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현실 공간과 시의 공간이 둘이 아니다. 체험의 깊이에서 감동과 울림을 끌어낸다. 그녀의 시조가 놋그릇 소리가 나는 까닭은, 그만큼 사무친 것이 많기 때문이다. 풀리지 않는 그 어떤 매듭이 묶여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시조는 사물에 꼭 맞는 정신의 무늬이다. 자구 하나 버릴 것이 없는 그녀만의 아름다움이 있다. 그녀의 시작詩作은 외가에서 내림한 유가儒家의 깨어 있는 정신이 있는가 하면, 천주의 은혜와 절절한 기도의 독백이 공존한다. 법고法古를 통해 창신創新에 이르는 그녀의 무늬는, 격물格物의 시어이자 치지致知의 언어다. 말과 사물의 관계를 동일성의 시학으로 승화시킨다. 그녀는 오랫동안 사물을 응시하며, 그 사물의 말을 심의心意로 듣는다. 시조든 자유시든, 그녀의 시법은 만만치 않다. 누구나 자신의 시는 밤새워 절차탁마切磋琢磨를 거듭한다. 행과 연 사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보석 같은 시어를, 자르고, 쪼고, 갈아서 빛을 낸다. 그런 고뇌와 개성이 그녀의 시에서 양립한다. 어떤 시는 눈물이 고이게 하고, 어떤 시는 노을빛 휘파람 소리가 들린다. 시인의 몸은 타인과 공감하는 통로이자, 내면과 은밀하게 속삭이는 고백의 성소聖所이다. 그녀의 시는 누구에게도 말 못 한 슬픔이 있다. 전쟁 후유증으로 시달린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아프다. 어쩌면 그녀 시는 엉킨 심회를 풀어 주는 카타르시스인지도 모른다.
시조의 절제된 압축과 이미지는 묘처를 얻었다. 자유시의 상상력과 행간은 심미審美를 꿰뚫었다. 초장과 중장, 종장에서 비친 여백의 미학은, 그녀 시의 강점이다. 자구와 자구 사이의 여백은, 읽는 이로 하여금 긴장과 갈등을 풀어 준다. 그녀의 시가 공명하는 것은 울림이 그만큼 크다는 증거이다. 그녀 시는 연과 연 사이 지나친 단절과 해독 불가능이 없어 좋다. 누구나 읊조리면, 그 시를 갖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그런 시다. 그녀의 서정시는 지나온 삶을 반추하고, 뜨거운 사랑과 이별의 풍경이 보인다. 애틋한 달빛의 시어가 있는가 하면, 그리운 사모곡은 애절하다. 놓쳐버린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들리는가 하면, 세상 사리에서 겯고튼 연민과 몸부림이 보인다. 자신만의 개성적 감각과 체험의 깊이에서 시어를 길어 올려야 명시이다. 그녀 시의 무늬는 바람의 말을 전하는가 하면, 꽃의 향기를 맡게 한다. 여행에서 본 풍경의 말을 따스한 시의 언어로 환원한다. 익숙한 생활에서 새로운 비밀을 찾아내며, 가까운 거리에서 시의 소재와 주제를 발견한다. 시조와 자유시란 이질적 장르를, 성영희의 이번 시집 『엄마의 장독간』은 멋지게 구도화하였다. 짧은 시 긴 여운이란 말도 있듯, 그녀 시는 췌사를 덜어내는 작업이다. 이미지의 범람을 버리고 시의 정수를 취한다. 적확한 시어의 사용을 통해, 그녀는 제자리에 잘 앉힌 시로 형상화하였다. 시적 모호성을 멀리하고, 구체적인 경험에서 시를 발견하여, 편편마다 그녀만의 색실로 올을 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