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련한 저널리스트가 소개하는 좋은 정치인의 조건
지은이 네이선 밀러는 15년간 신문사에서 근무한 언론인으로, 미국 연방 상원의 예산위원회에서 보좌관으로도 근무하며 미국 정치의 실제 현장을 경험한 당사자이기도 하였다. 퓰리처상 후보로 다섯 번이나 지명될 만큼 노련한 저널리스트였던 지은이는 총 18종의 책을 집필했다. 특히 미국 대통령의 전기, 미국 해군의 역사에 정통했던 그는 기존의 역사서는 물론이고 편지, 일기, 연설문, 연방 의회 회의록, 관계자의 증언, 인터뷰 등을 종합적으로 연구해 《최악의 대통령》의 원서인 ‘Star-Spangled Men’을 출간했다.
이 책은 그간 미처 알려지지 않은 기록과 역사를 발굴해 미국 정치사의 숨겨진 행간을 밝힌다. 최악의 대통령으로 선정된 인물 개개인의 일생을 복합적으로 분석하는데, 특히 사인(私人)으로서의 사생활과 공인(公人)으로서의 행보를 구분하지 않고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가령 6장의 앤드루 존슨과 10장의 리처드 닉슨이 대표적이다. 앤드루 존슨은 다른 대통령들과 달리 정규 교육을 받지 않은 채 대통령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로, 가난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독선적인 성격을 형성하게 되었다. 오직 자신만이 옳다고, 본인이야말로 가난한 백인들을 지키기 위해 백악관에 진출한 ‘평민’의 대표라 여긴 앤드루 존슨은 대통령으로서 공무를 집행할 적에도 국가의 여러 정치적 상황과 사회적 조건을 골고루 고려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해방노예(흑인 해방민)의 인권을 지지하는 북부주 다수의 의견을 무시했고, 남북전쟁 이후 미국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공화당과 협조하지 않았다. 결국 앤드루 존슨은 향후 1세기 동안 이어질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인종적 억압이라는 유산을 남겼다.
한편 리처드 닉슨은 거물급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유권자를 기만하고 상대 후보를 비방하는 전략을 체화하며 민주주의를 경멸하는 지도자로 거듭났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닉슨은 반공주의의 투사를 자처하며 민주당 경쟁자들을 향해 거친 인신공격과 비방을 일삼았다. 젊은 나이에 고령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든든하게 지탱하는 부통령으로 활약했으나 이후 존 F. 케네디와의 대선 경쟁에서 패배한 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서도 낙선하였다. 두 번의 쓰라린 패배를 겪었던 닉슨은 이후 모든 업무에서 강박적으로 모든 상황과 조건과 사람을 통제하고자 하였다. 지은이는 닉슨의 워터게이트 사건을 조망하면서 닉슨의 삶이야말로 민주주의를 무시하는 민주국가의 대통령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라는 점을 짚는다.
지은이는 정치인을 평가할 때 사생활에 주목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공인으로 활동하는 정치인을 올바르게 평가하기 위해서라도 그의 삶을 종합적으로 분석할 것을 요청한다. 머리말에서 밝히듯이 한 사람의 인격과 행동은 분명히 연결되어 있고, 한 대통령의 인격적 결함으로 인한 책임과 피해는 대체로 그를 선출한 구성원에게 전가되기 때문이다. 그런즉 이 책은 나쁜 대통령의 특징을 소개하며 독자에게 반면교사의 지혜를 알려주고 있다. 자신감의 결여, 불량한 성격, 타협과는 거리가 먼 형편없는 정치력과 무능, 비전의 결핍, 부정직하고 불성실한 태도, 의사소통의 거부 등이 바로 최악의 대통령이라 불리는 자들의 공통점이다. 그리고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정반대의 덕성을 갖춘 후보를 찾게 될 것이고 뽑게 될 것이다.
■ 민주주의의 위기 앞에서 돌아보는 악당들의 어리석은 선택들
1948년 하버드대학교의 아서 슐레진저(Arthur M. Schlesinger) 교수가 처음으로 역대 미국 대통령에 관한 인기투표를 실시한 이래로 미국에서는 꾸준히 미국 대통령들에 대한 사후 평가를 진행했다. 위대한 대통령으로 항상 조지 워싱턴, 에이브러햄 링컨,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선정된다면, 우수한 대통령으로는 시어도어 루스벨트, 해리 트루먼, 우드로 윌슨 등이 뽑힌다. 그러나 최악으로 끔찍한 대통령을 선정하는 일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훨씬 신중하고 세심하게 검토해야 한다. 머리말에서 지은이가 밝히듯이 사실상 누구를 최악의 대통령으로 선정하든 개연성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어떤 대통령은 단순히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서 인기투표 순위가 낮고, 어떤 대통령은 실제로 이룩한 업적에 비해 강박한 평가를 받는다. 이런 점에서 이 책에서 소개하는 ‘최악의 대통령’은 실제로 사람들이 뽑은 최악의 대통령 명단과는 차이가 있다.
지은이가 본문에서 최악의 대통령을 선정한 기준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대통령으로 활동하며 국가와 국민에게 얼마나 큰 손해를 끼쳤는가?’이다. 달리 말해 백악관에서의 활동과는 무관한 사건과 유권자가 느끼는 정서적인 호불호는 판단 기준에서 제외했다는 뜻이다. 실제로 지미 카터 대통령은 퇴임 후의 봉사활동으로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했으나 지은이는 오로지 대통령으로서의 행보에만 주목하여 그를 첫 번째 최악의 대통령으로 선정했다. 또 다른 기준은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미국인을 이끌었는가?’이다. 바로 이 점에서 대다수 미국인에게 비호감을 산 로널드 레이건이나 조지 H. W. 부시를 제외했으나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떨어지는 벤저민 해리슨과 캘빈 쿨리지를 최악의 대통령으로 뽑았다. 두 대통령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무동과 무능의 극치였다. 대통령이란 직책과는 어울리지 않는 게으르고 나태한 두 사람은 끝내 1929년 대공황의 포문을 연 무책임한 지도자로 기록되었다.
이에 따라 최악의 대통령으로 선정된 10명의 문제는 다음으로 요약할 수 있다. 지미 카터는 도덕적 독선에 빠진 채 미래에 대한 비전과 목표를 제시하지 못했다. 윌리엄 태프트는 진보의 시대에 보수주의를 고집한 시대착오적인 사람이었고, 용기와 결단력이 부족했다. 벤저민 해리슨은 사회성이 너무도 부족하여 인간적인 따뜻함이 없었다. 캘빈 쿨리지는 모든 사안에 무능과 침묵으로 대응해 대통령으로서 해야 할 최소한의 업무조차 수행하지 않았다. 율리시스 그랜트는 무능하고 부정부패의 주범인 친인척의 잘못을 방관했다. 앤드루 존슨은 합의와 타협의 원리를 통한 상생의 정치를 철저히 무시하고 안하무인의 정치를 펼쳤다. 프랭클린 피어스는 너무나 소심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지도력을 일절 발휘하지 못했고, 여당 지도부의 놀림거리에 불과했다. 제임스 뷰캐넌은 편협한 사고와 이기적인 행동으로 미국 남북전쟁의 불꽃을 지폈다. 워런 하딩은 친구와 친인척의 악명 높은 스캔들을 막지 못했다. 리처드 닉슨은 헌법을 파괴하고 민주주의에 냉소적인 태도에서 비롯된 거짓말을 일삼아 미국인에게 대통령제와 국가에 대한 불신을 심어주었다.
신선한 이야기와 섬세한 문체는 출간된 지 2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이 책의 매력을 지탱하는 가장 큰 기반이다. 독자들은 책을 읽다 보면 작은 교훈은 물론이고 내용의 흥미로움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특히 지은이가 던지는 화두, “왜 이들을 최악의 대통령 명단에 올려야 하는가?”를 이해하게 될 때마다 느끼는 흥미는 정치의 위기를 직면한 오늘의 독자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이런 내용이야말로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수많은 정치가 또는 조직을 이끄는 여러 지도자, 무엇보다도 위대하고 성공적인 대통령을 애타게 갈망하고 소원하는 모두가 읽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