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세기에 인류는 산업사회의 폭발적인 성장을 겪었고 이로 말미암아 지구의 생명 유지 시스템은 전례 없는 압력을 받고 있다. 여러 과학자들은 이제 지구가 홀로세의 한계 조건에서 벗어나 인류세라는 인류가 여지껏 체험하지 못했던 미지의 영역으로 들어서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미 우리는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를 넘어섰을지도 모른다. 홀로세에 꽃피웠던 인류 문명은 이제 거대한 전환 혹은 붕괴와 맞닥트릴 수밖에 없다. 디스토피아가 멀지 않았다는 객관적 데이터에 입각한 과학자들의 비관적 전망이 편협한 이익과 시각에 함몰되고, 여전히 성장과 개발의 가치에 매달리는 정치인과 기업가, 관료와 학자들에 의해 왜곡되거나 애써 무시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자유시장이라는 ‘만병통치약’을 팔고 있는 사람들은 미국뿐 아니라 이곳 한국에서도 넘쳐난다. 그들은 인간을 단지 합리적이고 계산적인 ‘쾌락기계’로 볼 뿐이다. 더 많이 소비하면 욕망이 충족돼서 행복해진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역사를 돌아보면 “실수를 키우고, 진실을 가로막고, 희망을 배반하고, 발밑을 황폐하게 하는 멍청이 요정”(Jean-François Marmion)이었던 인간이 과연 멸종위기에 직면해서는 현실을 냉정히 인식하고 바보짓을 피해 공존과 공생의 지혜를 발휘할 수 있을까?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인 기후위기는 아무런 인과 관계없이 뜻밖에 발생한 것이 아니다. 인간은 평소에는 예방에 소홀히 하다 어떤 파국적 사건을 겪은 뒤에야 비로소 이를 되돌아보고 개선을 서두르곤 했다. 그렇지만 기후위기의 수준과 정도가 되돌리기 불가능한 지점을 통과했다면 더 이상 희망적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류 문명의 토대가 되었던 학문 역시 메타위기에 처한 지구와 인류의 현실 앞에서 이제는 그 근본적인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미래를 걱정하는 이들이 내건 “기후변화가 아닌 체제변화를(system change, not climate change)”이라는 구호에서 보듯이 우리는 이제 인간과 사회뿐만이 아니라 자연을 상품으로 보고 ‘악마의 맷돌’에 집어넣어 분쇄해버리고 있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의 메카니즘을 비판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칼 폴라니는 1939년 발간된 〈거대한 전환: 우리 시대의 정치·경제적 기원〉에서 ‘세계의 공장’ 영국이 세계경제를 가격 메카니즘을 통해 수요와 공급을 자동적으로 조절해주는 시장 자유주의에 기초해 조직하였는데, 이런 기획을 달성하려면 인간 존재와 자연 환경은 순수한 상품으로 전환되어 파괴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무엇보다도 자본주의는 이윤 극대화와 축적에 매달리고, 무한 증식과 성장만을 최우선 목적으로 삼는 체제이자 이념이다. 자원과 노동을 착취해 소수 기득권층에게 부를 집중시키는 체제이기도 하다. 특히나 문제는 스웨덴의 생태학자인 안드레아스 말름(Andreas Malm)이 정확히 지적했듯이 자본이 가는 곳에는 어디나 배출이 즉시 그 뒤를 따른다는 사실이다. 말름은 자본이 끝없는 공간적 조정을 거치면서 지속적으로 자리를 이탈하고, 세계의 노동계급을 약화시키며, 쇠약해진 노동운동의 주변을 돌며 춤추고 있는 동안,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바로 그 똑같은 동역학에 의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된다고 말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화된 자본이 더 강력해짐에 따라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증가 역시 더 급격해진다.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는 자본주의적 시장거래, 교환가치, 물질적 소비와 밀접히 연결된 경제성장이 자연스럽고 필요하며 좋은 것이라는 믿음이 널리 퍼져있다. 물론 경제가 성장을 하면 가난한 사람들이 배고픔과 질병으로부터 벗어날 가능성도 높아진다. 그러나 경제성장이 빈곤의 감소를 가져올 수 있지만 그것이 곧 소득 재분배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이렇게 헤게모니적 지위를 갖고 있는 경제성장에 기반한 체제가 지구적 정의, 웰빙, 지속가능성을 향한 의미 있는 진전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점에 유의하여 마티아스 쉬멜처(Matthias Schmelzer)와 같은 학자들은 특정한 경제활동과 생산 및 소비 형태를 구분하고, 사회적 필요, 정의, 돌봄, 지속가능성을 고려하여 그중 일부는 규모를 축소하고 다른 일부는 번성시키는 탈성장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아울러서 많은 학자들은 사회 불평등과 분열이 극심한 사회, 그리고 견제 받지 않는 권력집단에 의한 비민주적 통치가 이뤄지는 국가에서는 기후위기 같은 재앙이 해결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기후재앙은 보편적인 복지모델과 참여적, 합의적 민주주의 제도 등을 통해 양극화와 사회적 적대감이 완화된 곳에서 보다 효과적으로 대처될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사회적 신뢰와 호혜, 상호의존과 협력에 바탕을 둔 정치적 환경을 조성하지 않은 채로는 어떤 국가도 기후재앙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 이들 민주주의 제도는 사회적 적대감을 누그러트리고 보다 많은 구성원들을 위기 극복에 나서게 한다. 바로 이 같은 점들에 대한 분석적인 사고를 통해서만 대멸종이라는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지경에 처한 호모 사피엔스가 메타위기를 총체적으로 조망하고 성찰한 바탕 위에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타당하고 적실성 있는 방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 즉 생각하는 인간이 여태껏 생존하고 엄청난 위업을 달성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는 바로 사고하고 성찰하며 추론하는, 어쩌면 인간을 종으로서 특징짓는 최고의 능력 때문이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초해서 이 책은 기후위기 시대의 환경정치를 나름의 시각에서 분석하고 있다. 4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크게 문제의 제기 → 이론 → 실제 → 대안이라는 논리적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서론격인 1장은 돌이킬 수 없는 변화의 단계에 접어든 지구의 현실을 조감한 후 기후위기가 왜 중요한지 살펴보고, 앞으로 다가올 우리 지구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에 대한 여러 과학자들의 주장을 소개한다. “환경정치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제목의 1부는 환경정치의 이론을 다룬다. 주요 내용인 환경정치의 정의, 환경정치의 사상적 기반, 정당과 기업의 환경정치, 사회 불평등, 환경정의와 환경민주주의, 위험사회의 환경정치를 분석한다. 2부와 3부는 환경정치의 실제를 지구적 맥락과 한국적·동북아적 맥락으로 나누어 주요 쟁점들을 구체적으로 고찰하고 있다. 지구적 맥락에서는 신사회운동과 환경정치, 기후위기의 대응 유형과 사례, 기후변화협약과 지구온난화의 국제정치경제, 세계인구문제와 호모 사피엔스의 미래, 지구환경문제와 소비의 정치경제. 녹색정치와 환경도시, 빈곤, 기아, 식량의 국제정치경제 등을 살펴보고, 한국적·동북아적 맥락에서는 동북아에서의 경제성장과 환경파괴의 동조화, 동북아 환경문제의 현실, 토건국가에 매몰된 한국과 일본의 정치경제, 4대강 사업의 유산과 선거경쟁의 정치, 한국에서의 환경정치 실험 등의 주제를 검토하였다. 그리고 4부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안을 탈성장과 녹색전환, 그린 글로벌 거버넌스를 중심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환경문제 관련 과목을 개설한 각종 학교에서 교재로 채택되고 활용될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정치학의 분과학문인 환경정치학에 대한 상세한 소개서이기 때문에 이 책의 주된 예상 독자층은 정치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다. 이와 함께, 정치학뿐만 아니라 인접학문인 사회교육학, 사회학, 환경교육학 등을 전공하는 대학생과 환경문제를 비롯한 사회문제를 교양으로 수강하는 대학생이 예상 독자층이다. 이 책은 이들 전공 및 교양수업에서 활용할 목적으로 집필되었기 때문에 환경정치학에서 다뤄지는 거의 모든 주제를 다 포함시켰다. 학생들이 이 책을 통해 환경정치학의 핵심 키워드와 주요 이론, 관련 내용을 체계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상세하게 설명을 했다.
동시에 이 책은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교양도서의 성격도 지니고 있다. 최근 들어와 기후위기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급격하게 커지면서 해당 주제의 책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환경문제를 다룬 책은 국내 주요 온·오프라인 서점에서도 독립적 카테고리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책들은 글로벌 노스의 서구 선진국 중심적인 환경의제만 주로 다루고,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인 한국과 동북아의 맥락에서도 관련 의제와 쟁점을 고찰하는 것은 매우 적다. 이에 더해, 인문·사회과학의 한 분과적 접근에만 치우쳐서 저술한 것이 대부분이다.
이 점에 주목해서 이 책은 맥락에 대한 균형적 고찰과 학제적 접근에도 신경을 써서 집필하였다. 참고문헌과 주석에서 알 수 있듯이 기후위기와 이로 인한 사회변화에 대한 최근 연구를 포함한 광범위한 범위의 국내외 관련도서와 자료를 분석하고 인용한 점도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이다. 무엇보다, 이 책의 존재가치는 기후위기를 비롯한 지구 환경문제를 판단하기 위한 객관적인 분석과 평가를 소개함으로써 이들 학생들과 시민들의 지적 관심에 부응하고, 나아가 무한 증식과 성장만을 추구하는 체제를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도록 정치참여를 자극하고 사회운동을 고무하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