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물론, 복합문화주의, 생태환경 등 현대의 최신 담론을 다룬 현대문학 비평서가 도서출판 걷는사람에서 간행되었다. 현대 최신 담론 비평서가 번역된 적은 있으나, 국내 저자들이 공동 작업으로 간행한 책이기에 눈길을 끈다.
원로 비평가 이명재 중앙대 명예교수, 영문학자 정정호 중앙대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오창은 중앙대 문화연구학과 교수가 『현대문학 비평−역사, 이론, 실제』를 간행했다. 이 책은 대학과 대학원의 문학 비평 교재로서, 이론적 바탕을 필요로 하는 일반인이나 문인들에게 도움이 될 목적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이 다루는 문학이론은 풍부하면서 넓다. 역사주의 비평, 문학사회학, 정신분석학 비평, 신화 원형 비평 등 비평의 주요 쟁점을 빠짐없이 논하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현대문학 이론의 쟁점들이 두루 망라되어 있다. 페미니즘 문학 비평, 포스트식민주의 문학 비평, 신역사주의 문학 비평, 문화연구 문학 비평 등 첨단 이론을 포괄하고 있다.
이 책은 한국문학 현장 문학비평가(이명재·오창은)와 영문학자(정정호)의 공동 작업의 산물이다. 197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50여 년 동안 비평 활동을 해 온 문학평론가인 이명재 명예교수와 200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해 현장 비평 활동을 하고 있는 오창은 교수의 신구 세대 조화가 눈길을 끈다. 여기에 국제PEN 한국본부 번역원장이자 영문학자인 정정호 명예교수가 참여함으로써 현대비평 이론에 관한 논의를 풍부화했다. 정정호 명예교수는 에드워드 사이드의 『문화와 제국주의』를 번역하여 한국에 포스트식민주의 이론을 소개하는 등 활발한 저술 활동을 해 온 학자이다.
현대문학 연구자들과 영문학자가 함께 참여한 저작이니, 이 책은 동서양 이론을 아우르는 장점을 갖고 있다. 대화비평과 담론비평, 구조주의와 해체비평, 기호학적 비평 등 15 항목에 이르는 문학이론의 특징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을 뿐만 아니라, 문제점까지 비판적으로 점검하고 있어 특징적이다. 특히 기존 서구 이론 중심에서 벗어나 『문심조룡』 등 동양 비평의 기원들도 논하고 있으며, ‘한국 전통비평의 계승’ 문제를 제기하고 있기도 하다. 저자들은 서양 이론을 풍부하게 다루면서도, 동양적 맥락에서 한국적 문학 비평 이론의 정립을 위한 논의를 시도하고 있다.
이 책은 풍부한 현장 비평의 예문을 싣고 있으며, 실제 비평문 쓰기를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는 것도 특징적이다. 비평의 개념에서 기능, 역사, 그리고 실제 비평문 작성의 방법까지 상세하고 기술하고 있다. 비평에 관심이 있는 일반 독자와 문학 이론에 탄탄한 논의를 필요로 하는 문학인 및 예비 문학인에게도 도움이 되도록 기획되었다. 대학 강의와 대학원 강의에서 활용하는 교재로서의 목적도 갖추고 있다.
『현대문학 비평−역사, 이론, 실제』 간행은 한강이 아시아 최초 여성 작가로서 202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한국문학이 이룩한 성취를 기념하고 조명하는 의미도 담고 있다. 이명재 교수는 특히 한강 작가의 작품 중 소설 『채식주의자』와 『흰』의 대조적인 측면을 중심으로 한강 작가의 창작 실태와 문학적 요체에 관한 담백한 사유를 실어 한국문학 전반에 관한 활발한 논의를 전개한다.
제목부터 특이한 작품 『흰』은 흰빛 이미지나 거기에 연상된 추억담을 정성껏 연필로 눌러써서 메모하듯 적어서 모은 소설이다. 이전의 정석적인 소설 문법과는 상이하게 구성의 틀이 신축성 있고 서사의 방법 또한 다양하고 자유롭다. 그럼에도 화자의 시점은 물론이고 인물, 시점, 사건, 배경적인 면이 자연스럽게 용해된 채 갖추어져 있어서 오히려 효과적이다. 흰 이미지에 관한 작가 자신의 상상과 추억의 조각들을 한데 모아서 빛나는 보석으로 빚어낸 결과물이다.
−「소설 비평의 실제」 부분, 480쪽
이명재·정정호·오창은은 대학 강단이나 문단 내부에서 문학을 한반도적 역사와 현실 속에서 재맥락화하는 정확한 해석과 판단을 바탕으로, 텍스트로써 그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감상할 뿐 아니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논의를 점층적으로 개진함으로써, 그 경계를 “시공간적으로 한껏 넓혀 나간다.” 이를 위해서 “평소 학부와 대학원에서 직접 설명하여 가르쳤던 강의나 문학지에 기고했던 실제 평론을 폭넓게 활용하였다.” 이로써 “한국문학 전통이라는 통시적 시각”과 “한반도적 전통이라는 공시적 시각”을 구축하여 “새로운 문물 상황에 따라 새로운 이론”을 보다 밀도감 있게 제시하고자 하였다.
책의 구성 측면에서는 올바른 문학평론을 위해서 체계적 비평 이론을 빠짐없이 섭렵하고, 이를 실제 비평에 제대로 적용할 수 있도록 각 부를 짜임새 있게 배치하였다. 1부 ‘비평이란 무엇인가’에서는 평론의 정의와 역사, 기능 등의 기본적인 문제를 알기 쉽게 설명했다. 이어서 2부 ‘문학 비평의 기원과 비평가의 위치’에서는 동서양의 고전 및 근대비평을 살펴보고 평론가의 지위 및 비평의 여러 갈래와 발전 형태를 제시했다. 3부 ‘현대문학 비평의 흐름들’에서는 20세기에 들어서 새로 생겨난 숱한 비평의 중요성들을 살핀다. 4부 ‘현대문학 이론의 쟁점들’에서는 21세기에 생겨난 요즘의 비평 담론들의 쟁점을 논의한다. 그리고 5부 ‘문학 비평문 쓰기의 실제’에서는 제목에서처럼 실제 비평 문단에서 활동한 평론가의 체험을 참고하면서 효율적인 평론문 쓰기의 요령에 입각한 비평문 쓰기를 터득해 본다. 에필로그 ‘한국문학을 위한 주체적 비평학’에서는 자유토론으로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