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하고 새롭게 보게 되는
우리를 둘러싼 일상 속 사물들
여행가방, 트렌치코트, 퍼스널 스테레오, 청바지, 유아차, 인형, 먼지, 쇼핑몰 등 이 시리즈에서 조명하는 사물의 종류에는 한계가 없다. 작가들은 사물이 겪어온 다양한 변화들을, 어떻게 지금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풀어낸다. 형식에도 제한이 없다. 작가가 선택한, 아니 작가를 선택한 사물이 무대에 앉아 마치 감독이자 주연배우처럼 책의 장르와 연구 방향을 지시하는 것 같다. 그 결과 독자들은 갖가지 주제와 형식의 다채로운 책들을 만날 수 있다.
‘지식산문 O’의 두번째 책은 『퍼스널 스테레오』다. 1979년 소니 워크맨이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나 자신이 듣고 싶은 음악에 몰입할 수 있다는 혁신적인 경험에 매료되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워크맨은 ‘이기적인 세대’를 상징하는 물건으로 여겨지며 반사회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 책은 워크맨이 폐허가 된 전후의 도쿄에서 탄생하여 전 세계적으로 고독한 행복의 상징이 되고, 더 나아가 MP3와 아이팟과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쓸모없게 되고, 역사의 뒤편에서 우리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된 모든 과정을 추적한다.
워크맨에 담긴 한 시대의 기억을 열다
2009년 BBC 〈뉴스매거진〉은 13세 소년에게 워크맨을 잠시 사용해보고 소감을 들려달라는 재미난 요청을 했다. 워크맨 출시 30주년에 맞춘 기획이었다. 워크맨보다 훨씬 나이가 어린 소년은 아마도 이 물건을 전설로나 접했으리라.
“아빠가 크다고 말했지만 그렇게까지 클 줄 몰랐어요.” _13쪽
소년은 워크맨이 너무 크고 번거롭고 미심쩍다고 생각했지만, 30년 전 이 물건은 혁신적인 기술의 표본이자 일본 전자회사 소니를 세계적인 기업의 반열에 올린 제품이었다. 전후 도쿄의 스타트업 기업이었던 소니는 워크맨과 함께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이야기도 있다. 소니의 창립자 아키오 모리타와 마사루 이부카 외에, 워크맨의 또다른 아버지가 있다는 것이다. 간발의 차로 ‘퍼스널 스테레오’라는 아이디어를 실현할 기회를 놓친 불운의 남자, 바로 안드레아스 파벨이다.
1979년 밀라노에 있던 파벨은 아시아에 다녀온 브라질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는 여행 중에 헤드폰을 착용한 사람을 보았다. “당신이 내게 항상 설명하는 그 스테레오 헤드폰을 쓰고 있는 것 같았어요.” _68쪽
저자 리베카 터허스더브로는 70대에 접어든 파벨과 긴 대화를 나누며, 그가 어떻게 퍼스널 스테레오를 개발했는지, 어떻게 소니에 대항했는지 듣는다. 파벨은 말한다. “그것은 우리의 삶에 감동을 줬어요. 실제로 우리 삶에 마법을 불어넣었죠.”(75쪽) 왜 아니겠는가? 퍼스널 스테레오는 사람들에게 그저 효율성과 편리함만을 주는 기술이 아니었다. 워크맨을 구입한 뒤 한 달 동안 헤드폰을 벗지 못했다고 고백한 소설가 윌리엄 깁슨처럼, 나만을 감싸는 소리의 황홀경을 경험한 사람은 절대로 그것과 떨어져 살 수 없다. 사람들은 업무, 산책, 공부, 여행 등 모든 일을 워크맨과 함께했다.
“사실 내가 가장 그리워하는 것은 워크맨이 아니다.
이후 등장한 기술에는 없었던 바로 그것, 즉 자유로움이다.”
하지만 한때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해 세상을 사로잡았던 다른 기술들처럼, 워크맨도 시간이 지나며 결국 새로운 기기에 밀려났다. 사람들은 워크맨을 잊고 작은 사이즈에 수천 곡의 음악을 저장할 수 있는 아이팟과 스마트폰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묘하다. 모든 것을 다 해주는 스마트 기기가 내 손안에 있는 지금, 그 투박한 기계가 가끔 그리워지는 것은 왜일까? 딱 한 가지 기능에만 충실한, 그 우직한 아날로그 기기들. 이 책은 지나간 기술에 깃든 사연과 추억, 그리고 특유의 아름다움을 오랜만에 느끼게 해준다. 우리는 기술 변화 속에서 왜 이토록 복잡다단한 감정을 느끼는 것일까?
추천사
‘짧고 아름다운 책들’이라는 지식산문 O 시리즈의 소개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 이 책들은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일상의 부분들을 다시 한번 돌아보도록 영감을 준다. 이는 사물 자체에 대해 배울 기회라기보다 자기 성찰과 스토리텔링을 위한 기회다. 지식산문 O 시리즈는 우리가 경이로운 세계에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우리가 그것을 주의깊게 바라보기만 한다면. _존 워너, 〈시카고 트리뷴〉
1957년 프랑스의 평론가이자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는 획기적인 에세이 『신화론』을 출간했다. 이 책에서 그는 세탁 세제에서 그레타 가르보의 얼굴, 프로레슬링부터 시트로앵 DS에 이르기까지 당대의 대중문화를 분석했다. 짧은 분량으로 이루어진 지식산문 O 시리즈는 바로 이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_멜리사 해리슨, 〈파이낸셜 타임스〉
권당 2만 5천 단어로 짧지만, 이 책들은 결코 가볍지않다. _마리나 벤저민, 〈뉴 스테이츠먼〉
게임 이론의 전설인 이언 보고스트와 문화연구학자 크리스토퍼 샤버그가 기획한 지식산문 O 시리즈는 선적 컨테이너에서 토스트에 이르기까지 일상의 물건들에 관한 짧은 에세이를 담은 작고 아름다운 책이다. 〈디 애틀랜틱〉은 ‘미니’ 총서를 만드는데, (…) 내용에 더 내실 있는 쪽은 주제를 훨씬 더 깊이 탐구하며 디자인도 멋진 이 시리즈다. _코리 닥터로, 〈보잉보잉〉
이 시리즈의 즐거움은 (…) 각 저자들이 자신이 맡은 물건이 겪어온 다양한 변화들과 조우하는 데 있다. 물건이 무대 중앙에 정면으로 앉아 행동을 지시한다. 물건이 장르, 연대기, 연구의 한계를 결정한다. 저자는 자신이 선택했거나 자신을 선택한 사물로부터 단서를 얻어야 한다. 그 결과 놀랍도록 다채로운 시리즈가 탄생했으며, 이 시리즈에 속한 책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다. _줄리언 예이츠, 〈로스앤젤레스 리뷰 오브 북스〉
유익하고 재미있다. (…)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삶이 지루할 때 꺼내 읽기 완벽하다. _새라 머독, 〈토론토 스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