질서를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루카치는 만의 작품이 독일 고전주의적 휴머니즘을 계승하면서도, 당대의 현실을 반영하는 리얼리즘의 전형이라고 보았다. 그는 토마스 만을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모델로 삼았지만 만은 루카치의 정치적 전향을 이해하지 못하고 거리를 두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단순한 문학적 동지를 넘어 독일 시민문화와 유대 시민계급의 숙명적 관계로도 해석될 수 있다. 서로 다른 지점에서 예술과 총체성을 바라보지만, 공통적으로 예술을 통한 인간 해방과 사회 변화 가능성을 탐구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연결점이 있다.
이 책은 국내에서 꾸준히 지속되고 있는 루카치에 대한 학문적 논의에 깊이를 더해줄 수 있다. 아울러 루카치의 문예이론에 대한 개론서이자 브레히트, 아도르노, 만에 대한 입문서이며 독일 정신사 탐색의 길잡이로 연구자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에게도 지적 자극을 안겨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