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묘한 맛이 기대되는 장혜순의 수필
장혜순 수필의 현주소
독자로부터 아낌을 받는 수필을 만들려는 다방면의 실험이 강구되고 있다. 1인칭 위주에서 벗어나려고 하는가 하면, 소재의 참신성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또 다른 방법으로 수필의 길이에 대한 논의도 분분하다. 10~15매의 길이에서 벗어나 5매 이하로 내용의 축약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장혜순의 수필 여러 편에서 단수필의 경향이 읽혀진다. 단순한 길이만의 문제가 아니라 짧은 길이 안에서 어떻게 하면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빚어내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 짧은 수필은 단수필, 5매 수필, 손바닥 수필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며, 간단히, 짧게, 빨리빨리와 같은 시대의 흐름에 따르고 있다. 분량이 줄어드는 대신 밀도는 당연히 높아져야 한다. 짧은 글 속에 서론, 본론, 결론이나 기승전결과 같은 구조로 함축적 메시지를 담아내야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배추가 공짜였어요」, 「바위 앞에서」, 「금오천이 벚꽃을 안고」, 「늦가을이 내린다」, 「시장 풍경」, 「달콤한 늦잠」, 「관광버스에 오르니」 등 얼핏 봐도 5매 내외의 단수필이면서 짜임이 탄탄한 작품이 눈에 띈다. 시대의 트렌드를 앞서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장혜순 수필의 더 큰 성장과 발전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한 가지 조언을 하자면, 소재 선택에 있어 시야를 넓히고, 깊이 있는 문장으로 표현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라는 점이다. 누구나 생활 범위가 한정되어 있거나 비슷하지만 바라보고 생각하는 각도와 깊이를 더하게 되면 전혀 다른 글로 표현될 수 있다. 그런 작품이어야 머리에만 전달되는 이해에서 더 나아가 가슴에 울림을 주는 문학이나 예술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20년 전인 2005년에 쓴 작품이자 이번 수필집의 표제작 「달콤한 늦잠」을 볼 때 그 가능성은 충분하다.
내가 아직 이불 속에 있을 때 친구는 새벽을 열고 산뜻한 공기를 호흡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정신이 번쩍 든다. 그럼에도 다음날 난 알람 소리를 듣고서야 일어난다. 난 왜 이렇게 잠이 많은지 모르겠다. 정신력의 부족 탓일까!
“누구에게나 시간은 똑같이 주어진다. 성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는 없고, 걸어 올라갈 계단이 있을 뿐”이라는 말이 있다. 누구에게나 일 초, 한 시간씩 거쳐야 비로소 하루가 지나간다. 똑같이 주어지는 이 소중한 시간을 한 계단, 두 계단 땀 흘려 오를 수 있어야 고지에서 맞는 기쁨도 그만큼 배가 되리라.
-「달콤한 늦잠」 재정리
달콤한 늦잠으로 출근이 시간에 쫓겼던 어느 하루의 일상에서 작품의 실마리를 건져 올려서 더 큰 성찰로 이끌어 가는 작품과의 만남은 독자의 행복이다. 잠재되어 있는 가능성이 용암처러 분출되어 주변을 채우고 널리 세상으로 퍼져 나가리라 믿는다.
장혜순 수필의 미래
인생을 살아가면서 사건들과 만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생활 속에서 생각하고 고뇌한 사실들이 가슴 안에서 돌고 돌아서 마침내 작품이 된다. 그 작품에 작가의 사색과 체험의 산물이 녹아 있다. 우리는 작품을 통하여 작가의 평소 색깔을 발견할 수 있다.
장혜순은 일상의 이야기들에 각도와 깊이를 더하여 한 권의 수필집을 내었다. 언제 어디서나 수필의 끈을 놓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길고 긴 숙성의 세월을 거쳐 이제야 첫 작품집을 선보이게 되었다. 수필집 전편에 틈틈이 연마해 온 수준 높은 자작 캘리그라피를 곁들여 독자들에게 부드러운 친근감을 선사하고 있다.
흔히들 수필은 연륜의 문학이라 한다. 그만큼 연륜이 쌓여야 맛깔나는 작품이 빚어지게 된다는 말을 앞에 놓고 장혜순의 수필을 생각한다. 그의 작품에 녹아 있는 세상살이의 지혜가 독자들에게 작은 느낌으로 전해 온다. 머리에만 전달되는 이해에서 한발 더 나아가 가슴에 울림을 주고 있음이다. 오늘을 본격 수필의 시작 지점으로 생각하고 계속 달려 나간다면 깊이에다 오묘한 맛까지 더해지리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