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고운 최치원(857-?) 선생이 남긴 문학 유산의 맛과 멋을 더 많은 독자와 공유하기 위해 엮은 것이다. 『삼국사기』의 열전과 『파한집』은 역사적 사실로서 그의 삶을 기록하고 있다. 최치원의 삶의 궤적과 그가 남긴 전설적인 행보는 역사의 틀을 넘어 문학적 상상의 소재가 되었다. 역사적 실체는 역사적 진실을 전달하는 소재가 되고, 허구의 세계 속에서 독자들은 각자 자기 시대의 가치를 발견하려고 한다. 최근 최치원 이야기가 다시 주목받으면서 뮤지컬, 연극, 애니메이션, 소설 등으로 창작된 작품들은 이러한 흐름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최치원 선생은 남북국 시대에 당나라에 유학하여 관료로서 성공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토황소격문」의 배경이 된 당 말기의 혼란을 목격한 후 신라로 귀국하게 된다. 그는 신라 왕실의 신임을 받으며, 당에서 쌓은 경륜을 신라를 위해 펼치고자 하였다. 그가 귀국하면서 헌강왕에게 바친 『계원필경』은 그의 이러한 의지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학자, 문장가, 관료로서의 그의 삶은 통일신라의 패망과 고려 건국이라는 시대적 혼란 속에서 다시 한번 고뇌와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결국 그는 벼슬을 버리고 자유롭게 떠돌며 자신의 길을 찾았고, 그 길은 가야산 해인사로 이어졌다. 해인사에서 은자의 삶을 살면서도 그의 글쓰기는 계속되었고, 그는 한국의 문화사에 빛나는 유산을 남겼다.
이 책은 크게 역사 기록과 소설, 그리고 최치원 선생의 문학 유산 중에서 함께 읽을 만한 작품들을 선별하여 앞부분에 실었다. 시는 자연과 풍속, 여정과 숨결, 만남과 헤어짐으로 분류하여 유사한 소재끼리 비교하며 읽을 수 있도록 하였다. 산문은 문화사에 이름을 올린 대표 작품들을 수록하여 독자들이 함께 사유할 수 있게 하였다. 뒤쪽에는 저자들이 최치원 한시를 해설한 글을 실어 독자와의 공감을 도모하였다. 마지막으로, 최치원 선생의 유적 탐방기 몇 편을 덧붙여 우리 곁에 살아 있는 최치원의 숨결을 전하고자 하였다.
독서는 디지털 문화의 빠른 속도에 잠식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도 문자 문명은 여전히 고전적인 가치를 찾고 사색하는 중요한 도구로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는 믿음이 있어 이 책을 출판하게 되었다. 고운학연구소에서 함께 시를 읽고 토론했던 소중한 순간들을 이 책에 담았으며, 최치원 유적을 답사하며 역사의 숨결을 함께 느꼈던 한정호, 박준범, 김지민 교수님과의 추억도 문장마다 스며있다. 문학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지닌 그분들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출판에 도움을 주신 경남대학교 교양교육연구소 정원섭 소장님과 원고를 빛내주신 한국문화사 편집부에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2025년 2월
고운 선생의 월영대 언덕에서
경남대학교 교양교육연구소 디지털시민성연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