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기 위해 많은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때론 이런 생각도 합니다.”
이 시집이 출간되어 세상에 나가기 시작하는 12월 4일은 공교롭게도 암투병 끝에 돌아가신 그의 아버지의 생신이다. 이 시집엔 아버지에 대한 시들이 유독 많다. 아버지를 향한 깊은 그리움이 이 시집의 어느 부분들을 태어나게 했을 것이다. “아빠가 해주는 삼겹살김치볶음 먹고 싶어요”라고 투정을 부려보다가, 하루는 아버지의 옛 전화번호로 문득 전화를 걸어본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확인 후 다시 걸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차가운 목소리만 매번 돌아오지만,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전화번호가 있다.(「아빠 번호」, 38쪽)
방송과 무대에서 재치 있는 장면들을 만들어내는 그의 일상과 머릿속을 엿볼 수 있는 재미있는 시들도 눈에 띈다. 그의 하늘엔 아무도 보지 못하고 궁금해하지 않는 공룡과 불사조가 나타나고, 고단한 하루 끝엔 벗어놓은 양말이 ‘세탁기와 벽 틈 사이를 오르다 지쳐’ 멍하니 세탁바구니를 바라본다.
보산 국민학교 운동장/나에게만 보였던/하늘의 거대한 공룡 구름은//디지털미디어시티 광장에서도/역시나 나에게만 보인다.// 부리부리한 눈과/날카로운 발톱의/거대한 공룡이 나타났는데/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제발 누구라도 봤으면 좋겠다./오늘은 공룡 뒤로/불사조도 나타났기 때문이다. (「고개 들어 하늘 봐요」전문, 98쪽)
얼마나 외로웠을까./한쪽 양말/서랍 깊숙이 어두운 곳에/울다 지쳐/엎드려 잠들어 있다.// 짝짝이 양말들 속/한쪽 양말/얼마나 서러웠을까./얼마나 부러웠을까./얼마나 그리웠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한쪽 양말/세탁기와 벽 틈 사이/오르다 지쳐/세탁바구니 멍하니 본다. (「양말」, 108쪽)
“지치고 괴롭고 웃고 울었더니
빛나는 별이 되었다.”
양세형 작가의 시엔 유독 ‘별’의 심상이 많이 등장한다. 돌아가셔서 하늘의 별이 된 아버지, 관객석에서 반짝거리는 눈으로 코미디언들을 향해 박수치는 사람들, 가끔 초라하고 슬프지만 아침마다 자신의 삶을 꿋꿋하게 시작하는 사람들, 그러다 다시 퇴근길 지하철에서 흔들리는 사람들, 세상의 모든 반짝거리는 사람들, 남몰래 울고 싶은 어른들, 이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 와서 ‘별’이 된다.
마냥 웃겨 보이고 행복해 보이는 사람에게도 눈물과 그리움이 있고, 누구의 삶에나 “넘어가는 길 긁힌 팔꿈치에서 느꼈던 아픔 그리고 웃음”이 있다.
그래서 양세형은 계속 쓴다.
“아픔을 닦으면 내일은 웃음이다.”(「1909호」, 174~17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