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차 특수 교사 대 10년 차 돌봄자,
돌봄의 일상을 기록하고 성찰하다
2024년 12월 23일, 한국은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퍼센트를 넘는 초고령 사회로 접어들었다. 1인 가구와 노인 가구 증가, 저출산과 핵가족화로 돌봄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부모 돌봄을 자녀 한두 명이 떠맡으면서 돌봄자가 겪는 육체적, 정신적, 경제적 부담은 점점 더해만 간다. 바야흐로 돌봄이 화두다.
21년 차 특수 교사 김진화는 《나는 듯이 가겠습니다》에서 뇌병변 장애를 입은 엄마를 10년간 돌본 일상을 기록하고 돌봄의 본질을 성찰한다. 단순한 간병 일지에 머물지 않고 전문가 시각을 더해 돌봄 과정에서 겪는 현실적 어려움과 감정적 여정을 솔직하게 전달한다. 파편화돼 사라질 돌봄 경험을 공유하는 한편 고립된 돌봄 당사자들에게 위로와 공감을 전하면서 제도적 지원과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일상 파괴 돌봄 대 일상 회복 돌봄,
돌봄 고립을 넘어 나를 바꾸는 돌봄으로
26박 27일 뉴질랜드 배낭여행을 마치고 모처럼 친구들을 만나 아포가토를 먹으려던 저자는 갑자기 쓰러져 누워 있는 엄마를 마주했다. 충격을 추스를 시간도 없이 독박 간병을 자처했다. 돌봄은 그렇게 삶을 바꿨다. 탄탄한 직장을 다니며 45개국을 여행하고 다양한 교양을 쌓으면서 문화와 여가를 즐기는 비혼 생활을 마음껏 누리던 삶은 보호자 침상으로 쪼그라들었다. 시작할 때는 금세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 생각했지만, 10년을 꼬박 돌봄에 쏟아야 했다.
어린 시절 약점을 이겨 낼 수 있게 이끌어 주고 오롯한 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게 딸을 도운 엄마처럼 딸도 질병과 장애가 있는 엄마에게 행복한 남은 삶을 안겨 주리라 다짐했다. 마비된 몸과 어눌한 발음을 부끄러워하는 엄마 모습이 안타까웠지만, 특수 교사라는 직업 덕분에 전문성을 발휘해 엄마가 장애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도왔다. 언어 치료나 자가 운동을 꾸준히 실천하고, 적절한 자극을 유지하고, 일상에 필요한 장비를 갖춰 같은 질병을 겪은 사람들보다 더 많이 회복할 수 있었다. 재활을 위한 재활이 아니라 전시 관람과 여행, 온천욕, 산행 등 다양한 일상 활동을 재활에 연결하려 애썼다. 인간으로서 엄마가 누려야 할 존엄을 지키고 엄마의 삶이 소외되지 않게 하면서 돌봄이 지닌 진정한 가치를 실천하는 과정이었다.
한계에 부딪히기도 했다. 돌봄은 개인적 문제인 동시에 사회적 과제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김진화는 좋은 돌봄을 실천하려는 개인 의지에 턱없이 못 미치는 의료계 현실과 복지 제도, 사회 인식 등을 온몸으로 겪어야 했다. 같은 돌봄이라도 육아는 훌륭한 일이라며 환영받지만 간병은 어리석은 선택이라며 무시당하기도 했다. 비혼 여성이니까 돌봄을 당연히 도맡아야 한다는 말은 깊은 상처가 됐다. 특수 교사로서 지닌 능력과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자기만의 삶을 누릴 권리를 부정당하는 순간이었다. 끝이 어딘지도 모른 채 잘하고 있는지 알 수도 없다는 사실에 결국 깊은 우울을 느끼기도 했다.
자기 돌봄,
진정한 돌봄을 향해 나는 듯이 나아가는 나
육체와 정서가 소진된 자기 모습을 돌아보며 김진화는 결국 돌봄은 타인 돌봄을 넘어 자기 돌봄이어야 한다고 깨닫는다. 완벽한 돌봄을 하겠다는 부담을 내려놓자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자기 경험을 나누는 사람으로 바뀐다. 돌봄은 단순히 누군가를 돕는 행위가 아니라 돌보는 사람도 자기를 성찰하고 성장할 수 있는 계기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렇게 돌봄에 지친 한 사람이 달리기와 글쓰기로 나아간다.
달리기는 언제나 힘들지만 달리는 나를 조절할 수 있는 존재는 나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경험이고, 마음을 알아차리는 순간이고, 긍정적 사고와 건강한 자기애를 얻는 계기다. 가족 간 갈등, 외면하는 친구들, 무관심한 사회에 지치지만, 결국 ‘엄마 곁에 있기로 한 결정은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라고 자부하는 사람이 된다. 글쓰기는 돌봄자에게 무감한 세상에서 돌봄을 자처하거나 어쩔 수 없이 돌봄을 해야 하는 이들이 돌봄이 지닌 가치를 확신할 수 있게 돕는 수단이다. 무엇보다 모든 사람이 공정하게 돌봄 받을 수 있는 제도와 돌봄 노동이 제대로 인정받는 구조가 필요하다. 희생하는 돌봄자에 기댄 돌봄은 불평등과 갈등을 키우고 사회 전체에 부담을 떠안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0년간의 돌봄을 지나 달리기와 글쓰기를 거쳐 진정한 돌봄이란 자기 돌봄이라는 깨달음에 다다른 김진화는 이 책을 세상에 내놓고 모든 이가 모든 이를 돌보는 ‘돌봄 사회’를 향해 오늘도 나는 듯이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