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버려지는 곳에서, 누군가는 꿈을 찾고 있었다.”
결말이 정해지지 않은 꿈을 대하는 세 개의 시선
가까운 미래, 과거와 비슷해 보이는 일상이지만 많은 것이 달라졌다. 이상기후로 수몰하는 섬들이 생기며 소실 언어와 대체 언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졌고, 지능도 외형도 사람과 같은 로봇이 보편화되었으며, 새로운 소재로 신체 일부를 교체하는 것이 전혀 특별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그중에 대한민국이 거둔 의외의 성과는, 거대 한식 업체 ‘고치바’가 미생물 기술을 활용해 생체적합성이 뛰어난 바이오 플라스틱을 개발해냈다는 것. 그 공장 뒤편에는 시제품과 불량품이 무더기로 버려지는 쓰레기장 ‘서천꽃밭’이 있다.
서천꽃밭, 모든 질병을 고치는 꽃들이 모여 있다는 신화 속 공간. 부담 없는 비용에 안전한 수술이 가능한 꿈의 소재, 고치바의 바이오 플라스틱이 쓸모없이 버려지는 곳. 대체 신체를 구하거나 기술을 빼돌리거나, 저마다의 이유로 바이오 플라스틱을 훔치려는 이들을 ‘밀렵꾼’이라고 부른다. 종아리 근육이 약해 수중무용가로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치아루’도 그중 한 사람이다. 우연히 서천꽃밭에 온 ‘지빈’은 그의 사정을 듣고 바이오 플라스틱을 훔치는 것을 돕기로 하고, 서천꽃밭의 비밀스러운 관리인 ‘가람’과 가까워져 그것을 손에 넣고자 한다.
꿈을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려는 치아루, 그런 그를 보면서 자신도 꿈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지빈, 그리고 거창한 꿈 따위 실망만 안겨줄 뿐이라는 가람. 그렇게 세 인물이 서천꽃밭에 모인다. 그들의 꿈은 어떤 결말을 맞을까? 아니, 꿈에 결말이라는 것이 존재할까? 서로의 꿈을 응원하고 만류하고, 때로는 자신감 넘치고 의기소침한 그들의 여정. 고민과 갈등 끝에 다다른 결전의 날, 세 사람은 ‘기적의 플라스틱’을 무사히 훔쳐낼 수 있을까?
한국 신화에 현대적 감수성과 과학적 상상력을 더해
개인의 성장을 그리며 감동을 전하는 SF 소설
김민정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자 ‘어른을 위한 동화’로 독자들에게 잘 알려진 《기괴한 레스토랑》(전3권)은 웹소설 플랫폼 연재 당시부터 무수한 출간 요청을 받으며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이 화제의 데뷔작은 《별주부전》을 모티프로 하는 신선한 한국형 판타지로, 인물들의 내면적 성장을 그리며 독자들에게 잔잔한 여운을 남겼다. 흥미로운 사건 속에서 인물의 심리 변화를 세밀하게 포착해온 김민정 작가는, 신작 소설 《플라스틱 꿈》에서도 한국 신화를 바탕으로 탁월한 SF적 상상력을 발휘하며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고민을 전달력 있게 그려냈다.
“네가 들고 있는 것도 여기에 있는 것들과 마찬가지야. 버리면 언젠가 너에게 다시 돌아올 거야. 다른 형태로 바뀌어서 말이야.”
“다른 형태로?”
치아루가 물었다.
“그래. 정말 버리지 않을 거야?”
치아루는 잠시 생각했다.
“모르겠어.”
치아루는 낯설고 어색한 기분이었다. 그런 말은 처음 해보는 것 같았다.
- 본문 중에서
작품 속 세 주인공의 여정은 마치 살면서 수많은 선택 앞에 놓이는 우리의 모습을 투영하는 듯하다. 결전의 날, 예기치 못한 사고에 휩쓸려 ‘꿈을 꾸는 것’ 자체에 회의감을 느끼는 인물들의 모습은 곧 우리의 과거이기도 하고 미래이기도 하다. 그들은 목표한 것과 전혀 다른 전환점에 도착하지만 이는 다시 새로운 시작이 된다.
“다카포. 그건 선택의 연속인 삶에서, 고민하고 선택하고 경험하는 과정을 기꺼이 반복하겠다는 외침인 거야.” 꿈을 꾸기에 ‘선택’ 앞에 기꺼이 선다. 그 어떤 결말이 기다린다고 해도 우리는 선택을, 성취와 실패를, 기쁨과 실망을 반복하며 나아갈 것이다. 중요한 것은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선택했기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는 것. 우리가 자주 놓치는 소중한 사실을 이 책은 이야기하고 있다.
꿈을 찾고 버리고, 방황하는 세 사람의 이야기는 막막한 현실을 헤치고 나가는 모든 삶에 응원을 보내고 있다. 마지막 책장을 넘기고 돌아온 삶은 여전히 한 치 앞도 알 수 없겠지만, 우리의 마음에는 주저앉지 않고 나아갈 힘이 되어주는 단단한 희망이 남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