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를 해독(解讀)함으로써 해독(解毒)하다
비평과 에세이가 공존하는 〈독설록〉의 ‘독설’은 독설(毒舌)이면서 독설(讀說)이기도 하다. 뻔한 위안을 주는 안전한 명대사 대신 날것 그대로의 말에서 발아해 쓰디쓴 진실을 담아낸 대사와 대목에 우선 주목한다. 〈독설록〉의 부제인 ‘달면 뱉고 쓰면 삼키는 대중문화 해독서’의 ‘해독’ 역시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저자는 영화, 드라마, 만화, 애니메이션, 장르소설 속에서 끄집어낸 장면과 대사에서 이야기를 시작해 종국에는 작품의 함의를 해독(解讀)해냄으로서 해독(解毒)까지 완수해낸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쓰디쓴 콘텐츠까지 꼭꼭 씹어냄으로써 재미와 위안으로 포장한 대중문화의 맹점을 찌른다.
예컨대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복수에 매진하던 피해자 문동은이 내면의 깊숙한 상처를 극복하고자 나아가는 여정을 좇다 보면 소외되고 억압받은 누군가의 일생을 건 투쟁과 그에 서린 의미는 물론 이들을 응원하는 보편적인 심리에까지 다다르게 된다. 만화 〈체인소 맨〉의 주인공인 10대 청년 덴지가 ‘꿈 배틀’을 외치는 다소 우스운 맥락 안에도 〈귀멸의 칼날〉 〈리얼〉 〈리코리스 리코일〉을 비롯한 수많은 작품들이 논했던, 평범을 갈구하는 우리 시대 청년들의 공통 기저가 절묘하게 스며 있다.
문화 콘텐츠, 씹고 뜯고 맛보고 비로소 삼키기까지
〈독설록〉은 질문과 해석을 면밀히 거치면서 이 모든 여정에 독자를 동참시키고자 한다. 우리를 따뜻하게 위무했던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이나 베스트셀러 〈불편한 편의점〉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에조차 의문을 제기하고, 만화 〈도박묵시록 카이지〉와 〈중쇄를 찍자!〉 편에서는 인생에 있어 피할 수 없는 경쟁을 각각 다른 방식으로 바라본다. 영화 〈더 포스트〉와 소설 〈왕과 서커스〉 편에서는 권력에 맞서는 언론 본연의 의무를 되새기고 촉구하기도 한다.
이밖에도 〈독설록〉은 수많은 작품을 통해 결국 독자 스스로 자신의 삶과 현재를 되돌아보게 한다. 작품으로부터 읽어내고 해석하고 추출한 사유를 단초 삼아 독자 역시 자신만의 시각으로 작품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만화 〈장송의 프리렌〉에서 대마법사 플람메가 인간의 짧은 생애 안에 마침내 이루어냈던 그 꿈인 ‘마법의 보편화’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겐 누구나 대중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공론장이 필요하다. 물론 〈독설록〉에서 거론한 수백 개 작품을 알아가는 재미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하지만 조금 더 나아가 인간과 세계, 역사와 미래를 논할 만한 재미있는 기반이 되길 바란다. 실은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이 책 안팎에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