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여론』은 무엇에 관한 책인가
『증여론』은 모스가 “태고사회”라고 부른 곳에서 관찰되는 증여 제도에 대한 시론적 연구로서 19세기와 20세기 초의 민족지 연구와 자료들을 섭렵하고 종합했다. 모스는 폴리네시아, 멜라네시아, 북서아메리카의 사회처럼 태평양 한중간에 있거나 태평양을 끼고 있는 사회, 그 가운데서도 상당한 잉여를 축적한 부유한 사회를 주요 준거로 논의를 전개한다. 이들 사회에서 관찰되는 증여의 제도들을 모스는 ‘총체적 급부 체계’라고 부른다. 전체로서의 집단과 집단 사이에서, 비단 물건만이 아니라 의례적 서비스, 군사적 지원, 여자, 아이, 춤, 축제 등 온갖 것들이 오간다는 점에서 이 제도는 ‘총체적’이다. 추상화된 사회적 사실을 사회학의 중심에 놓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사실들의 구체적 집합을 중심에 놓음으로써 ‘총체적인 사회적 사실’에 대한 연구를 표방한다. 그럼으로써 “사회와 그 제도 전체(포틀래치, 대립하는 씨족들, 상호 방문하는 부족들 등)를 움직이게 하고”(162쪽), “전체를 통째로 고찰함으로써 … 사회가, 혹은 인간들이, 그들 자신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이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 감정적으로 자각하는 찰나의 순간을 포착”(164쪽)한다.
책의 구성과 내용을 요약하자면, 마오리족의 하우, 트로브리안드 군도의 쿨라, 북서아메리카의 포틀래치에 대한 비교 민족지학의 논의는 『증여론』의 핵심을 이루며(서론~2장), 여기에 고대 로마의 계약법, 고대 인도의 증여 이론, 고대 게르만 사회의 담보에 대한 이차적 지위의 논의가 더해져 있다(3장), 마지막 결론에서 모스는 “지금까지의 고찰을 확장해 우리 사회에 적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우리의 도덕과 삶의 상당 부분은 여전히 증여, 의무, 자유가 뒤섞인 분위기 속에 머물러 있다”(139쪽)면서 우리에게 선행하는 사회의 도덕과 경제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음을 환기시킨다.
사회보장을 노동자의 증여에 대한 반대급부로 끌어올린 증여론,
오늘날 임노동의 현실에도 적용 가능
모스가 볼셰비키의 러시아 혁명과 1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황폐해진 정치 환경에서 『증여론』을 구상하고 집필했던 배경을 고려하면서 『증여론』을 읽을 때 이 책은 단지 인류학 논문에 머물지 않고 사회학과 정치학의 맥락에서도 새로운 지평을 개척한 저술이기도 하다. 모스는 증여 관습의 민족지를 뒤지면서 대내외적으로 위기에 처한 프랑스 사회와 유럽 사회를 재건할 단서를 시급하게 찾았다. 가령 모스는 임금노동을 임금 이상의 반대급부를 요청하는 증여로 간주하며 사회적 급부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당대의 자선이나 시혜의 모델을 거부하면서 사회보장을 노동자의 증여에 대한 반대급부로 이해할 것을 제안한 것이다. “노동자는 한편으로는 공동체를 위해, 다른 한편으로는 고용주를 위해 자신의 삶과 노동을 바쳤다. 노동자 스스로 사회보장제도에 협력해야 하지만, 노동자의 서비스로 혜택을 누린 이들도 단지 임금을 지불하는 것만으로 노동자에게 진 빚을 모두 갚았다고 할 수 없다. 공동체를 대표하는 국가 역시 고용주들과 함께 그리고 노동자 자신의 기여에 기반해 실업, 질병, 노령화, 사망에 대비한 일정 수준의 생활보장을 노동자에게 제공할 의무가 있다.”(142~143쪽) 노동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자본주의적 노동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는 임금노동이자 고용된 노동과 유사한 일을 수행하면서도 탈경계화로 임금노동의 형식이 모호해져 임금노동자, 고용된 노동자가 자신이 행사할 수 있는 권리로부터 배제되고 있는 현실은 다시 증여론을 들여다볼 이유를 제공한다.
〈증여론〉 출간 기념 ‘대담’에서
이경묵 - 저는 서브컬처나 시민운동, 조합과 같은 작은 단위에서 증여가 여전히 중요한 계기로 작동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는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증여는 아니지만, 제한된 범위 안에서 특수한 증여의 형태가 지속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젊은 세대가 공동체를 싫어한다는 지적도 사실 맥락이 중요합니다. 진짜로 공동체적 가치를 거부한다기보다는 기성세대가 사용하는 공동체의 사용법을 싫어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 이런 점에서 저는 『증여론』이 사회적 관계와 공동체적 가치를 사유하는 데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318~319쪽)
박정호 - 모스에게 사회의 영원한 반석이 있다면 그것은 give and take 식의 계약이 아니라 주고받고 대갚음하는 세 가지 의무의 순환으로 이뤄집니다. 이 반석이 놓인 장소는 경제학에서 금과옥조로 여기는 ‘시장’이 아니라, 오랜 시간 퇴적된 지층 저 밑바닥일 것입니다. 『증여론』의 핵심 주제는 바로 이 반석을 고고학적으로 발굴하는 데 있습니다. 사회를 구축한 반석을 건드린다는 점에서 『증여론』은 인간 활동의 기본적 동기를 묻는 책이기도 합니다. 『증여론』은 이해관계를 행위 동기로 삼는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라는 가정을 단호하게 물리치고 인간 행위의 서로 대립하는 동기들이 함께 결합해 작용한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289~290쪽)
박세진 - 인간의 사회적 삶은 예나 지금이나 다양한 방식으로 무언가를 주고받는 일로 가득합니다. 『증여론』은 단지 증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증여하는 인간의 사회적 삶’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증여론』은 인간의 삶을 온갖 비인간 존재들을 통한 삶으로, 나아가 하우나 마나에 대한 지속적 언급이 보여주듯 ‘초인간’ 존재들의 개입 속에서 영위되는 것으로 드러냅니다. 증여를 비롯한 사물이전의 양식 은 곧 인간과 비인간, 초인간이 관계 맺는 양식이기도 합니다. 좀 더 거창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세계의 거주자들이 상호작용하는 방식, 그 가운데 특정한 형태의 세계 자체가 산출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증여론』과 함께 우리는 이미 인간의 사회생활에 대한 인류학 연구의 최대치와 마주하고 있는 셈인지도 모르겠습니다.(331~33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