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용대통신은 1938년부터 1942년까지 총 42기가 발간되었다. 창간호와 2호는 남아있지 않다. 3호∼8기의 발행·통신처는 ‘광서성 계림시 계서로 신지서점(廣西省桂林市桂西路新知書店)’이고, 9기∼22기의 그것은 ‘계림시 수동문외 동녕가1호(水東門外東寧街1號)’이며, 23기∼33기는 ‘계림시 수동문외 시가원53호(施家園53號)’에서 발간되었다. 그 뒤 본부의 이동에 따라 34기는 중경(重慶)의 ‘양로구 중삼로63호 부호(兩路口中三路63號附號)’에서, 35기∼42기는 ‘남안 탄자석 대불전(南岸彈子石大佛段)’에서 각각 발간되었다.
조선의용대통신에 게재된 글은 모두 486편인데, 추도 특집에 게재된 만사(輓詞)와 창설기념호에 게재된 휘호(揮毫)를 제외하면 372편이다. 이 가운데 정세분석을 다룬 글이 165편(44%)으로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는 국제정세와 해방운동 일반, 한중연합문제, 중국전쟁상황, 일본침략정세와 일본국내 관련소식, 전방소식과 격려의 글 등이다.
집필자는 모두 113명이다. 그 가운데 이달(李達)이 가장 중요한 논객이면서 잡지 발간을 주도하였다. 그 외에 유금용(劉金鏞)과 왕계현(王繼賢)·한지성(韓志成)·이정호(李貞浩)·교시(喬矢)·윤위화(尹爲和) 등이 꾸준히 발간을 담당하면서 10차례 이상 원고를 게재하였다.
조선의용대통신의 내용은 4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조선의용대의 활동이 주로 게재되었다. 곧 제1구대의 최전방 활동과 제2구대, 제3구대 및 조선의용대 대본부의 활동상이 정리되어 있다. 둘째, 조선의용대의 활동을 격려하고 조언하는 중국인들의 글도 많이 실렸다. 그 가운데는 기념집회에서 연설한 내용을 옮긴 것도 있고 새로이 기명(記名)으로 투고한 것도 있다. 이 글 중에는 조선인의 처지를 동정하고 조선인의 저항운동을 찬양하는 글도 있고, 중국의 항전을 지원하고 있는 조선인과 조선의용대의 활동에 감사를 표하고 격려하는 글도 있다. 또한 대적(對敵) 선전의 방법 등 실무적인 내용의 글도 있다. 셋째, 조선의용대의 노선에 관련된 글들도 적지 않게 실렸다. 이를 통해서 계림시기에도 초기와 후기에 노선상의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넷째, 목판화가 꾸준히 게재되었다. 목판화는 내용의 간결성과 선명성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는데, 특히 계림에서는 항일운동의 주요한 도구가 되었다. 유명한 중국인 화가들의 목판화가 많이 실렸다.
조선의용대통신은 조선의용대의 전략 개발과 정리 및 전달이라는 기능을 담당하였으며, 조선의용대의 당면 목표나 대외적 주장, 활동을 대외적으로 알리는 홍보 수단이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