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의도
● 돌아올 거라 믿으며 기다리는 마음
넓디넓은 공원 어느 벤치에, 작디작은 양 인형 하나가 덩그러니 있습니다. 벤치에 얌전히 앉아 있는 양 인형이 〈여기서 기다릴게〉의 주인공이지요. ‘인형이 왜 여기에 있을까?’라며 지나가는 사람들은 궁금해하고, 갖고 싶어 하는 아이도 있지만 양 인형은 ‘데리러 올 테니까.’라며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합니다. 그러다 까마귀 때문에 벤치에서 굴러떨어진 양 인형은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고양이 가족에게 벤치에 놓아달라며 간절하게 부탁하지요. “꼭 저기서 기다려야 해, 부탁해.”라면서요. 가장 소중한 친구인 미나가 깜빡 잊고 간 것이니, 여기서 기다려야 찾으러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나가 양 인형을 두고 간 건 순전히 실수였습니다. 하지만 양 인형은 비가 오니 함께 가자는 고양이 가족의 제안도 거절하고, 비를 맞으며 하룻밤을 보냅니다. 미나가 돌아오리라 믿고, 하염없이 기다리지요. 그렇다고 해서 기다리는 시간이 언제나 평온한 건 아닙니다. 두고 간 미나에게 화가 나기도 하고, 잠은 잘 잘지 걱정이 되기도 하고, 돌아가고 싶어서 슬퍼지기도 하지요. 온갖 감정 속에서 아침이 밝자, 미나는 양 인형의 믿음에 부응하듯 나타나 양 인형을 꼭 껴안습니다. 누군가를 굳세게 믿고 기다리는 마음은 물론, 그 사이의 감정까지 훌륭하게 표현해 아이들도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그림책입니다.
● 소중한 무언가를 대하는 태도
책을 펼치면 선물 봉투에서 양 인형을 꺼내 즐거워 보이는 미나가 보입니다. 아마도 양 인형과 처음 만났을 때겠지요. 이때의 양 인형에게는 리본이 없으니, 양 인형의 붉은 리본도 미나가 정성스럽게 매 준 것 같습니다. 비록 깜빡하고 가 버렸지만 되찾으러 와서는 비에 젖어 얼룩덜룩해진 양 인형을 소중히 끌어안기도 하고, 집에 와서는 잘 씻긴 뒤에 새 리본을 달아 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늘 그랬던 것처럼 함께 잠들지요. 양 인형이 그랬던 것처럼, 미나에게도 양 인형은 소중한 친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아끼고 보살피며, 여러 번 찾으러 오는 것이지요.
우리는 소중한 물건을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요? 미나처럼 소중하게 아끼고, 살뜰히 보살피고 있나요? 소중하다고 말하면서도 잃어버리거나 깜빡 잊은 뒤에는 그냥 두고 새로 사지는 않나요? 많은 물건이 생산되고 버려지는 시대, 정말 소중한 걸 어떻게 여기는지, 잃어버리고 잊어버린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돌아볼 수 있는 그림책입니다.
●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읽을 수 있는 아름다운 그림책
도요후쿠 마키코 작가의 책은 몇 권 보지 않아도 같은 작가의 책이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책의 리뷰를 보면 ‘〈발레리나 토끼〉와 같은 작가인 걸 바로 알았어요.’라는 말도 심심치 않게 보이지요. 섬세한 수채화로 그려낸 아름다운 풍경, 붉은 볼 때문에 더욱 귀여운 동물들, 커 가는 아이들이 관계 속에서 꼭 필요한 배려와 나눔을 담아낸 따뜻한 이야기가 한데 어우러져 작가의 세계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주인공들의 편안하거나, 시무룩하거나, 다시 만나 기쁜 표정 등을 잘 표현해 지루하지 않게 생동감 있게 읽을 수 있지요.
작가의 데뷔 작품인 〈여기서 기다릴게〉는 최근 작품들에 비하면 그림이 풋풋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앞ㆍ뒤 면지에 이야기를 숨겨 놓기도 하고, 정말 넓은 공원에 작은 양 인형을 점처럼 살짝 넣어 놓기도 하고, 저녁에도 양 인형을 찾으러 왔다가 시무룩하게 돌아가는 미나를 구석에 그려 놓기도 하였지요.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정성 들여 작업해 읽을거리가 많은 그림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