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조적인 위트와 지독히 날카로운 풍자로 고발한
사회의 허위성과 그에 대비되는 한 인간의 순수한 영혼
작가에게 반나치 작가라는 ‘낙인’을 안겨준 문제작!
《파비안》은 세계적인 아동 문학가 에리히 케스트너가 1931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1933년, 나치는 ‘파괴적이고 부도덕한 정신 상태’를 보인다는 이유로 그의 책을 소각하고 금서 처분했다. 《파비안》은 불안과 동요로 가득 찬 1930년대의 베를린을 무대로 하는데, 모든 국민에게 ‘희망찬 세계’의 전망을 주입하고자 노력한 나치에게 케스트너가 포착한 동시대의 혼란은 치명적인 걸림돌이었을 것이다.
‘파괴적이고 부도덕한 정신 상태’라는 낙인과
그 낙인을 거스르는 《파비안》의 운명
소설의 주인공 파비안은 어느 평범한 회사원이다. 파비안은 베를린을 배회하며 온갖 것을 체험한다. 당시 대도시는 인간에게서 영혼을 뽑아버리는, 인간을 기계로 만들어 소모하는, 빠져나오려는 모든 시도가 무위에 그치는 거대한 소용돌이와도 같은 것이었다. 여기서 작품의 문제의식이 자연스레 솟아난다. 순수한 영혼을 가진 사람이자 도덕가인 파비안이 과연 불안으로 가득한 베를린을 샅샅이 경험하고도 여전히 그러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물음 말이다.
사방에서 부패와 부도덕, 악과 몰락이 손짓하는 대도시에서 파비안은 영혼을 가진 사람, 즉 도덕가로서 온 도시를 미친 듯이 헤맨다. 그리고 혼자 힘으로는 무엇도 할 수 없다는 우울에 사로잡혀 체념적 방관자로 도시를 배회하다 결국 한 소년을 구하고 자신은 죽음을 맞이한다. 이 결말은 도덕가인 파비안의 영혼이 시대에 맞서 능동적 주체일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한다. 대도시를 배회하며 내내 혼란만을 느낄 수밖에 없던 그지만, 모든 것을 던져 소년을 구해주어 자신의 의지를 계승해 나갈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다. 주인공 파비안의 운명은 책 《파비안》의 운명과 닮았다. 두 파비안은 각각 죽고 불태워졌지만, 다른 방식으로 계승되어 현대 문명과 파시즘의 폭력을 누구보다 날카롭게 고발하는 역할을 이어갔기 때문이다.
“한낮 햇빛의 직사와도 같은 눈부시게 강렬한 진실의 빛에
독자는 충격을 받을 것이다.” _전혜린
파비안은 단 한 번도 자신을 잊거나 의식하지 않은 채로 행동하지 않는다. 즉, 그는 늘 깨어 있다. 늘 자기 주변을 의식하며 마음과 정신이 게으름에 빠져 폭력에 동조하도록 방치하지 않는다. 이렇게 파비안은 자기 자신이기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으로 저항하고 기록하는 주체가 되었다. 거악 앞에 홀로 선 개인은 늘 외롭다. 그래서 좌절하고 굴복하기 쉽다. 하지만 이 책은 자기 자신의 영혼을 포기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때로는 위대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금서’의 오욕을 뚫고 살아남아 여전히 읽히는 이 책이 그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