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헌석 문학평론가의 해설 중에서 발췌)
#1
2022년에 대전시조시인협회에서 개최한 ‘제37회 전국한밭시조백일장’에 참석한 김은자 시인은 이 작품을 제출하여 대상(문화관광부 장관상)을 받습니다. 그리하여 시집 1권 『별이 되신 당신』을 발간한 시인이자, 민족시를 창작하는 정통 시조시인으로 어엿하게 등단하여 시조 창작에 집중합니다.
이 작품의 주제어는 ‘새 역사’ ‘누리호’ ‘어머니’로 수용됩니다. 1수에서는 누리호 발사 성공이 우주과학 분야의 ‘새 역사’라는 것, 2수에서는 누리호 발사 성공으로 우리들의 ‘참 소망’이 이루어졌다는 것, 특히 ‘불빛 함성’으로 표현한 공감각적 이미지가 절묘하다는 것, 3수에서는 초장 〈내 안의 우주에도 반짝이는 별 있다〉라는 정서적 징검다리를 통하여, 8남매를 잘 길러주신 모성(母性)으로 귀납(歸納)하는 형상화가 절묘하다는 것, 천국에 계신 어머니께서도, 누리호의 성공에 박수를 치며 환호하는 시인의 정서와 호응하리라는 것 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
김은자 시인은 대청호를 어쩌다 가끔 찾는 것이 아니라, 봄이면 물속에 거꾸로 비친 만화방창(萬化方暢)한 봄꽃을 보러 가고, 여름이면 호수 속의 녹음(綠陰)을 찾아가고, 가을이면 물에 가라앉아 있는 만산홍엽(滿山紅葉)을 만나러 가고, 겨울이면 한복과 같이 고즈넉하게 펼쳐진 설경을 찾습니다. 그 과정에서 눈물겨운 그리움을 시조로 풀어냅니다.
1973년에 준공한 대청호는 50여 년간 변함없는 자세로 시인을 맞습니다. 사찰에서 가부좌를 한 채 부처님이 실눈을 뜨고 바라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마주앉아 ‘실향의 가슴앓이’로 괴로워하시던 어머니를 떠올립니다. 시인은 슬퍼도 겉으로 슬픔을 드러내지 않고 ‘속울음’을 삼키며, 부서져 하얗게 반짝이는 물비늘에 자신의 정서를 이입(移入)합니다. 들어갈 수 없는 호수 속의 고향은 만나뵐 수 없는 어머니와 동일시되어 시인의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3
작품 「소롯길」 은 슬퍼서 더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대청호 수몰(水沒)로 고향을 떠나던 날의 그림입니다. 어머니를 중심인물로 그린 것은 ‘고향’과 ‘어머니’가 ‘모성(母性)’이라는 정서적 공통 분모를 지녔기 때문일 터입니다.
첫째 수는 어머니가 〈꽃향기 그윽한 길 저무는 노을처럼/ 세월에 담은 정을 소복이 쌓아놓고〉 고향을 떠나시던 그림입니다. 고향을 뒤에 두고, 어머니는 〈좁고도 먼 길〉을 한숨지으며 떠나시지만, 이는 시인의 정서를 대변하는 것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습니다.
둘째 수에서는 고향을 떠나셨던 어머니께서 작고하여, 고향 인근으로로 찾아오시는 그림입니다. 시인의 어머니는 고단한 일상의 매듭을 호반(湖畔) 위에 마지막으로 풀어놓습니다. 〈널어놓은 광목치마 바람도 울던 날에/ 통한의 몸짓으로 세월 닫고 가셨다.〉고 회상합니다. 바람에 날리는 ‘광목치마’는 전통적 ‘상여(喪輿)’의 부분인 ‘앙장(차일, 천 자락)’의 보조관념일 터입니다. 특히 통한의 몸짓으로 〈세월 닫고 가셨다.〉는 표현은 ‘생과 사’의 지경을 곡진하게 표현한 것이어서 가슴 먹먹한 정서를 환기합니다.
셋째 수에는 대청댐 호반에 모셔놓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시인의 정서가 오롯합니다. 〈대청호 물결 위에 결 고운 그리움들〉에서 시인은 어머니 ‘한생의 굴레’를 ‘시린 정’으로 여미며 호수에서 반짝이는 물비늘을 연상하게 합니다. 어머니를 보고픈 마음으로 밤잠을 설칠 때, 시인은 가슴 아래 명치 끝이 아려왔을 터이고, 이러한 정서는 독자들에게도 전이되어 그 아픔의 정서를 공유하게 됩니다.
#4
작품 「어느 가을날」 세 수로 된 연시조 형식입니다. 각각 초장(初章)은 구(句)와 구(句)를 나누어 2행으로 ’구별배행‘입니다, 〈황금빛 들판에서/ 마음 환한 가을걷이〉에 추수의 보람과 기쁨이 오롯하게 담겨 있습니다. 〈바가지쌀 씻는 소리/ 저녁별이 기웃대고〉에 담긴 청각적 이미지와 시각적 이미지의 결합이 시조의 멋을 살립니다. 〈어둠이 깊을수록/ 세상은 입을 닫고〉에서는 이웃과 이웃 사이에 소통하지 못하는 세상살이를 비판적으로 표출합니다.
각 수의 중장은 ’장별배행‘을 선택하고 있는데, 초장에서 종장으로 넘어가는 징검다리 역할에 충실합니다. 종장은 세 개의 구(句)로 배열하였는데, 각 수마다 의미와 표현의 멋이 자연스럽습니다. 풍년이 들어 마음마저 풍요로운 〈아버지/ 흥에 겨워서/ 부르시던 풍년가〉를 들으며, 오랜만에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나누는 담소의 정겨움을 〈커피향/ 하늬바람이/ 창틀에서 노닐고〉로 표현하는 공감각적 이미지 생성이 빛납니다. 〈초승달/ 쫑긋 세운 귀/ 구름 사이 머문다〉는 감각적인 비유가 시조 형식의 단조로움을 극복하고 있습니다. 시조 본래의 정형성을 유지하면서, 때로는 형식의 자유로움을 선택하여 참신한 정서를 환기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