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을 기억하는 이야기
싱그러운 유채꽃이 가득한 섬, 제주. 하지만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경 뒤에는 슬픈 역사가 서려 있습니다. 1947년 3월 1일, 군인과 경찰들이 삼일절 행사를 기념하러 모인 제주도민들에게 총구를 겨누고, 보통 사람으로 살아가던 이들이 저항 한번 하지 못한 채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는 우리 근대사의 참혹한 비극, ‘제주 4.3’의 시작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섬 제주에서 왜 그런 참혹한 일이 벌어진 걸까요? 공유의 시선을 통해 그날의 제주를 경험하고, 4.3의 슬픈 역사를 돌아보는 어린이 문학, 『제주를 기억해』를 만나 봅니다.
지금의 우리가 과거의 제주에 보내는 위로
아빠의 이름인 ‘기억’, 동생의 이름인 ‘평화’, 자신의 이름인 ‘공유’. 따로 보면 흔한 단어들이지만, 한 가족의 이름으로 묶이기엔 조금 독특합니다. 이야기는 주인공 공유의 질문으로 시작됩니다. “아빠, 제 이름은 왜 공유예요?”라는 평범한 질문에, 아빠는 기다렸다는 듯 제주도행 비행기표를 예매합니다. 공유 가족의 이름에 얽힌 비밀을 알기 위해선 제주도로 떠나야 한다는 말과 함께 말이지요.
공유 가족이 도착한 곳은 ‘제주 4.3 평화 기념관’. 그곳에서 공유는 충격적인 사실을 듣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75년 전, 제주도에서 수많은 민간인이 학살당했고, 자신의 증조할아버지도 그 피해자 중 한 사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피해자들이 죽어 간 다랑쉬굴 전시실 앞에서 공유는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외칩니다. “증조할아버지, 뵙고 싶어요!” 그러자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공유의 몸이 붕 떠오르더니 정신이 아득해지고, 이내 낯선 풍경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공유를 깨운 것은 자기 또래로 보이는 학생이었습니다. 까까머리에 서글서글한 큰 눈망울을 가진, 할아버지와 이름이 똑같은 소년, 유성. 유성이는 친절한 설명과 함께 오늘이 1947년 3월 1일이며, 삼일절 기념행사가 열리는 날이라고 알려 줍니다. 하지만 그날은 경찰과 군인이 무고한 민간인을 학살하는 비극이 시작된 날이기도 했습니다. 역사의 한가운데로 들어간 공유는 그날의 제주를 직접 목격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무참히 죽어 나가는 현실 앞에 공유는 말을 잃게 됩니다. 이웃을 잃고, 친구를 잃고, 부모를 잃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네고 싶어도 목소리는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과거 제주도에서 일어난 참혹한 비극을 제대로 마주하기 위해, 그리고 공유라는 이름에 담긴 의미를 알아내기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습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위로의 말을 전하려는 공유의 마음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과거 4.3 희생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위로의 마음과 닮아 있습니다.
기억하고 공유해서 마침내 평화로 나아가는 이야기
『제주를 기억해』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마치 주문처럼 ‘기억해야 한다’는 말을 되뇌입니다. 아랫집 오씨 아저씨가 총에 맞아 쓰러질 때도, 아기를 안고 맨발로 뛰어나가던 어머니의 등에 총알이 박힐 때도, 누군가의 삶이 담긴 집들이 불타 사라질 때도 사람들은 말합니다. “기억해야 한다. 이 일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라고요. 이 참혹한 역사를 기억하고 공유하는 것만이 평화로 나아가는 길이라는 듯이 말입니다.
제주 4.3은 이념 논쟁과 복잡한 이해관계에 가려, 오랜 시간 진상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도 당시 희생자들을 ‘폭도’나 ‘반란군’으로 부르는 시선이 남아 있지요. 이 책은 말합니다. 오랜 시간 덧씌워진 편견을 걷어 내면 그날의 제주 사람들이 제대로 보일 것이라고요. ‘빨갱이’로 몰린 무고한 사람들, 그저 자신의 삶을 성실히 살았던 사람들이 단지 산사람의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군인의 총칼에 희생당했다는 진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테니까요.
역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참혹한 비극의 역사가 평화의 역사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가 기억하고 공유하고 끊임없이 되짚어 내야 합니다. 그날 제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유가족의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기억하고 공유하는 것이야말로 제주 4.3 희생자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이자,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제주도는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제주도가 아름다운 것은 4.3 사건의 처절한 고통을 안고 제주도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 123p, 「작가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