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전집詩全集을 내면서]
지난날 나의 시 쓰기를 되짚어 보면 그 시대에 혼돈과 위기를 딛고 일어서려는 내 나름대로의 몸부림이요, 흔히들 시대를 가리켜 상실의 시대라고들 말한다.
삶 속에서 본래적 가치의 순수성과 역사의 진실성을 엿보고, 오늘의 삶들이 가지는 의미를 진솔하게 노래하고 싶었다.
들녘에 피어나는 이름 없는 풀꽃들을 아끼고 흙냄새 속에서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내 고향 사람들과 호흡하며 딛고 일어나, 그 속에 삶의 존재와 의미를 찾고 싶었다.
그 속에서 그리움도, 사랑도 자라고, 흙냄새가 나는 노래를 불러 보고 싶었다. 인간은 사색을 즐기고 사물에 대한 깊은 통찰과. 식견을 갖추어야 바람직한 삶을 살 수 있다고 하였던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생각난다.
월리암 루컷은 한 편의 시詩를 한 그루의 녹색식물에 비유하였다. 그는 한 편의 시詩를 통해서 삶의 에너지를 공급 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는 시詩가 무엇이며 시인詩人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가늠케 하는 말이기도 하다.
자연은 생명의 근원인 동시에 자존의 바탕이요. 영원한 인간의 고향이란 생각을 하곤 하였다. 맘모니즘적인 나의 영혼을 정화시켜 주고 잊혔던. 본래적인 삶의 원형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이 시전집詩全集에 묶여진 작품들은 이런 저런 인연으로 나와 만난 것들로, 시詩 씨를 뿌리고 열심히 김매어 가꾸려고 노력을 하였으나 돌아보는 길. 내가 걸어온 길, 무수한 부호들이 날아서 어찌 꿈틀거릴지 알 수 없다.
제1집에서 제11집까지는 서정적인 시들이라고 한다면, 제12집에서 「고욤나무 풍장에 들다」 시詩들은 일부가 하이퍼텍트적인 시詩라고 말씀드릴 수 있다.
부호들은 누가 읽어주실까. 하이퍼텍스트로 분류된 시인들께 하이퍼텍스트로 분류로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이니셜을 하이퍼텍스트로 분류되며 아방가르드입니다.
부호의 벌레인 부호의 벌레이신 시인께 부탁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나무를 기어오르기도 하고 무수한 부호의 벌레를 까악, 소리를 낼 수도 있지 않을까.
* 「고욤나무 풍장에 들다」란 시집 끝에 신규호 박사님의 해설을 읽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 「하이퍼텍스트 詩(시)의 편류적 언어 실험」을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