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갈리마르에서 2011년에 출간한 『자백의 대가Le Maitre Des Aveux』는 우리에게 1975년에서 1979년까지 4년 동안 캄보디아를 통치했던 크메르 루즈가 자행한 끔찍한 대학살의 실체를 더욱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S-21 교도소와 일명 ‘킬링필드’로 불리는 ‘쯔엉 엑’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처절한 증언은 독자들 또한 어느새 재판을 참관하는 한 사람이 되어 전범재판 과정을 지켜보게 만든다.
이 책의 제목 ‘자백의 대가’란 중의적인 의미에서 사용되었다. 첫째는 두크라는 인물이 자백을 받아내는 데 천부적인 소질을 갖추고 있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물론 자백은 거짓자백이며 그것을 이끌어낸 것은 극도로 잔인한 고문과 협박이었다. 그의 소질은 바로 모든 인간적인 감정을 버리고 교도소 수감자들을 죽음의 뻘로 밀어낼 수 있었던 사이코패스적 기질인 셈이다. 둘째로 ‘자백의 대가’라는 의미는 다른 한편으로 이 두크라는 인물이 법정에서 보여줘 사람들을 놀라게 한 뛰어난 재능을 의미한다. 그는 비상한 기억력으로 30년도 더 지난 일들을 기억해냈으며, 자신이 저지른 일들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법적 그물망을 교묘히 빠져나가는 정치적 고백으로 일관했다. 제목 ‘자백의 대가’에는 바로 이러한 악마적 마에스트로라는 이미지가 심겨져 있는 셈이다.
이 책을 쓴 프랑스 작가 티에리 크루벨리에는 S-21 교도소의 최고 책임자였던 두크란 인물을 재판한 프놈펜의 전범재판 과정에 실제로 참여하면서 자신이 직접 보고 들은 내용을 이 한 권의 책에 담았다. 작가는 법률 매거진 『인터내셔널 저스티스 트리뷴』의 수석 편집인을 지냈으며 캄보디아뿐만 아니라 르완다, 시에라리온, 콜롬비아, 보스니아 등 세계 여러 곳에서 일어난 반인륜적인 범죄와 대학살을 다룬 국제 재판에 참여하며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프랑스 출신의 기자로는 티에리 크루벨리에가 유일하게 프놈펜 전범재판에 참여했다. 이 소송은 그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재판이었다. 전체주의를 지향한 공산주의 정권이 자행한 대량 학살을 유엔 산하의 국제 재판소가 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역자 전혜영 씨는 “이 책을 번역하는 동안 나는 피고인 두크란 인물에 대해 이토록 자세하게 알 수 있는 책이 존재할까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고 밝힌다. 그 정도로 프랑스 저자의 정보 수집 능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는 것이다. 저자가 두크란 인물의 생애와 관련된 정보를 다방면으로 수집한 흔적이 책 곳곳에 역력하게 드러난다. 크메르 루즈에 소속되기 전, 수학 교사로 살았던 젊은 시절은 물론 민주 캄푸치아를 위한 혁명주의자로서 활동할 당시의 모습과 크메르 루즈가 쇠퇴기를 겪으면서 외국으로 건너가 살게 된 과정, 그리고 다시 캄보디아 감옥에 수감되어 재판을 받기까지 한 개인의 파란만장한 삶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연속되는 파노라마처럼 이어진다.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공판이 진행되는 동안 저자가 예리한 관찰력을 발휘해 피고인 두크의 심경과 태도의 변화를 꼼꼼하게 묘사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두크 외에도 증인으로 참여한 여러 국적의 생존자들과 변호사, 검사, 판사, 방청인들의 반응도 놓치지 않고 생생하게 글로 전달하려고 했다. 그러하기에 독자들은 실제로 법정에 앉아 있는 것처럼 생생한 현장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두크를 옹호하는 입장과 혐오하는 입장이 팽팽하게 대립되면서 후반부로 갈수록 긴장감이 점점 고조되었다. 법률 관계자들과 인권 변호를 위해 싸우는 운동가들 사이의 치열한 논쟁, 두크의 담당 변호사인 프랑수아 루와 까 사웃의 대조적인 입장 차이 또한 이 책의 내용을 흥미롭게 만드는 자극제 역할을 한다.
S-21 교도소에서 죄수들의 자백을 받아내는 데 일가견이 있었던 두크가 세월이 흘러 이제는 심문을 하는 입장에서 심문을 받아야 하는 피고인이 되었다. 공산주의의 유토피아적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반인륜적인 행동마저 정당화시킨 크메르 루즈의 대학살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하다면, 전범자 두크를 재판하는 과정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전달한 이 책은 더 할 나위 없는 지식의 보고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