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론
생명성 탐구와 존재의 실존방식
- 정애경 시집 『내 몸엔 모서리가 없다』
강 경 호
(시인, 한국문인협회 평론분과 회장)
1.
시인은 사물과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고 자신의 총체성을 통해 육화된 언어로 시를 형상화시키는 사람이다. 총체성은 시인이 살아온 과정에서 형성된 정서와 사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시인만의 개성있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단초가 된다.
정애경 시인의 언어는 매우 감각적이다. 도발적이기도 하고 원초적 감각을 보여주기도 한다. 정애경 시인의 이전 시집 『발칙한 봄』에서 ‘입술’ ‘매혹’ ‘장미여관’ ‘구애’ ‘숨결’ ‘절정’ 등의 시어가 말해주듯 에로티즘을 통해 생명성을 드러낸다. 시집 『내 몸엔 모서리가 없다』에서는 생명성을 모색하는 시편들이 주류를 이룬다. 원초적인 생명성 탐구와 더불어 위기에 처한 생명들의 안타까운 상황 제시, 생명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시집 한켠에는 존재의 실존방식을 통해 보다 나은 삶을 지향하는, 이른바 견인시 형식의 시편들은 매우 값져보인다. 서정시의 본질이 절망에서 희망을, 불화에서 화해를, 그리고 유토피아를 향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면, 실존방식을 드러내는 정애경 시인의 성찰과 통찰에 관한 치열성은 ‘왜 시를 쓰는가?’에 대한 진중한 질문이 될 것이다.
정애경 시인이 지금까지 천착해 온 ‘사랑’을 주제로 한 시편들은 보다 시적 완성도가 높고 ‘말하는 방식의 새로움’이라는 시적 형식의 성숙함이 엿보인다. 전통적인 ‘사랑’을 노래한 시편들과는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2.
생명성은 존재의 근본이다. 존재는 생명을 가졌을 때 비로소 자신의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예로부터 생명은 신적 존재만이 부여할 수 있다고 여겨왔다. 정애경의 생명성 탐구는 원초적 감각을 통해 생명성의 본질을 묘파하고, 생명의 아름다움과 환희, 그리고 생명의 상처와 강인함을 일깨우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콩나물」에서 ‘콘돔’ ‘발기’ ‘귀두’ 등 성애와 관련된 에로티즘적 상상력과 「발칙한 홍매화」에서 ‘자궁’ ‘홍조 띤 볼’ ‘엷은 입술’ ‘불 지핀 가슴’에서 보듯 ‘홍매화’가 꽃을 피우는 것을 “앞섶 풀어 헤치는” 여성으로 의인화 함으로써 도발적인 언술을 하고 있다. 다음의 「밤나무골 아랫동네 경로당」은 원초적 생명성을 감각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뻐꾸기 우는 유월이면 울울창창
뒷산 밤나무밭은 한창 신혼이다
후끈 달아오른
물오른 잎과 잎을 밀착, 꽃잎 비벼 들추면
질펀히 녹아 흐물거리는 바밤바 맛,
그 남자 거친 압력에 뿜어낸 비릿한 양물에
코를 처박고 헤어 나오지 못하는 신생 꿀벌 떼,
아랫마을 경로당 마당에 은은히 실어 나르는
눈치코치 없는 마파람
가을이 돼서야 열린 자궁을 빠져나온 알밤
한 광주리
반질반질 윤기 나게 실한 귀두를 매만지는 손길
풋밤이 익어가던 한창 시절도
이젠,
까맣게 잊어버린 흐린 기억
수컷 향 진하게 풍겨오는 유월 밤나무골 백발노인,
주책없이 화장실만 들락거리고
- 「밤나무골 아랫동네 경로당」 전문
이 작품은 ‘밤나무’와 ‘신생 꿀벌 떼’라는 자연의 구성원들을 통해 음양의 섭리를 보여줌으로써 생명성을 고양시키고 있다. 일년 중 유월은 모든 생명들이 생기발양하게 약동하는 계절이다. 그러므로 “뻐꾸기 우는 유월이면 울울창창”이고, “뒷산 밤나무밭은 한창 신혼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시적 화자가 주목하는 것은 “밤나무”이다. “후끈 달아오른/물오른 잎과 잎을 밀착, 꽃잎 비벼 들추면/질펀히 녹아 흐물거리는 바밤바 맛,”이 느껴진다. 건강한 ‘밤나무 잎과 잎을 밀착, 꽃잎 비벼’라고 성애를 연상시키는 모습을 통해 ‘질펀히 녹아 흐물거리는 바밤바 맛’이라고 함으로써 생명성을 극대화시킨다. 특히 ‘바밤바’ 아이스크림의 달콤한 미각적 이미지를 구사하여 성애의 황홀함과 즐거움을 원초적 생명성의 본질로 묘사하고 있음은 매우 탁월한 비유이다. “그 남자 거친 압력에 뿜어낸 비릿한 양물”을 통해 생명의 단초를 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비릿한 양물”은 또 다른 생명의 양식이 되고 있다. 꿀벌들이 몰려와 양물, 즉 꿀을 먹기 위해 코를 처박고 있는 모습을 절정에 이른 봄날의 환희를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렇듯 뒷산 밤나무밭에서 밤나무와 꿀벌들이 한창 생명운동을 하고 있을 때 마파람이 “아랫마을 경로당 마당에” 밤나무밭의 생명활동의 정서적 사건들을 실어나른다. 그러나 ‘경로당’은 인생의 봄날이 지나간 노인들이 모이는 공간이어서 “눈치코치 없는 마파람”이라고 하는 것이다. 즉, “풋밤이 익어가던 한창 시절도/이젠,/까맣게 잊어버린 흐린 기억”만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수컷 향 진하게 풍겨오는 유월 밤나무골”과 “백발노인”을 대비시켜 우주적 질서에 놓여있는 생명성을 구체적인 자연현상을 통해 명쾌하게 노래하고 있다.
정애경 시인의 생명성 시편 작품세계는 생명성을 고양시키는 것만이 아니다. 「벚나무 모텔」은 벚꽃이 피는 이른 봄날, “벚나무 모텔은 만석이었다”고 하듯 벚꽃이 만발한 벚나무를 ‘모텔’로 비유하여 손님이 많은 것으로 의인화하였다. 그러나 재개발공사 기계음과 벚나무 모텔을 가지치기로 베어내어 모텔의 손님이었던 벌과 새가 어디로 갈 것인지를 통해 생명의 위기를 모색하고 있다. 「해체중」에서도 재개발로 사라지는 아파트들과 함께 아름드리 소나무, 벚나무가 전기톱에 “어깨가 싹둑 잘려 나”가는 폭력성을 형상화시켰다. 「상가 앞 가로수 등걸에선」에서는 “팔목이 잘린 채 외다리로 버티고 있는 가로수” 등 생명성 모색 시편의 한켠에서는 인간의 탐욕에 의해 자연의 상징이랄 수 있는 나무들이 잘려나가고 있는 모습을 고발하고 있다. 「매미는 부재중」에서는 이러한 비극성과 폭력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울음이 메말라 버틴 손톱을 놓아버렸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
한번은 천둥으로 울고
한번은 장대비로 기울고
살아있다는 방증을 서로의 울대를 높이는 일
나의 나무가 잘렸다
비통할 슬픔의 진물을 닦을 시간도 없이
이제 천둥의 외침도 쩌렁쩌렁했던 울대의 각도,
흡수되지 못하고 고공행진이다
허공에 소음이 직진하는 결 따라
나의 나무는 풀썩, 드러눕는다 사지가 절단 난 채
어제 날던 새가 종적을 찾아왔건만 휑한 허공을
날개로 긁고 있다
허물어진 헐린 바닥을 포크레인이 긁고 있는 가장자리
소처럼 덩치 큰, 나무가 뼈만 앙상히 말라가고 있다
톱날에 마른 상흔만 흥건한 채
- 「매미는 부재중」 전문
‘만물유생萬物有生’이라 하여 모든 생명체를 인격적으로 대했던 동양사상의 핵심은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상생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와 함께 해 온 서구의 근대近代는 인간 중심의 휴머니즘으로 자연을 재화적 가치, 그리고 개발의 대상으로 인식해 왔다. 그러므로 오늘날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상생을 지향하는 탈근대는 성찰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매미는 부재중」이라는 시제가 암시하듯 자연의 구성원인 ‘매미’의 부재는 근대의 폐해, 즉 인간의 탐욕에 의해 사라지는 생명의 상징이다. 시적 화자에게 ‘나무’는 자신의 자아이기도 하다. 그런 까닭에 ‘나의 나무’라고 한다. 그런데 “나의 나무가 잘렸다”. 한때는 매미가 울었던 나무이다. ‘울음’은 존재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그러므로 매미가 “살아있다는 방증을 서로의 울대를 높이는 일”이라고 하는 것이다. 매미의 생존의 현장인 ‘나무’가 잘려나감으로써 “비통할 슬픔의 진물을 닦을 시간도 없이/이제 천둥의 외침도 쩌렁쩌렁했던 울대”를 흡수하지 못한다. “허물어진 헐린 바닥을 포크레인이 긁고 있는 가장자리/소처럼 덩치 큰, 나무가 뼈만 앙상히 말라가”는 중이다. 나무는 “톱날에 마른 상흔만 흥건한 채” 버려져 있다. 생태학적인 측면에서 나무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인간의 행위를 문명 비판적 시각으로 응시하고 있다. ‘나무’로 상징되는 자연을 지키고자 하는 시적 화자의 절실함은 ‘나의 나무’라고 나무에 대한 각별한 마음이 엿보인다. 그런데 나무가 톱날에 사지가 절단나 풀썩 드러눕는 모습에 얼마나 비통하고 고통스럽겠는가. “어제 날던 새가 종적을 찾아왔건만 휑한 허공을/날개로 긁고 있”을 뿐이다. 시적 화자의 상처와 슬픔을 통해 인간의 잣대로 재단되어 사라지는 생명의 울음임을 강조하고 있다.
3.
인간은 끊임없이 보다나은 세계를 지향한다. 유토피아를 꿈꾸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삶의 환경뿐만 아니라 먼저 수행과 성찰을 통해 인간다움을 지켜나가는 노력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 인간다움이란, 공자가 말한 ‘이립而立’, 불혹不惑, 지천명知天命, 이순耳順은 단순히 현상적이고 생물학적인 시간개념이 아니다. 삿됨이 없는 삶을 살아가고자하는 인간의 높은 정신적 경지를 말한다. 자신의 삶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러기 위해서 마음수행은 물론 성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정애경 시인의 시적 경향에서 돋보이는 것은 실존방식에 대한 시인의 성찰의 태도이다. 이러한 시편에서 특히 눈에 띄는 중심 시어는 ‘모서리’이다. 주지하다시피 모서리는 모가 나 있다. ‘모’는 쑥 틔어나온 귀퉁이로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사람을 일컫기도 한다. ‘모’를 시속에 끌어들인 「가을을 깎다」에서 “아직 깎아내지 못한 나를” “모나지 않게, 돌려깎아/모서리를” 깎는다고 한다. 깎아내는 행위의 대상을 모서리로 인식하고 있어, 깎음으로써 모나지 않게 한다고 한다. 「버거운 하루 칼춤을 춘다」에서도 “밤을 깎으면 밤이 되고/사과를 깎으면 사과가 된다”고 하여, ‘깎음’이라는 행위의 대상을 모나지 않게 함으로써 모서리를 버린다고 한다. ‘깎음’이 수행하는 과정으로 인식되고 있다.
다음의 「내 몸엔 모서리가 없다」는 ‘모서리’의 의미를 통해 시인이 지향하는 실존방식을 오롯하게 보여준다.
나는 모서리가 없다
손톱 발톱 머리카락까지도
둥근 기둥을 따라 더듬어가면
부드러운 곡선에선 찰랑거리는 소리
그 속엔
해, 달 한줄기 둥글게 말아져 혈관에 고여
붉은 혈맥 뿜어 올린 나만의 꽃, 피웠다
가끔 덜 여문 언어가 튀어나와 모서리가 된 말,
이젠 다듬어져야 하는 저무는 나이,
둥글게 밀어 올린 허공에 둥글어져 버석해진
모서리 없는 고목의 휘어진 척추처럼
내 몸엔 모서리가 없다
- 「내 몸엔 모서리가 없다」 전문
이 작품은 이번 시집의 표제작이다. 흔히 시인들이 시적지향을 대표하는 시를 시집의 표제작으로 사용하는 경우처럼 정애경 시인의 시집 『내 몸엔 모서리가 없다』에서 시인의 시적 무게를 어디에 두고 있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작품이다.
“나는 모서리가 없다”고 시의 첫행에서 매우 간결하게 시적 화자가 지향하는 삶의 방향을 말하고 있다. ‘모서리’는 앞에서 밝힌 것처럼 돌출된, 원만하지 못한 사람의 성품을 말한다. 그런데 시적 화자는 “손톱 발톱 머리카락까지도/둥근 기둥을 따라 더듬어가면/부드러운 곡선에선 찰랑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신체의 모든 부분이 둥글어 부드러운 곡선을 하고 있음으로 찰랑거리는 소리를 내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부드러운 곡선’과 ‘찰랑거리는 소리’가 의미하는 것처럼 성품이 원만할 때 가능하다.
그러나 시적 화자는 “가끔 덜 여문 언어가 튀어나와 모서리가 된 말,”이 있다고 진술한다. 그러기 때문에 더욱 부드러워져야 한다. 시인의 고백처럼 “이젠 다듬어져야 하는 저무는 나이,”인 까닭이다. 젊은 시절 튀는 피처럼 모서리가 된 말들을 내뱉어내기도 하였지만 이제는 내적 성숙을 위해 “둥글게 밀어 올린 허공에 둥글어져 버석해진/모서리 없는 고목의 휘어진 척추처럼/내 몸엔 모서리가 없”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다음의 「내 입에선 가끔 삑사리가 났다」는 ‘삑사리 같은 말’, 즉 잘못된 허튼 말에 대해 성찰하고 있다.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말을 했는가
그러나 얼마나 많은 할 말이 남았는가
내 입은 피아노 같아서
때론 조율되지 않은 건반에서
삑사리같이
말이 쏟아져 나오기도 하였다
두들기고 씹고 지져대고 나면
후련했던 적도 있었으나
입 속이 따가웠다
입 천장이 헐어 있던 날도 있었다
음 이탈로 고막을 막아야 했던
피아노 앞에서
내 입의 삑사리를 떠올려 보았다
오늘은 꽃을 보러 가기로 한다
꽃을 보아야 꽃을 말할 수 있음이었으니
조율사는 지금 얼크러진 피아노의 입안에서
삑사리를 찾아내어
입을 조율하고 있는 중이다
- 「내 입에선 가끔 삑사리가 났다」 전문
앞의 작품들의 ‘모서리’가 ‘잘못된 말’ ‘덜 여문 말’에서 비롯된 것인 바, 시인은 말이 존재의 수단임을 전제로 삑사리 같은 말을 함부로 내뱉음을 성찰하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말을 했는가/그러나 얼마나 많은 할 말이 남았는가”라고 자신에게 되묻는다. 말을 통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으며, 앞으로 어떤 말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이끌어갈 것인가에 대한 인식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말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말한다. 그런 까닭에 시적 화자의 입은 피아노같은 것이어서 “때론 조율되지 않은 건반에서/삑사리같이/말이 쏟아져 나오기도 하였다”고 고백한다. ‘정제되지 않은 말’, ‘감정을 실은 말’은 누군가의 가슴을 후벼 파고든다. 이럴 때는 “입 속이 따가웠다”고 솔직한 감정을 드러낸다. ‘삑소리’는 ‘조율되지 않은 건반’을 누를 때 나오는 소리를 음이탈을 말한다. 그러므로 ‘삑사리’는 상대에게는 상처와 폭력이 되는 말이다. 시적 화자 또한 누군가로부터 투척된 삑사리에 맞아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음 이탈로 고막을 막아야 했던/피아노 앞에서/내 입의 삑사리를 떠올려”본다. 그리고 시적 화자 자신이기도 한 조율사는 “지금 얼크러진 피아노의 입안에서/삑사리를 찾아내어/입을 조율하고 있는 중이다”.
이 작품은 시적 화자가 스스로를 ‘피아노’라는 악기에 비유한다. 물론 세상의 모든 사람들 또한 피아노와 같은 존재이다. 때로는 피아노가 조율되지 않아 음이탈이 있듯 인간도 잘못된 말을 할 때가 있다며 자신을 성찰하고 조율이 잘된 피아노처럼 아름다운 말, 고운 선율의 악기가 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이밖에도 실존방식을 묘파한 정애경 시인의 작품에서는 ‘줍다’라는 명제에 천착하기도 한다. “줍는다는 건 버리는 것을 닮았다” “함께 살아버린 날들을 파헤쳐 희로애락 한 줌”(「줍다」)이라며 ‘비움’을 통해 자신의 정신성을 견고하게 하고자 한다.
「줍다」에서는 ‘자유’라는 명제에 생각이 다가가 있다. “감금된 생각이 문을 열고 나가면 몸에 자유라고 낙관을 찍어 거리를 활보한다” “살아있는 것들은 통제구역에서 더 큰 자유를 갈망하며 목젖이 타도록 해갈의 갈증을 느낀다”고 함으로써 “나의 생각을 가둬둘 수 없어 네가 있는 곳으로 방목한다”고 자유로운 영혼을 노래한다. 시인의 삶의 지향과 실존방식이 어디에 있는지를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4.
‘사랑’의 정서는 실존을 위한 인간의 위대한 에너지로 작용한다. 이성에 대한 애틋함과 그리움, 대상에 대한 조건없는 희생적인 사랑, 즉 에로스적 사랑과 아가페적 사랑을 발견해 왔다. 그러므로 ‘사랑’의 정서는 서정시의 출발이며, 인류의 역사와 함께 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랑’의 정서를 많은 시인들이 작품을 통해 노래하고 있다.
정애경 시인의 사랑시편은 격정적이지 않아 잔잔한 물결처럼 스며든다. 주로 자연이라는 상관물을 은유적, 상징적으로 내세워 시적완성도가 높고 설득력을 갖는다. 때로는 관념을 풀어쓰기도 하고 때로는 시인의 일어나는 연민과 그리움의 사랑의 감정들을 시로 형상화하였다.
「데이다」에서 가을 노을이 붉은 것과 붉은 단풍의 색채이미지를 ‘뜨거운 가슴’ ‘불꽃’ 등의 촉각이미지로 치환하여 사랑의 불에 데여 흉터가 생겼다고 한다. ‘사랑’의 의미를 관념적으로 해석하였다. 이에 반해 「문득」은 “깊은 밤 수신문자 한 줄”을 받은 후 “수년이 흘러도 하수처럼 설”렌다고 한다. “짧막한 그리움의 시간, 잠시 흔들렸”다고 고백하는 마음 속에 깊은 밤 문자 한 줄을 남긴 그에 대한 그리움에서 사랑의 감정을 읽어낼 수 있다. 이렇듯 정애경 시인의 사랑시편은 ‘그리움’과 ‘설레임’의 정서가 깃들어 있다.
그대 올 줄 알고
꽃으로 피어 꽃바람 부릅니다
더디 천천히 바람 타고 오셔요
여러 날 그리움에 배고픔도 모르고
눈멀었습니다
눈물 방울 겹겹이 굳어 꽃잎 된 사연
그대 아실른지
꽃 지면 그대 뒤돌아갈 것 같아서
나 드라이플라워, 뭉텅 피었습니다
촛농 빚어 단단히 굳혀
흔들리지 않는 계절 행간에서
그대 숨결로 오롯이 꽃불 피어오릅니다
여러 날,
그 꽃만 바라보셔요
- 「그대 생각」 전문
시적 화자는 그리운 이가 올 줄 알고 꽃으로 피었다. 그 동안 “여러 날 그리움에 배고픔도 모르고/눈멀었”는데, 그대를 기다리며 눈물 겹겹이 굳어 꽃잎이 되어 꽃으로 피어났다. 시적 화자가 꽃으로 피어난 것은 그대가 꽃을 사랑하기 때문으로, 그대의 사랑을 오래 받고 싶어 드라이플라워가 되었다. 꽃은 생화가 아니라 말린 꽃이다. “꽃 지면 그대 뒤돌아갈 것 같아서/나 드라이플라워, 뭉텅 피었습니다”라고 진술하고 있다. 그러므로 “흔들리지 않는 계절 행간에서/그대 숨결로 오롯이 꽃불 피어오”른다. 지지 않는 꽃으로 피어있으며 그대 떠나지 않고 온전하게 사랑해줄 것이라는 믿음을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시적 화자가 사랑하는 그대는 “꽃 지면 그대 뒤돌아갈 것 같”은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그럼에도 그대를 향한 그리움으로 사랑을 기다리는 시적 화자는 김소월의 「진달래꽃」에서의 여성 화자와 대비된다. 즉 「진달래꽃」의 여성 화자는 체념의 정서를 보여주지만 정애경 시인의 「그대 생각」에서의 화자는 “그대”라는 시적 대상에게 ‘꽃’으로 피어나고자 하는 적극성을 드러낸다. ‘꽃’으로 피어남으로서 사랑하는 이를 떠나지 않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여러 날,/그 꽃만 바라보셔요”라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
이 작품을 통해 정애경 시인의 사랑의 주체는 여성적이지만 나약하거나 체념하는 전통적 여성성과는 다르게 자신의 사랑을 지켜내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존재로 보여진다.
다음의 「남자인 척 하는 남자」는 시인의 삶에서의 체험을 시 속으로 끌어들여 일상에서 만나는 사랑의 정서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하였다.
한 번도 당신은 아프다고 말 한 적 없었지요
평생, 든든한 나무로만 생각했나 봐요
나무도 나이 들면 작아지고 점점 말라가요
깨달음은 늘 어떤 원인에 의해 늦게 반응해요
당신은 마른 눈물을 훔치곤
눈동자를 허공에 두고 별일 아닌 듯 감정 정리를 하죠
남자여서, 남자이니까, 남자인 척
새벽, 뒤척이는 등줄기에 고민을 괴고
묵힌 체증이 식은땀으로 흥건할 때
혼자 삭혀야 하는 치통 같은 시간으로 꼬박 샌 밤
야윈 낯빛에 드리운 퀭한 그림자
남자의 안색을 살필 때 연민이 밀려와 울컥,
미처 정리되지 않은 감정이 볼을 타고 흐르죠
이젠 나무에서 벗어나 센 척하지 않아도 돼요
충분했으니, 그간 가장으로서 충분했으니
- 「남자인 척 하는 남자」 전문
작품 속의 정황으로 보아 “평생, 든든한 나무로만 생각”한 당신은 시적 화자의 남편으로 생각해도 무방하다. 시인이 자신의 이야기를 시로 형상화시킨 셈이다. “한 번도 당신은 아프다고 말 한 적 없”고, “별일 아닌 듯 감정 정리를 하”고, “남자여서, 남자이니까, 남자인 척” 센 척한 사람이 남편이다. 그러므로 “평생, 든든한 나무로만 생각했”던 것이다. 흔히 우리의 오랜 전통에서 남성은 가장의 지위를 지녀왔다. 오늘날 가장의 개념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정애경 시인의 세대에서 가장은 남편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러한 가장이 “새벽, 뒤척이는 등줄기에 고민을 괴고/묵힌 체증이 식은땀으로 흥건”하다. 뿐만 아니라 “혼자 삭혀야 하는 치통 같은 시간으로 꼬박” 밤을 새고, “야윈 낯빛에” 퀭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당신’ 또는 ‘남자’로 불리우는 시적 대상의 변화에 시적 주체인 화자는 “든든한 나무”도 “나이 들면 작아지고 점점 말라가”는 것을 깨닫는다. 시적 화자가 “남자의 안색을 살필 때 연민이 밀려와 울컥,/미처 정리되지 않은 감정이 볼을 타고 흐”른다. 커다란 나무처럼 그늘을 드리우고 땡볕으로부터 가족을 지키려는 나무처럼 힘들고, 외로웠을 ‘남자’의 고통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시적 화자는 마침내 “이젠 나무에서 벗어나”라고 한다. “센 척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그동안 “충분했으니, 그간 가장으로서 충분했”다고도 말해준다.
이 작품 속에서 시적 화자가 남자를 바라보는 눈길에 따스한 사랑이 깃들어 있다. 물론 ‘남자’ 역시, 즉 남편 시적 화자를 포함한 가족을 위하는 마음이 지긋했음은 당연하다. 서로를 위하는 마음들이 만나 흐르는 감정들이 뜨겁다. 서정시의 힘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사랑을 줍다」에서도 잠시 길을 떠났다가 “다시 그 자리/그리고 제자리”로 돌아온 시적 화자가 “빈집에 불을” 켜자 “당신의 온기로//이제 그대가 곁에 있어/다시 사랑을 깨문다”며 사랑하는 이를 통해 다시 사랑을 확인한다.
「무지개꽃」에서는 “네가 지켜보는 동안/네가 지켜주는 일생/무지개는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한다. ‘무지개’는 아름답고 빛나는 사랑을 의미한다. 「십자가」는 ‘십자가’가 상징하는 희생과 사랑에 견주어 ‘그대의 사랑’을 영원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