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에센셜: 정의의 사람들』 수록작 소개
1부 카뮈의 정의; 희곡 「계엄령」과 연극 상연
“너희는 이미 패배한 거야.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너희가 아무리 해도 때려 부술 수 없는 힘이, 두려움과 용기가 한데 섞인,
무지하면서도 영원히 승리하는, 해맑은 광기가 있기 때문이야.
바로 그 힘이 이제 막 솟아오르려 하고 있어.”
─ 「계엄령」 중에서
5부로 구성된 알베르 카뮈의 희곡 「계엄령(L"État de siège)」은 카뮈가 1947년에 발표한 소설 『페스트』와 동일한 소재를 채택하고 있지만 그 형식과 내용은 매우 다르다. 「계엄령」은 매우 스펙터클한 구성을 지니고 있는데, 카뮈는 「일러 두는 말」에서 “서정적인 독백에서 군중극에 이르기까지 무언극, 단순한 대화, 소극(笑劇), 코러스 등을 포함하는 모든 연극적 표현 양식들을 혼합”하고자 시도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에 부응하듯 이 작품은 혜성의 출현, 강풍, 코러스의 등장, 장중하고 역동적인 대사를 구사하며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장루이 바로의 요청으로 집필한 희곡 「계엄령」에서 페스트는 은유적인 긴 독백을 통해 말하는 존재로 등장하며, 젊은 독재자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2차 세계 대전 직후 집필된 이 작품은 전체주의 정권의 작동 방식을 비판하면서, 두려움을 이용한 복종의 메커니즘을 ‘페스트’로 의인화하여 비판한다. 카뮈는 히틀러의 독재를 염두에 두었지만, 무엇보다 1975년까지 지속된 프랑코 정권을 주요 대상으로 삼았다. 실제로 연극의 배경은 안달루시아의 카디스이며, 카뮈는 스페인 황금시대 연극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장루이 바로에게 헌정된 이 연극은 1948년 10월 27일 ‘마들렌 르노 장루이 바로 극단’에 의해 마리니 극장에서 처음으로 공연되었다.
장루이 바로, 발튀스, 마르셀 마르소…. 당대 저항예술의 주축 예술가들 총출동
1948년 10월 27일 마리니 극장에서 처음으로 공연된 「계엄령」에는 지금은 전설이 된 예술가들의 이름이 특히 눈에 띈다. 이 작품의 무대 및 의상을 맡은 폴란드 태생의 화가 발튀스는 어떤 유파에도 속하지 않고, 전통적 범주의 회화를 20세기 회화에서 독특한 화풍으로 되살렸다는 평가를 받은 거장 미술가이며, 음악을 맡은 아르튀르 오네게르는 ‘프랑스 6인조’의 한 사람으로서 유명한 현대음악가이다. 장루이 바로는 앙토넹 아르토, 카뮈와 친분을 쌓은 전위적인 실험극 연출가이자 배우이며, 프랑스의 유명 배우인 마리아 카사레스(는 카뮈의 여러 희곡 작품에서 주인공 역을 맡았으며, 카뮈와 생전 1000여 통이 넘는 편지를 주고받은 벗이었다.
장루이 바로는 「계엄령」에서 페스트에게 침탈당한 민중의 참혹한 상황과 비애감을 팬터마임으로 형상화했는데, 이 작품에서 ‘죽은 자들을 운반하는 자’를 맡은 배우는 오늘날 대중에게도 친숙한 마르셀 마르소다. 그는 2차 세계 대전 시 카뮈처럼 레지스탕스로 활동했으며, 1944년 파리 해방 이후에는 3000여 명의 군인들 앞에서 처음으로 공연을 가졌다. ‘광대 비프’이자 ‘몸으로 시(詩)를 쓴 어릿광대’로도 알려진 마르셀 마르소는 팬터마임의 거장으로서 20세기 이후 행위예술에 크게 기여했다.
2부 카뮈의 부조리; 소설 『페스트』
“내가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
사람은 제각기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그 누구도 그 피해를 입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 『페스트』 중에서
평범하기 그지없는 조용한 해안 도시 오랑에서 언젠가부터 거리로 나와 비틀거리다 죽어 가는 쥐 떼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정부 당국이 페스트를 선포하고 도시를 봉쇄하자 무방비 도시는 대혼란에 빠진다. 『페스트』는 위험이 도사리는 폐쇄된 도시에서 극한의 절망과 마주하는 인간 군상을 묘사한 작품이다. 도피하거나 초월하거나 적극적으로 반항하며 재앙에 맞서거나. 카뮈는 『페스트』에서 극한의 절망과 마주하며 보이는 다양한 인간상을 묘사하며, 의사 리유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내가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 사람은 제각기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그 누구도 그 피해를 입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1947년에 출간된 『페스트(La Peste)』는 출간 즉시 한 달 만에 초판 2만 부가 매진되었고, 그해 ‘비평가상’ 수상작으로 결정되면서 “2차 세계 대전 이후 최대 걸작”이라는 평을 받았다. 페스트라는 비극의 소용돌이 속에서 현실을 직시하며 의연히 운명과 대결하는 인간의 모습을 다룬 『페스트』는 20세기 프랑스 문학이 남긴 기념비적 작품으로, 현재까지 외국어 번역을 제외하고 오로지 프랑스어판만으로 약 500여 만 부가 판매되었다.
3부 카뮈의 반항과 사랑; 『시지프 신화』, 『반항하는 인간』, 『안과 겉』
“마치 호흡과도 같은 이 시간, 불행처럼 어김없이 되찾아 오는 이 시간은
바로 의식의 시간이다. 그가 산꼭대기를 떠나 자신의 소굴을 향해 조금씩
더 깊숙이 내려가는 그 순간순간 시지프는 자신의 운명보다 우월하다.
그는 그의 바위보다 강하다.”
─ 『시지프 신화』 중에서
카뮈는 일찍부터 자신의 작품의 커다란 윤곽을 수첩에 다음과 같이 적어 두었다. 1. 거부(부조리); 이방인, 칼리굴라, 오해, 시지프 신화-방법론적 회의. 2. 긍정(반항); 페스트, 정의의 사람들, 계엄령, 반항하는 인간 3. 사랑: 지금 계획 중, 집필 중. 부조리, 반항, 사랑은 카뮈가 평생 천착한 주제다. 카뮈가 자살과 부조리를 중심으로 시작했던 성찰이 『이방인』과 『시지프 신화』이며, 반항의 문제는 『페스트』와 『반항하는 인간』에 녹아들어 있다.
부조리한 세계 앞에 선 인간의 세 가지 선택지 : 자살, 희망, 반항
시지프, 혹은 지옥에서의 행복
카뮈에게 자살은 공허하고 부조리한 세계를 앞에 둔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제1의 방안이다. 그러나 카뮈에게 그것은 올바른 해답이 아니다. 그것은 “삶을 직시하는 명철한 의식에서 빛의 세계 밖으로의 도피로 인도하는 이 치명적 유희”일 뿐이라는 것이다. 카뮈가 제시하는 제2의 방안은 ‘희망’이다. 그러나 희망 역시 “삶 그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어떤 거창한 관념, 삶을 초월하고 그 삶을 승화시키며 삶에 어떤 의미를 주어 결국은 삶을 배반하는 어떤 거창한 관념을 위해 사는 사람들의 속임수”일 뿐이다. 내세의 희망을 품고 사는 것은 현세에 대한 기만 행위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제3의 방안은 ‘반항’과 그와 동반되는 ‘자유’와 ‘열정’의 감각이다. 카뮈는 앞에서 언급한 두 가지 방안인 ‘자살’과 ‘희망’이 모두 삶을 직시하지 않고 망각과 무(無)로 도피하는 처사라고 한계를 둔다. 그렇다면 인간은 이 세계 앞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그것은 ‘반항’이다. 영원히 돌을 산 위로 밀어 올리기를 반복하는 저주를 받은 그리스 신화의 시시프스와 같은 인생을 사는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럼에도 살아 내려는 반항적 의지와 저주를 한몸에 받아들여 감수하면서도 미소를 띨 수 있는 삶에 대한 열정이다.
“마침내 한 인간이 탄생하는 이 시간,
시대와 시대의 열광을 청춘의 모습 그대로
남겨 두어야 한다. 활이 휘고 활등이 운다.”
─ 「정오의 사상」 중에서
카뮈에게 중요한 것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즉 윤리의 문제다. 그래서 이 책의 주제는 반항론이라는 추상적 개념이기 이전에, 살아 있는 인간과 구체적 삶에 관한 성찰인 ‘반항하는 인간’임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이어 카뮈는 이 책이 앞서 쓴 글들의 연장임을 밝힌다. “이 시론에서 우리는 앞서 자살과 부조리의 개념을 중심으로 시작했던 하나의 성찰을, 살인과 반항의 문제를 앞에 놓고, 이어가 보고자 하는 것이다.” 카뮈가 앞서 자살과 부조리의 개념을 중심으로 시작했던 하나의 성찰은 『이방인』과 『시지프 신화』이며, 이어가 보려는 반항의 문제는 『페스트』와 『반항하는 인간』에 녹아들어 있다.
카뮈에게 부조리와 반항은 동시적이다. 그가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하는 순간 부조리의 감정은 태어난다. 그러나 동시에 삶의 무의미에 항의하는 반항도 태어난다. 『이방인』과 『시지프 신화』에서는 부조리한 감정, 이 헐벗음과 몰이해, 고독 속에서 우리는 왜 계속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싸운다. 이어 『페스트』와 『반항하는 인간』에서는 질문하는 개인에서 나아가 집단을 향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니다(non), 우리는 존재한다’라고. 카뮈는 말한다. “반항은 모든 인간들 위에 최초의 가치를 정립시키는 공통적 토대다. 나는 반항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존재한다.”
“평화는 침묵 속에서 사랑하고 창조하는 것인데!
그러나 인내할 줄 알아야 한다.
잠시 뒤면 태양이 입들을 봉해 버린다”
─ 「수수께끼」 중에서
「안과 겉」은 카뮈의 생전에 출판된 그의 작품들 중에서 사실상 최초로 발표된 것이니 가히 첫 작품이라 할 만하다. 항상 투명하고 단순한, 그러나 정열에 찬 카뮈의 문체에 비하여 이 젊은 시절의 글은 서투르고 불분명한 구석이 많다. 그러한 한계가 때로는 우리에게 유별난 감동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그 서투름 속에서 번민하는 젊음의 진동이 아직도 가라앉지 않은 채 우리의 영혼 속으로 직접 전달되어 오기 때문이다. 빛과 어둠, 프라하와 비첸체, 죽음과 태양 등으로 끊임없이 변주를 거듭하는 삶의 ‘안’과 ‘겉’ - 이 두 가지 뗄 수 없는 상관관계는 알베르 카뮈가 다루는 필생의 주제다. 그래서 작품 「안과 겉」은 그의 모든 작품의 출발이요 원천이다. 이 작품을 이해하지 못하고 카뮈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극단한 의식의 극한점에서 모든 것이 하나로 융합되면서 나의 생은 송두리째 버리든가 받아들이든가 해야 할 하나의 덩어리처럼 생각되는 것이었다.” 이것이 카뮈의 해답이다. 안과 겉은 ‘하나’의 덩어리!
1935년부터 1936년까지 「안과 겉」을, 1936년부터 1937년 「결혼」과 「여름」을 집필할 시기, 카뮈는 교수 자격 시험에서 탈락하고 아내와의 결혼 생활에 위기가 닥치는 등 개인적으로 실망과 좌절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러다 1937년 홀로 떠난 지중해 여행에서 카뮈는 작열하는 태양과 바다 앞에서 지나간 삶을 돌아보고 현실의 삶을 성찰하며, 다시금 글쓰기에 대한 의욕을 되찾는다. 여행자 카뮈가 찾아간 장소들과 그곳에서 느낀 감회와 성찰이 글 속에 반영되어 있다. 풍요와 헐벗음은 서로 만나며, 자신의 찬란함을 과시하는 풍경 앞에 선 인간은 스스로의 위대함을 긍정한다. 신에게 의지하기보다 필연적 운명을 받아들이는 반항하는 인간이기에.
이후 카뮈는 앞서의 ‘부조리’와 ‘반항’의 사이클에서 ‘사랑’과 ‘절도’의 사이클로 진입하며, 자신의 미완성 유작인 『최초의 인간』의 집필 준비를 시작한다. 이에 화답하듯 키요는 「여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카뮈는 「여름」을 ‘태양의’ 에세이 전통 속에 위치시키려고 했다. 그 에세이들은 어느 의미에서는 천진무구한 소명을 상기시킨다. ‘정오의 사상’의 결실인 이 글들은 『반항하는 인간』을 연장하고 그것과 균형 관계를 유지한다. 왜냐하면 사르트르와의 고통스러운 논쟁을 치르고 난 후 이 글들은 유머와 아이러니에도 한몫을 할당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지중해의 자연을 거닐며 카뮈는 자기를 에워싸고 있는 갖가지 신화를 깨뜨릴 방법을 구상한다. 반항하는 인간은 그렇게 지중해의 열기 속에서 탄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