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은 위대하다! 그런데 한국말은?
바야흐로 ‘K(케이)’로 통하는 세상이다. 세계 어디서나 ‘K’ 하면 한국, 한국 하면 ‘K’를 떠올린다. ‘K’와 ‘한(韓)’은 멀리는 삼한에서부터 지금의 한국에 이르기까지, 한국말을 바탕으로 함께 어울려 사는 겨레를 아우르는 말이다. 한국말로 머리가 돌아가고, 머리를 굴리고, 머리를 쓰며, 깨어서는 한국말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자면서는 한국말로 꿈을 꾸는 이들이 함께 문화를 가꾸고, 문명을 일으키고, 역사를 만들어왔다.
세종대왕 덕분에 한국말로 생각한 것을 그대로 옮길 수 있는 글자가 생긴 뒤로, 오늘날 거의 모든 한국인이 한글을 읽고 쓴다. 많은 한국인이 한글이야말로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글자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런데 한글은 그토록 자랑거리로 여기면서, 한국말에는 별다른 의미나 가치를 두지 않는다. 영어나 중국어에 대해서는 아주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서 어원을 찾고, 글자의 생김새와 뜻을 짚어가며 철학적 해석과 의미 부여에 힘을 쏟는 것과 대조적이다.
그런데 한국말로 생각을 펼치는 사람과, 영어나 중국어로 생각을 펼치는 사람의 머릿속과 마음속이 과연 똑같을까? 사람들이 말로 생각을 펼쳐서 느끼고 아는 일을 할 때, 어떤 말로 생각을 펼치느냐에 따라 느낌도 앎도 조금씩 달라진다. 그렇게 서로 다른 말을 쓰는 사람들이 긴 세월 동안 저마다 새롭게 만들어온 말에는 그들만의 정신적 DNA가 새겨져 있다. 수천 년에 걸쳐 같은 말을 주고받으며 살아온 ‘한(韓)-K’ 겨레의 정신적 DNA가 오롯이 담겨 있는 한국말, 그 바탕을 환하게 밝혀야 하는 까닭이다.
한국말에 깃든 한국인의 삶과 철학을 들여다보다
나, 너, 남, 우리, 사람, 몸, 마음, 머리, 살다, 웃다, 울다, 꿈꾸다, 미치다, 사랑하다, 반갑다, 하늘, 바다, 해, 달, 땅, 물, 불, 헤아리다, 궁금하다, 아름답다, 무엇, 이것, 저것, 그것, 말, 말씀, 활짝, 살짝, 밖, 안, 겉, 속, 참말, 거짓말, 있음, 없음, 돈, 소통….
『묻따풀 한국말』은 이렇게 우리가 매일 보고, 듣고, 말하고, SNS로 주고받는 한국말 160여 개를 새롭게 묻고 따져서 풀어낸 책이다. 흔히 쓰는 한국말의 뿌리와 생애를 더듬어서, 한국말에 깃든 한국인의 삶과 철학을 펼쳐 보이고 있다.
‘첫째 판_한국말로 한국사람 깊이 보기’에서는 ‘나는 누구이고 사람은 무엇인가’라는 가장 본질적인 물음으로 시작해서, ‘너, 남, 저, 우리, 저희, 저들, 임(님)’ 등과 같이 대상을 일컫는 말의 뜻, 그리고 ‘노릇, 구실’처럼 사람이 사람으로서 감당해야 할 몫과, ‘묻다, 따지다, 풀다, 깨치다, 익히다, 배우다’처럼 사람이 추구해야 할 일들의 의미를 풀어낸다. 다음으로 ‘둘째 판_한국말로 사람살이 깊이 보기’에서는 ‘살다, 웃다, 울다, 꿈꾸다, 미치다, 사랑하다, 반갑다, 다투다’와 같이, 한국인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면서 느끼고 드러내고 주고받는 희로애락의 말들을 깊이 들여다본다.
이어서 ‘셋째 판_한국말로 세상살이 깊이 보기’에서는 ‘시간, 공간, 하늘, 바다, 해, 달, 땅, 물, 불, 바람’과 같은 유형·무형의 환경과, 끊임없이 변하고 흘러가는 세상을 겪다 보면 절로 하게 되는 ‘헤아리다, 궁금하다, 많다, 되다, 바뀌다, 아름답다, 일컫다, 가르다, 가리키다’와 같은 말들을 풀어본다. ‘넷째 판_한국말로 인문학 하기’에서는 기존의 인문학 세계에서 군소리로 취급받아온 ‘것’을 한국인의 인식론과 존재론의 바탕을 이루는 개념어로 새롭게 조명해보고, ‘있다/없다, 밖/안, 겉/속, 참말/거짓말’과 같은 말들에 배어 있는 한국인의 철학을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다섯째 판_서르 ᄉᆞᄆᆞᆺ디 아니ᄒᆞᆯᄊᆡ’에서는 ‘나라/國家’, ‘가운데/中/center’, ‘뫼/山/mountain’ 등, 겉으로는 같은 것을 가리키는 듯해도 속으로는 바탕을 달리하는 한/중/영 낱말들을 비교해서 풀어본다.
누구나 쓰지만 아무도 몰랐던 한국말 바탕 찾기
이름을 짓는 일은 혼자서도 할 수 있지만, 이름을 부르는 일은 다 같이 해야 한다. 사람들이 다 같이 불러줄 때 비로소 이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만물의 이름 속에는, 그 이름을 함께 불러온 모든 사람의 슬기가 하나로 어우러져 있다.
이 책이 ‘나는 무엇이고 사람은 무엇인가’로 시작하는 것도 그래서다. 한국인이 입에 달고 사는 ‘나’라는 말 하나도 ‘그냥 나’가 아님을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나다, 낳다, 내다’에 바탕을 둔 말로, ‘나=나고, 낳고, 낸 것’이다. 즉, ‘나’는 싹이 나듯 절로 ‘난 것’이자, 어버이가 ‘낳은 것’이자, 해·달·물·불·흙과 같은 것이 ‘낸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살리는 일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일을 하는 임자이다. 사람은 온갖 것이 가진 살리는 힘을 살려서 문화를 가꾸고 문명을 일구는 일을 해왔다.
‘반갑다’라는 말은 또 어떠한가. ‘반갑다=반(반쪽)+갑다(같다)’로, ‘반갑다’는 ‘너는 나의 반쪽과 같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반갑습니다”라고 인사하는 것은 “나와 네가 이쪽의 반과 저쪽의 반으로 만나 하나의 우리가 되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우리가 산(山)을 쓰면서 버린 이름, ‘뫼’는 ‘모+이’, 즉 온갖 것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넓고 평평한 땅에서 뾰족하게 솟아 있는 모양의 ‘山’과 달리, 한국사람에게 ‘뫼’는 ‘모든 것이 모여 있는 곳’, 온갖 것들이 터를 잡고 살아가는 곳이었다.
누군가는, 한국인 아무나한테 풀어보라고 해도 이 정도는 하겠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다. 어떤 한국말이 왜 그런 뜻을 갖게 되었는지는, 그 말의 바탕을 곰곰이 살펴보면 한국인 누구나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으니, 머리를 맞대고 다 함께 묻고 따지고 풀어보자는 것이다.
또 누군가는, 비슷한 글자를 가지고 억지로 꿰맞춘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저자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인다. 이 책에서 묻고 따진 것이 모두 맞거나 모두 옳다고 할 수 없으며, 보기에 따라서 이렇게 볼 수도, 저렇게 볼 수도 있다고 말이다. 저자는 다만 이 책이 한국말을 새롭게 보고, 한국말의 바탕에 관심을 갖고, 한국말의 뿌리를 찾는 일에 불씨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더 많은 이들에게 이렇게 묻고자 한다.
“당신이 묻고 따지고 풀어보고 싶은, 당신의 ‘묻따풀 한국말’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