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는 지나간 장례식과 같고, 미래는 불청객처럼 온다. 미래를 알려거든 먼저 지나간 일을 살펴보라. 현재는 과거보다 더욱 나의 관심을 끈다. 과거를 슬프게 들여다보지 말라. 그것은 다시 오지 않는다. 현재를 슬기롭게 이용하라. 그것은 그대의 것이다. 남자다운 기상으로 두려워 말고 나아가 그림자 같은 미래를 막으라. 오늘의 일이 의심스럽거든 옛 역사에 비추어보라. 미래의 일을 알지 못하겠거든 과거에 비추어보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노래한 바이런의 글과 같이 지나간 역사와 지금의 현재가 충돌하면서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고 있는 군산 지역을 흐르는 강이 금강이다.
“산은 높고 물은 길다”는 산고수장의 고장 장수에서 시작된 금강의 물줄기가 진안 무주를 지나 충청도 땅을 감싸고 돌아 전라도 땅에 접어든다. 군산이 고향이고, 생의 마지막을 익산에서 맞이했던 채만식은 그의 소설 《탁류》에서 금강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이 강은 지도를 펴놓고 앉아 가만히 들여다보노라면 물줄기가 중등께서 남북으로 납작하니 째져 가지고는 그것이 아주 재미있게 벌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한번 비행기라도 타고 강줄기를 따라가면서 내려다보면 또한 그럼직할 것이다.
저 준험한 소백산맥이 제주도를 건너보고 뜀을 뛸 듯이, 전라도의 뒷덜미를 급하게 달리다가 우뚝… 높이 솟구친 갈재(노령)와 지리산의 산협 물을 받아 가지고 장수로 진안으로 무주로 이렇게 역류하는 게 금강의 남쪽 줄기다. 그놈이 영동 근처에서 다시 추풍령(秋風嶺)과 속리산의 물까지 받으면서 서북으로 좌향坐向을 돌려 충청 좌우도의 접경을 흘러간다…. 부여를 한바퀴 휙 돌려다 가는 남으로 꺽여 놀뫼(논산(論山)) 강경에까지 들이 닫는다.”
채만식이 《탁류》에서 묘사한 금강이 강경을 지나 전라도의 익산 땅으로 접어들어서 성당창과 웅포를 지나 나포에 이른다. 비단강이라고 이름 지은 금강은 다섯 성인의 자취가 남은 오성산과 한산 모시의 고장 서천 사이에 가로놓인 금강 하구둑 에서 강으로서의 생애를 마무리 하고 서해로 들어간다.
완주 거쳐 익산과 군산이라는 도시를 흘러 바다에 가 닿는 만경강은 또 어떤가. 완주군 동상면 사봉리에서 비롯된 만경강이 고산과 봉동, 삼례의 비비정을 지나서 춘포에 이르고 오산면의 목천포를 지나 군산과 김제 사이를 가로지른 새창이 다리에 이른다.
그곳에서 강을 수놓은 갈대 잎 사이를 헤집고 진봉면 심포리의 망해사에서 몸을 풀던 만경강이 새만금 간척 사업에 가로막혀 새만금 방조제를 지나야 서해에 이른다.
금강과 만경강 사이에 자리 잡은 도시, 군산은 먼 옛날은 백제의 땅이었다.
하지만 신라에 병합된 이후 공주나 부여와 마찬가지로 역사의 뒤안길에 들어갔다가 견훤이 `후백제를 세우면서 새롭게 용트림을 했다. 그러나 후백제도 삼한통일의 대업을 이루지 못하고 고려의 왕건에게 합병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 이전, 고려 말에 군산의 하구인 진포에서 왜구를 크게 무찌른 최무선의 진포대첩의 현장이 군산이고, 이 싸움이 이성계가 왜구를 크게 무찌른 황산대첩의 실마리를 제공했다.
군산은 조선 후기인 1989년에 나라 안에서 일곱 번째로 개항이 되었다. ‘개항(開港)’이란 말 그대로 ‘외국인이 왕래하고 무역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특별히 허용된 지역’이란 뜻이다. 1909년에 조선총독부의 전신인 조선통감부의 조사에 의하면 군산항의 전채 수출액 중 95퍼센트가 쌀이었다. 개항이 되면서 군산은 놀랍도록 변모를 했으나 정작 군산에 살고 있던 군산 사람들의 사람은 비참하기만 했다.
“급하게 경사진 언덕 비탈에 게딱지 같은 초가집이며 낡은 생철 집 오막살이들이 손바닥만한 빈틈도 남기지 않고 콩나물 길 듯 다닥다닥 주어 박혀 언덕이거니 짐작이나 할 뿐이다. 이러한 몇 곳이 군산의 인구 칠만 명 가운데 육만 명도 넘는 조선 사람들의 거의 대부분이 어깨를 비비면서 옴다옴닥 모여 사는 곳이다. 대체 이 조그만 군산 바닥이 이러한 바이면 조선 전체는 어떠한 곳인고, 이것을 생각해 보았을 때의 승재는 기가 탁 질렸다.”
채만식이 소설 《탁류》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 당시 군산의 인구 칠만 명 가운데 만 명의 일본인들이 군산의 중심가에서 살았고, 조선인들은 겨우겨우 살고 있었다.
해방이 되고, 한국 전쟁을 거쳤음에도 군산은 별로 변하지 않아서 1970년 말만 해도 두 집 건너 한집이 일본식 가옥이었으니 그 당시는 어떠했을까?
눈물 없이는 회상할 수 없는 일제강점기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오늘날의 군산 관광의 한 축이 되었으니, 역사란 얼마나 많은 비밀들을 숨겨 놓고 후대를 살아갈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가를 추론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재에 이른 군산, 먼 훗날에는 어떤 모습으로 변하고 또 변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고군산군도를 품고 있는 군산의 역사와 문화 속으로 천천히 들어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