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을 예견했던 아즈마 히로키
20년의 활동을 결산하며 새로운 길을 선언하다
글로벌리즘과 내셔널리즘이 착종된 세계에서
다시 한번 보편적 세계 시민으로 향하는 길을 찾는다
검색으로는 알 수 없는 우연한 앎을 향해 열린 관광객의 길
[증보판 책소개]
2017년 일본에서 출간된 『관광객의 철학』 초판은 2020년 한국어, 2022년에는 영어로 번역되며 폭넓은 독자층을 얻었다. 타국과 자국을 오가며 우연한 만남(‘오배’)을 발생시키는 느슨한 존재 ‘관광객’을 현대 정치 철학의 새로운 주체상으로 제시한 것이 사뭇 도발적으로 받아들여졌으나, 2019년 말부터 수년간 세계를 휩쓴 코로나 팬데믹,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같은 사건은 이 책이 경고한 내셔널리즘의 반동과 세계화의 위기를 절실한 현실 문제로 만들며 책에 새로운 의미 차원을 더했다. ‘관광객’과 더불어 이 책의 또 다른 핵심 개념은 ‘가족’이다. 물론 이 가족 개념은 일상 용법과는 다른 의미를 가지지만, 팬데믹 이후 각각 개방과 폐쇄에 대응하는 두 단어의 존재감은 극적으로 엇갈렸다. 그러나 현재 시점에서 이 책을 읽는다면 두 개념의 대립이 그리 명백한 것이 아닐뿐더러 상보적이기도 하다는 점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아즈마 히로키는 2000년대에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을 쓴 대중 문화 연구자이자 포스트모던 사상가로 이름을 알렸다. 그는 “한마디로 슬라보예 지젝의 축소판 같은 저자”로 수용되었다고 씁쓸하게 회고하기도 하는데, 『관광객의 철학』은 그런 화석화된 상을 허물고 고유한 철학을 선언하는 교두보로서 의의를 가진다. 삶과 분리되지 않는 철학이라는 신념을 반영하는 서술 스타일은 기존 인문서의 어법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의 흥미를 이끌어 냈고, 철학의 실천적 무대인 기업 ‘겐론’의 성공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증보판은 후속 저술과 활동을 통해 확장하고 있는 아즈마 히로키의 철학 세계를 한층 든든히 지탱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증보판에는 새로운 「들어가며」, 중국어 번체자판(2021)과 영어판(2022)을 위한 「들어가며」가 추가로 수록되어 그간의 경과 속에서 이 책이 생명력을 더한 과정을 살필 수 있게 했다. 또한 ‘보론’으로 두 개의 장(「촉시적 평면에 대하여」, 「우편적 불안에 대하여」)을 더해 속편인 『정정 가능성의 철학』과의 연결 고리를 보강했다. 이번 한국어 증보판에도 이 글들을 번역해 실었고, 그 외에 본문 번역과 디자인을 소폭 손질했다.
증보판에 추가된 9장 「촉시적 평면에 대하여」는 관광객적 주체와 정보 기술의 관계를 고찰한다. 일상 세계를 뒤덮고 있는 터치 패널(흔히 ‘터치스크린’이라 부르지만 이 장에서는 출력 전용 평면인 스크린과의 구분을 분명히 하기 위해 이 명칭을 채택한다)과 인터페이스(특히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UI)가 만들어 낸 ‘촉시적 평면’의 시대가 인간 주체와 인문 지식의 존재 방식에 초래하고 있는 변화를 살펴본다.
단방향으로 출력만 하는 스크린을 전제로 구축된 기존 영상론과 미디어론의 패러다임은, 만지는 것만으로 프로그램을 기동시키고 즉각적인 피드백으로 화면을 변화시키는 ‘촉시적’觸視的 경험의 일반화와 함께 위기를 맞고 있다. 그리고 그 위기는 가짜(그림자)와 진짜(실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대립을 중심으로 논리를 구성해 온 플라톤 이래 서양 철학 전통 자체에 미친다. 표시 화면이라는 ‘가짜’를 만지는 것이 데이터라는 ‘진짜’를 변경시키는 촉시적 평면의 시대. 이제 “우리는 촉시적 평면을 통해 세계를 인식하고, 촉시적 평면을 통해 세계에 관여한다.” 이것이 새롭고도 시급한 철학적 문제라는 사실은, 트럼프 대통령 2기가 상징하는 음모론과 대안 현실의 팽창이 이러한 미디어 환경 변화에 촉발된 사태라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촉시적 평면 시대에는 ‘보이는 것’에 대한 ‘보이지 않는 것’의 우위가 정당화되기 어렵다. 그 때문에 지식인은 과거처럼 ‘눈에 보이는 거짓을 넘어 보이지 않는 진실을 밝히는’ 논리로 대중을 설득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촉시적 평면의 현실을 읽어 내고 언어화해야 하는 것일까. 이 글은 이러한 철학적 위기를 앞으로의 과제로서 그려 낸다.
10장 「우편적 불안에 대하여」는 ‘관광객’의 다른 이름인 ‘우편적 다중’이 처한 현재적 문제로서 ‘알고리즘적 통치성’의 부상을 다룬다. 발신한 메시지가 의도대로 도착하지 않을지 모른다는 데서 오는 불안이 ‘우편적 불안’이다. 그것은 ‘~일지도 모른다’의 불안이며 더 정확하게는 (존재론적 불안과 구분되는) 확률적 불안이다. 아즈마 히로키는 30년 지적 이력 동안 이 확률적 불안의 문제에 천착해 왔다. 그의 평론 데뷔작인 「솔제니친 시론: 확률의 감촉」(1993)은 개인의 고유성을 박탈하고 수치로 환원해 처리하는 스탈린주의 관료제의 냉담함에서 현대성의 특질을 발견하는 글이었다. 이 장은 그 주제 의식이 『관광객의 철학』을 거쳐 코로나 팬데믹을 통과하며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보여 준다.
나치즘하 홀로코스트 유대인이 ‘분명히 죽을 것이지만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렸다면, 스탈린주의하에서 체포당한 사람은 왜 체포당했는지도 모르고 죽을지 죽지 않을지 여부도 모른다는 불안에 처했다. 체제의 과학이 산출한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체포당하고 죽임당하기 때문에 그 대상이 나일 필연성도 없는 것이다. 이 ‘~일지도 모른다’의 확률적 불안은 온갖 개인 정보를 수집해 알고리즘으로 처리하는 현대 사회의 불안과 다르지 않다. 개인의 삶을 통계적으로 교환 가능한 샘플로 취급하는 일이 일상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현실(팬데믹은 이 현실의 확산을 가속했다)에, 아즈마 히로키는 푸코의 생명 권력론을 참조해 ‘알고리즘적 통치성’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알고리즘적 통치성은 우편적 불안의 확산을 타고 우편적 다중에 작용한다. 반면 관광객의 철학은 우편적 불안을 뒤집어 의도하지 않은 생성을 가져오는 ‘오배’에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그 실행 주체로서 관광객을 호명한다. 관광객의 철학은 앞으로 알고리즘적 통치성과 대결해야 하는 것이다.
『관광객의 철학』 증보판은 이렇듯 독창성과 현재성을 더해 현대 세계의 분열을 다시 꿰매어 연결할 정치적 주체로서 관광객의 가능성을 음미할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앞으로 더 많은 독자를 얻어 나갈 아즈마 히로키 철학의 입문서 역할 역시 톡톡히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