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적 감각만으론 도달할 수 없는 저 너머 세계에 대한 시인들의 탐구
보편적 대상을 바라보는 깊고 참신하고 특별한 시선들
1부 ‘2000년대 젊은 시인들의 시적 원형구조’에서 저자는 2000년대 젊은 시인들의 작품들을 통해 시인들의 시적 상상력과 원형구조를 살핀다. 저자는 프랑스 신화학자 뤼시앵 보이아가 제시한 ‘초월적 인식’, ‘이타성’, ‘통일성’, ‘영혼과 내세’, ‘탈주’ 등 다섯 개의 원형구조를 기준으로 삼아 이재훈, 김민정, 황병승, 김중일, 조동범의 시를 예시로 들면서 2000년대 시인들의 상상력 세계에 접근하고자 한다. 2000년대에 등단한 일군의 젊은 시인들이 새로운 문학의 주체로 부상한 시점에서 그들 상상력의 원형구조를 살피는 일은 매우 유효한 가치를 지닌다. 시 작품에는 개인의 차원이든 사회 공동체의 차원이든 한 편의 작품을 통해 일구어가는 상상력의 원초적 원리가 간직되어 있기 때문이다.
2부 ‘시의 발견, 기쁨의 자리’에서는 2010년 이후 발표된 시들을 보며, 세계를 감각하는 자세, 외면 및 내면 풍경을 바라보는 시선, 현실과 욕망의 부딪침, 감각과 감정의 관계 등 이 시대 우리 시 정신을 관통하는 여러 테마들을 살펴본다.
저자는 최종천, 이정록, 길상호, 윤제림의 시편들(‘삶의 무효성에 대한 고전적 응답’)에서 “서술되지 않은 공허와 공백의 의미를 추적하고 최대한 수렴”하여 “주변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삶의 무효성에 맞서 응시의 또 다른 방식으로 삶의 실감을 보여주는 미덕”을 발견하고, 권대웅, 박소란, 유종인, 문정영의 시(‘풍경의 뉘앙스와 표정’)에서 삶에 대한 낭만적 환상이나 욕망의 매개가 아닌 “현실에 대한 어떤 생산적 의미나 항체를 방출하는 공간으로 재창조”된 자연을 본다. 이 세계와 자신을 규정하는 근본적 구조가 존재한다고 믿으며 “일상의 현실 속에서 이 세계 내부의 존재적 관계를 의심”하는 시인 특유의 모습을 변종태, 이윤학, 문성해의 시(‘해명할 수 없는 어떤 본래의 삶’)에서 발견하기도 한다. 내부와 외부를 향하는 시인들의 탐구를 통해 독자는 시인들의 감각과 체험을 경험하고, 세계가 하나로 본질적으로 통합되는 과정과도 조응한다. 그리고 이러한 미학적 여정은 어떤 경계를 넘나드는 일이 된다.
3부 ‘당선 시로 배우는 시의 기술’에서는 시인의 꿈을 이루기 위해 시 쓰기를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자, 신춘문예와 주요 문예지의 당선 작품을 통해 시를 배우는 공격적이면서 노골적인 글쓰기를 시도한다. 시인으로서의 첫 작품인 당선작에는 심사위원들이 검증한 가치뿐만 아니라 창작자의 수련법과 그들만의 고유한 기술이 날것으로 들어 있다. 이 글에서 저자는 심사위원들이 요구하는 ‘개성’은 무엇을 말하는지, 시에서의 ‘새로움’이란 얼마만큼 새로워야 하는지, 심사위원들이 신인의 작품을 볼 때 조화나 완결성보다는 힘찬 문장이나 자신감, 즉 ‘가능성’에 더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등, 시인이 되려는 사람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해준다.
‘발명과 발견을 위한 발상의 기술’에서는 씨앗에서 발아하듯 시가 탄생하는 과정을 김복희, 이제니, 오경은, 윤진화 시인의 당선작을 통해 구체적으로 살피고, 마지막 글인 ‘이미지를 위한 기술’에서는 ‘이미지’의 개념을 짚어보는 것을 시작으로 김민철, 김진규 시인의 등단작을 읽으면서 “눈에 보이는 것 너머까지 바라볼 수 있는, 혹은 바라보게 만드는 이미지의 힘이 시인에게는 꼭 필요하다”고 역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