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의 문학을 통한 시대적 실천과 잉태한 변혁의 씨앗들
대서사시 『신곡』은 인류의 문학적, 철학적, 종교적 유산의 총집결체이며 중세를 넘어 근대 문학의 심원한 원천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필자는 단테가 연옥 정상에서 그의 구원의 여인이자 사랑의 불꽃인 베아트리체를 만나서 함께 천국의 첫 하늘에 오르는 감동을 시로 지었다. 「천국편」 2곡에 묘사되어 있는 기독교 교리, 신의 사랑, 사람의 사랑, 신화, 과학을 최대한 담아보았다.
1. 위대한 여정을 위한 운명적 준비 - 청신체 활동, 사람을 노래한 시문학
베아트리체에 대한 사랑을 담은 『신생』(La Vita Nuova)을 쓰던 젊은 시절에 단테는 ‘청신체’(dolce stil novo)-‘감미로운 새로운 문체’라는 활동을 했다. 청신체 시문학은 이탈리아 문학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형식은 소네트(sonnet)와 자유로운 발라드이며 신이 아닌 ‘사람’을 대상으로 노래한다. 단테는 작품에서 한 영령에게 청신체를 정의하며 본인을 소개한다.
“사랑이 내게 불어올 때 받아 적고, 사랑이 안에서 불러 주는 대로 드러내려는 사람이라오.”_연옥편 24곡 52~54
- 영감의 원천, 베아트리체
연옥정상(지상천국)에서 베아트리체와 극적인 상봉을 할 때 단테는 여기까지 안내해 준 스승 베르길리우스에게 감격에 겨워 외친다.
“내게는 떨리지 않는 피란 한 방울도 없다오. 내 눈에는 저 어릴 적 불꽃의 표적을 지금 보고 있다오.”_연옥편 30곡 46~48
- 망명과 위대한 집필
작품 속, 1300년 성스러운 희년 부활주간 성금요일 새벽이다. 단테가 저승 여행을 출발하는 날, 여행 기간은 7일 동안이다. 『신곡』 첫 대목을 소개한다.
“우리 인생길 반 고비 올바른 길 잃고서 난 어두운 숲에 있었네.”_지옥편 1곡 1~3
- 최고의 스승 아래 교육
단테는 13세 때 당대 유럽 최고의 지성인 브루네토 라티니(Brunetto Latini)를 스승으로 모시게 된다. 4년 후 17세에 볼로냐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그의 지도를 받았다. 18세에 부친이 사망한 이후에는 스승의 보호를 받게 된다. 스승은 단테의 청소년기 교육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었다. 라티니는 고전에 능통하였다. 그의 저작 『테세로』(Tesero, 보배의 서)는 중세시대 지식의 집대성인 백과사전과 같았다. 그가 프랑스 망명 중에 쓴 백과사전식 3부작 작품이다. 1부는 역사, 우주의 기원, 천문학, 지리에 대하여, 2부는 덕과 죄에 대하여, 3부는 수사학과 정치에 대하여 기술한 유명한 책으로 단테의 집필에 큰 영향을 주었다.
2. 변혁을 향한 단테의 시대적 실천과 잉태한 씨앗들
- 사람의 심리를 다루고 독특한 음률과 리듬으로 창작 - 유럽 문예부흥을 열다
단테가 창작한 『신곡』의 문체는 내용만큼 혁신적이다. 특이하게 11음절 3행 연귀시로 각운을 살려가며 시를 썼다. 독특한 형식과 정신은 한 세대 후배인 페트라르카가 저서 『칸초니에레』로 정립한 소네트(14행 연가)에 영향을 주었다. 이어 영국 소네트 문학이 뒤를 이었다.
토스카나 속어로 쓰기 - 라틴어 배제하는 유럽 민족어운동 시초가 되다
단테는 민중의 언어인 피렌체 속어로 대작을 썼다. 공용어 라틴어를 배제한 혁명적 사건이다. 이 피렌체 방언은 이탈리어 표준어가 되었고, 단테는 ‘이탈리아어의 아버지’라 불리게 된다. 이에 영향을 받은 라틴계의 로망스어 네 속어들(에스파니아어, 포르투갈어, 프랑스어, 루마니아어)이 교황청 언어인 라틴어를 극복하고 각 국가의 표준어로 자리 잡게 된다. 이어 게르만계의 언어와 영어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보카치오는 호메로스가 그리스어를, 베르길리우스가 라틴어를 처음 드높였던 것처럼 단테는 이탈리아어를 처음 드높여 존경받는 언어가 되었다고 평했다.
- 단테의 상상력으로 디자인한 저승 세계 - 문학을 넘어 과학 지평을 넓히다
『신곡』 작품 속 순례 여행의 시기적 배경은 단테 추방 2년 전 1300년부터 시작한다. 이 해는 한 세기의 시작이자, 교황이 ‘희년(禧年, 성스러운 해)으로 선포한 해’라는 특별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 신의 예정설보다 인간의 자유의지와 책임 - 근세 휴머니즘과 계몽주의의 씨앗이 되다
중세 인간은 감수성을 잃고 복종적, 이기주의적인 존재가 되어버렸다. 자신의 의지는 약화 되었고 결국 타인 의지의 노예가 되었다. 통제된 언어와 봉건제에 구속되어 창조성을 상실한 족속으로 전락하였다. 중세시대 타인의 의지란, 로만-카톨릭의 종교 시스템과 켈트·게르만 정복자들의 봉건제도가 두 축을 이룬다.
3. 인류의 위기, 『신곡』에서 길을 찾자
단테는 망명길에서 많은 것을 보았다. 그는 피렌체를 떠나 이탈리아 조국과 유럽을 바라보았고, 그의 눈은 이미 미래를 향하고 있었다. 이러한 통찰로 그는 신의 세계를 성경(에스겔서, 이사야서, 요한계시록 등)과 고대신화와 과학적 지식을 모두 동원하여 엄청난 상상을 해냈다. 그리고 『신곡』을 집필하였다. 서사시에는 작가 단테의 지성과 영성 그리고 감수성이 총동원되어 있다. 아감벤은 “단테는 중세의 신비로움을 갖춘 근세의 시인이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