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의료결정법의 제도 정착을 위해 힘쓴
오은경 교수의 죽음 준비 교육
병원에는 다양한 환자들이 있다. 어떤 환자는 치료되어 퇴원하지만, 어떤 환자는 더 이상의 치료가 불가능해져 퇴원한다. 사람들은 치료가 불가능해져 죽음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상황이 자기에게도 닥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웰 다잉은 단순히 고통 없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넘어, 죽음의 순간까지 삶의 의미와 존엄성을 유지하며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과정이다. 이는 삶을 돌아보고 관계를 정리하며, 스스로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하지만 어떻게 모든 죽음이 평온하기만 하겠는가? 오히려 우리가 꿈꾸는 형태의 죽음은 극소수에 불가하다. 물론, 제대로 준비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웰 다잉을 말할 때 세트처럼 따라오는 것이 2018년부터 시행된 연명의료결정법이다. 연명의료결정법은 마지막 순간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고 삶을 존엄하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지만, 많은 사람이 연명의료 중단이 의도적으로 생명을 단축하는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연명의료는 임종기 환자에게 치료 효과는 없는데 고통스러운 임종 과정의 시간만 무의미하게 연장하는 것을 말한다는 점에서 안락사나 존엄사와 다르다.
웰 다잉에 관한 뜨거운 관심으로 연명의료결정법 도입 이후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자가 무려 260만 명을 넘어섰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임종 체험, 유언서 작성이 청년층에서 유행하고 있다. 그만큼 자신의 죽음을 미리 떠올려 보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죽음을 전과 다르게 사유하기 시작했다는 증거다. 그 이유는 명료하다. 웰 다잉을 통함으로써 웰 리빙에 가까워질 수 있어서다.
웰 리빙은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모든 순간을 가치 있고 충만하게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자신의 욕구와 가치를 충족하며, 타인과 건강한 관계를 맺고, 삶의 목적과 방향성을 잃지 않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웰 리빙은 궁극적으로 웰 다잉과 연결된다. 자기답게 잘 산 사람이 더 평온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저자는 연명의료결정법의 시행 초기부터 제도 정착을 위한 준비 작업, 교육과 상담, 행정 자문까지 진행했다. 거기에 더해 38년간 간호사로 일하면서 쌓은 임상 경험을 통해서 보다 심도 있게 웰 다잉을 고찰한다. 이 책은 당신에게 ‘사랑하는 사람들과 조금 더 잘 이별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무엇인가?’를 질문하고, 그 답을 알려준다.
급변하는 의료 현장에서 만난죽음을 통해 사유한 삶
수많은 콘텐츠 속에서 간호사는 언제나 엑스트라였다. 의사 옆에 판때기 하나 들고 그림자처럼 서 있거나, 의사와 환자의 농담을 받아주는 보조 역할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간호사는 생각보다 더 많은 일을 한다. 간호사 한 명이 적게는 17명, 많게는 20명(일반 병동 기준으로 병원마다 다르다)의 환자를 돌보면서 그들의 여정을 함께한다. 따라서 간호사는 병원에서 환자들과 가장 친밀한 유대 관계를 형성하는 의료진일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은퇴 직전까지도 환자의 곁을 지켰던 한 간호사가 만나고 헤어진 사람들의 뒷모습에 관한 기록이다.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간호사들을 괴롭혔던 터미널(말기) 환자, 간암 말기였다가 이식 수술 후 건강을 회복한 지 반년 만에 척추로 암세포가 퍼져 죽음에 이른 환자, 자신의 숨이 멎으면 CPR은 하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던 행려 환자, 경제적 압박을 이기지 못해서 병원 옥상에서 뛰어내린 환자의 보호자, 식물상태의 동생을 아내와 함께 돌보던 중 아내를 암으로 먼저 보내게 된 보호자까지…. 이 모든 이야기는 죽음의 순간이 단순히 끝이 아닌 삶의 한 부분임을 보여준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치열하게 투쟁하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고만 있는 게 쉽지는 않았다. 저자는 처음엔 환자의 죽음에 깊이 투영한 나머지 자신의 삶이 무너지는 듯한 두려움을 느꼈다. 하지만 수만 명의 환자와 가족을 만나며 신경외과 병동에서는 손 쓸 수 없는 죽음을, 응급실에서는 환자가 이미 사망했지만 가족이 올 때까지 CPR을 멈출 수 없는 죽음을 경험했다. 처음엔 죽음 앞에서 주저앉기 바빴던 저자는 수만 가지 죽음을 경험하며 점차 죽음을 사유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즉 《언젠가 사라질 날들을 위하여》는 일종의 성장기다. 이 성장기에 동행한다면 어느덧 당신도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전보다 더 잘 소화하게 될 것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죽음은 어떤 모습인가?
삶을 이루는 수많은 질문이 있지만 우리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질문한다. 우리는 왜 태어났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 누구나 내일을 준비한다. 내일 누구를 만날지, 무슨 일을 할지, 무슨 옷을 입고, 무엇을 먹을지를 미리 떠올린다. 이런 방식으로 죽음을 떠올려 보면 어떨까?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선택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우리가 더 자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면 그 끝은 조금 더 따뜻하고 평화로울 것이다.”(210쪽) 다음의 질문에 자신만의 답을 해보기를 바란다.
하나, 내가 떠난 뒤 남겨질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둘,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셋, 죽음의 순간이 다가온다면 마지막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가?
넷, 죽음의 순간에 이른다면 연명의료를 받겠는가?
정답은 없다. 다가올 내일을 준비하는 것은 오로지 당신의 몫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 책이 당신이 원하는 죽음에 한 층 더 가까워지게 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