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르치지 않고 슬며시 일깨우는 시,
불교(佛敎)다운 불교시(不敎詩)
본디 불교란 스스로 깨닫는 길을 가는 철학이자 종교다. 윤동재 시인의 시도 마찬가지다. 가르치지 않고 이치를 강조하지 않으면서도 넌지시 깨닫게 한다. 따라서 이 시집의 시는 불교(佛敎)답게 가르치지 않는 불교시(不敎詩)다.
“부처님 덩치가 작아 봐라/ 힘이 없어 무씬 일을 하시겠노”(「관촉사 은진미륵님」)라며 외모가 볼품없는 은진미륵을 대변해 세상에 모난 존재가 없음을 말한다. 이는 겉모습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했던 이들에게는 따끔한 죽비가 될 것이다. 또한, “고추장 잘 담그는 것이 면벽 정진과 다르지 않”(「만일사 고추장 불보살」)다며 일상 속 모든 일이 수행이고, 그것을 잘 해내면 그게 득도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한글대장경을 읽는 각시붓꽃(「봉선사 각시붓꽃」)과 부처님 무릎 아래 모여 부처님 말씀을 한마디도 빠트리지 않고 들었다는 구절초(「영평사 구절초」)를 통해 세상의 모든 존재가 부처라고 일러주기도 한다. 표제작 「룸비니 보리수나무 아래서 부처를 묻다」에서는 스스로 깨닫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윤동재 시인은 불교와 시라는 어려운 조합을 친숙한 언어와 시공간을 넘나드는 꿈같은 장면들로 풀어내며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전한다.
▶ 가우디부터 인현왕후까지, 멀고도 가까운 불교의 세계
불교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키워드가 몇 개 있다. 절, 스님, 불상, 부처···. 윤동재 시인은 이러한 익숙한 것들을 잠시 내려놓고, 대신 생경하고 먼 것들을 불러온다. 「내소사 스페인 건축가 가우디」에서는 스페인 유명 건축가 가우디가 부안 내소사에 찾아와 부처와 건축술에 관한 대화를 나눈다. 내소사 대웅보전의 꽃 문살은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한 것으로, 우리나라 장식무늬의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이러한 절의 고유한 특성도 시에서 느낄 수 있다.
스페인 건축가 가우디가 부안 내소사를 찾았지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왔다며/
내소사 부처님을 뵙겠다고 했지요/(중략)/ 내소사 부처님은 내소사 대웅보전 창호 문양은/ 알람브라 궁전 문양과 마찬가지로/ 인류 공유재산이니 마음대로 베껴 써도 된다고 했지요/(후략)
-「내소사 스페인 건축가 가우디」 중에서
이 외에도 시집에는 요리학원에 다니는 인현왕후(「청암사 요리 배우는 인현왕후」), 해인사 백련암에 찾아온 성 베드로(「해인사 백련암 성철 스님과 성聖 베드로」), 마곡사 경내에서 맨손체조를 하는 백범 김구 선생(「마곡사 백범 김구」)도 등장한다. 국경은 물론이고, 시공간까지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시인의 상상력이 돋보인다. 시인은 불교와는 멀게 느껴질지라도 독자들에게 친숙한 인물들을 시 안으로 데려옴으로써, 다양한 독자들이 불교와 만날 수 있도록 문을 뚫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