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만으로 안 되는 일, 사람의 힘으로 이루다!”
본받고 싶은 사회적경제기업을 인터뷰한 31개의 탐방 기록
사회적경제기업이란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면서 동시에 수익도 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 기업이다. 한 번에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보겠다는 것이다. 과연 가능할까? 목표는 근사하지만 막상 실행하려면 한 가지만 하는 것보다 훨씬 힘들지 않을까? 책은 그런 의문에 대한 시원한 해답이다.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달성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결코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는 것.
먼저 다양한 분야에서 각자 자신의 길을 열심히, 그리고 안정적으로 잘 가고 있는 사회적경제기업이 이토록 많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자본의 위력이 과거 어느 때보다 강력해지는 바람에 존중받아야 할 인간과 인격이 오히려 초라해지고 만 오늘날, 사회적경제기업은 그 존재만으로도 많은 이에게 위로와 용기를 준다.
사회적경제기업이 자본기업과 가장 다른 점은 효율과 이윤보다는 사람과 공동체를 우선순위에 둔다는 것이다. 상호 신뢰와 호혜, 소통과 연대는 사회적경제를 지탱하는 기본 원리다. 사회적경제기업의 형태 가운데 가장 보편적인 것은 협동조합이다. 우리나라에서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된 것은 2012년이고, 2012년은 UN이 ‘세계 협동조합의 해’로 지정한 해이기도 하다. 그리고 UN은 그로부터 13년 만인 2025년을 두 번째 세계 협동조합의 해로 지정했다. 전 세계적인 불안정과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가 협동조합이라는 경제 형태에 있다는 데 많은 이가 동의한다는 뜻이다.
주목할 키워드 - 장애인, 기후위기, 지역 소멸
저자는 총 31곳의 사회적경제기업을 직접 방문해서 그 기업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을 심층 인터뷰했다. 그리고 그곳들을 장애인, 기후위기, 지역 소멸, 청년, 지역자산화, 제조와 유통, 혁신의 7개 분야로 나누었다. 우리가 돌보아야 할 사회적 가치에 주목한 결과다.
1장 〈장애를 넘는 공존의 꿈〉에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고 있는 4곳을 소개한다. 대구의 ‘안심마을’은 장애가 있는 아이가 태어났을 때 어린이집부터 초, 중, 고등학교를 거쳐 일자리를 가질 때까지 장애, 비장애인의 구분 없이 함께 교육받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곳이다. ‘부산커피협동조합’과 ‘찬솔사회적협동조합’은 지적장애를 가진 청년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교육과 훈련을 하고 경영도 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곳이다. 시각장애인들의 기업인 참손길공동체협동조합은 안마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극복하며 안마 1위 기업이 되겠다는 비전을 세웠다.
2장 〈기후위기에 맞서〉에서는 온 지구를 덮어가는 쓰레기와 망가져가는 환경에 대처하는 기업들을 다룬다. 주민과 함께 태양광발전을 하고 그 수익금을 다시 주민들과 나누는 전남 신안군의 ‘안좌면신재생에너지주민·군협동조합’, 제주도에서 면생리대 사업과 제로웨이스트숍 운영을 하는 ‘함께하는그날협동조합’, 폐가전에서 플라스틱 분리 사업을 하는 경남 창원의 ‘(주)늘푸른자원’, 경기도 내 14개 지역자활센터의 세척센터가 모여서 창립한 ‘라라워시프랜차이즈협동조합’이다.
3장 〈지역 소멸을 뛰어넘어〉에서는 급격한 인구 감소와 지역 불균형으로 위기에 처한 지역을 지키고 있는 충북 옥천의 ‘(주)고래실’, 목포의 ‘건맥1897협동조합’, 경남 남해의 ‘동고동락협동조합’, ‘경남산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의 도전과 시련, 노력과 성공 이야기를 듣는다. 고래실은 옥천의 청소년, 청년, 지역 주민들이 함께 쓰는 문화 공간 ‘둠벙’을 운영하면서 잡지 〈월간 옥이네〉를 충실히 발행하고 있고, 건맥1897협동조합은 건어물과 맥주를 콘셉트로 한 맥주 축제를 통해 건어물 거리를 다시 살리고 있다. 동고동락협동조합은 인구 감소로 폐교 위기에 놓인 학교를 혁신학교, 대안학교로 바꾸어 아이들을 다시 불러 모았다. 경남산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은 공공의료가 거의 무너진 산청에 마련된 병원으로, 산청군과 프란치스꼬회, 주변 사회적경제기업들의 도움이 한데 어우러진 아름다운 현장이다.
주목할 키워드 - 청년, 지역자산화, 제조와 유통, 혁신
4장 〈청년 스스로 만드는 일자리〉에서는 ‘청년협동조합몽땅’, ‘알배기협동조합’, ‘공유를위한창조’, ‘인간과공간’, ‘사회적협동조합청소년자립학교’ 등 청년들이 창업했거나 중심이 된 사회적경제기업을 소개한다.
5장 〈젠트리피케이션을 극복하는 지역자산화〉에서는 지역자산화, 시민자산화의 방법으로 자신들의 건물을 가지게 된 사회적경제기업들의 사례를 살펴본다. 전남 영광의 ‘여민동락공동체’, 경남 창원의 ‘사회적협동조합창원도우누리’, 경남 진주의 ‘극단현장’, 대전의 ‘(주)윙윙’이다. 지역민들이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출자자이자 이용자인 사회적경제기업에 젠트리피케이션은 기업의 존망을 위협할 수 있는 문제다. 이들이 정부 정책을 활용하여 성공적으로 자산화를 이룬 예를 통해 다른 사회적경제기업들도 각자 자신의 상황에 맞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6장 〈제조와 유통을 통한 사회적경제의 활성화〉에서는 제조업 분야에서 자본기업과 정정당당하게 승부하는 ‘멘퍼스’, 수도권의 마을기업 ‘오산양조’, 광주에서 주부들이 19년째 운영하고 있는 ‘예쁜손공예협동조합’, 김밥을 해외로 수출하고 있는 ‘(주)복을만드는사람들’, 밀가루뿐만 아니라 부재료도 모두 국산 농산물만 쓰는 ‘천년누리 전주빵’, 사회적경제 전문 유통 기업 ‘소박한풍경’을 인터뷰해서 유지와 성공 비결을 들어본다.
7장 〈혁신을 통한 새로운 시도〉에서는 그동안 사회적경제 분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새로운 방식으로 사업하는 곳들을 다루었다. 동물병원이 협동조합으로 운영되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도 처음이라는 ‘우리동물병원생명사회적협동조합’, 새로운 지역화폐 운동을 펼치는 ‘지역화폐협동조합’, 30년이 넘도록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 ‘협동조합예슬어린이집’, 자활기업으로서 수익이 생기면 배당을 하지 않고 취약계층과 시민사회에 기부하는 ‘소박한밥상’이 그들이다.
사회적경제기업의 형태와 지역을 총망라
책에서 다룬 사회적경제기업은 어느 한 지역이나 형태에 집중된 것이 아니다.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15개 시도의 사회적경제기업을 다양하게 골고루 다루었다. 경기도 오산시의 마을기업인 (주)오산양조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수익을 다시 주민에게 돌려주는 방식을 통해 섬의 인구 감소까지도 막고 있는 신안군 이야기도 있다. 노인 복지센터 운영, 마을 점방, 농장, 식당, 학교 급식 사업 등을 하며 지역자산화 공모에 참여해 정부 도움으로 건물을 새로 지은 전남 영광의 여민동락공동체도 다루었고, 면생리대 제조 판매로 수익을 낼 뿐만 아니라 ‘지구별가게’라는 제로웨이스트숍도 운영하는 ‘함께하는그날협동조합’은 제주도의 사회적경제기업이다.
형태적으로도 마을기업, 자활기업, 주식회사, 시민단체, 협동조합, 정부의 사회서비스를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경우까지 폭넓게 다루었다. 사회적경제기업이 운영되는 분야가 이토록 다양하고 광범위하다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일이다.
사회적경제기업 경영 아이디어
책의 제목 ‘1,000명이 함께 착한 건물주가 되면 어떨까요?’는 지역자산화를 다룬 (주)윙윙의 이야기에서 비롯됐다. 대전 유성구 어은동에서 도시재생을 성공적으로 마친 윙윙의 청년들이 공간 사업을 점차 확대하던 중 건물을 매입한 과정 이야기다. 그들은 기존 자신들의 자산화 건물과 토지를 부동산신탁회사에 의뢰하고 거기서 발행한 수익증권을 부동산증권거래소 플랫폼에 상장해서 전국의 약 1,000명으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매우 신선한 방식이다.
예쁜손공예협동조합은 지역의 공익활동지원센터로부터 마을기업과 마을활동을 제안받고 마을기업 지정을 받았으며 우수 마을기업으로 선정되기까지 했다. 이와 같이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 사회적경제기업들의 선례를 통해 다른 사회적경제기업들도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그것을 헤쳐나갈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현장의 목소리
저자는 사회적경제에 관한 연구자가 아니라 30년 넘는 시간 동안 사회적경제 현장의 한복판을 몸으로 겪어온 활동가다. 그러므로 누구보다 현장의 어려움과 궁금증과 요구를 잘 알고 있다. 기업의 첫 시작을 함께 일군 사람이나 기업을 가장 잘 알 만한 사람을 인터뷰 대상으로 삼은 것도 그런 직접성, 현장성을 높게 사기 때문이다. ‘직접 만나서 직접 듣는다’를 원칙으로 인터뷰를 진행했고, 그 결과를 정리한 글이다 보니 곳곳에서 인터뷰이의 생생한 경험과 생각, 목소리를 만날 수 있다.
마음이 훈훈해지는 성공 스토리
뛰어난 성과를 보인 사회적경제기업의 이야기라니, 그렇다면 사회적경제기업을 운영하는 경영 주체나 협동조합원이 아닌 사람에게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이야기일까? 그렇지 않다. 경쟁이 아니라 협력이,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모두의 공유가 더욱 가치 있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회사의 이야기에서 잔잔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 공존과 협력의 세상을 꿈꾸는 이가 많지만 현실적인 상황 때문이든 적당한 기회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든 선뜻 그 길에 동참하지 못하는 사람 역시 많다. 지금 비록 함께 가지 못하지만 멀리서 응원의 박수라도 힘껏 쳐준다면 미안한 마음, 아쉬운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