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헌정 체제는 민주주의 국가와 어떻게 다른가?
중국 헌법의 다섯 가지 원칙과 구현 시스템 분석
공산당이 영도하는 중국의 헌정 체제는 독특한 특징이 있다. 헌법에 근거하여 국가권력을 제한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체제인 ‘입헌주의’나 ‘헌법 체제’와 그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중국은 공산당 영도 체제와 국가 헌정 체제가 매우 밀접하게 결합해 있다. 당-국가 체제는 공산당 영도 체제와 국가 헌정 체제로 구성되어 있고, 실제 정치과정에서 당이 국가를 영도할 뿐만 아니라 종종 대체하는 권위주의 정치체제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헌법 원칙은 다섯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공산당 영도 원칙, 둘째는 인민주권과 인민대표대회 제도, 셋째는 민주집중제 원칙, 넷째는 민족자치 제도, 다섯째는 의법치국(依法治國: 법률에 근거한 국가 통치) 원칙이다.
중국의 헌정 체제는 의회(전국인대와 지방인대), 정부(국무원과 지방 정부), 정법기관(政法機關) 혹은 사법기관(司法機關)으로 구성된다. 이러한 체제는 공산당 영도 하에 서로 유기적 관계를 맺으며 각기 역할을 담당한다. 즉, 중국 정치제도의 조직 원칙은 ’민주집중제‘로서 ‘중앙의 통일 영도를 전제’로 삼고 있으며 규정보다는 현실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작동한다. 따라서 중국 헌정 체제를 살펴볼 때는 기관을 개별적 파악하기보다는 공산당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실제 구현 방식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책 집행에 집중하는 관료조직인 중국 정부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 간 명령과 복종의 영도 관계 분석
중국 정부는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로 나뉜다. 이 점은 다른 나라와 비슷하다. 정부의 공식 명칭은 ‘인민정부’이며, ‘중앙 인민정부’와 ‘지방 인민정부’라고 부른다. 중앙 인민정부를 ‘국무원(國務院, State Council)’이라고 칭하는데, 중국의 국무원은 단순한 중앙 정부일 뿐 아니라, 각급 지방 정부와 기층 정부에 대해 명령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최고 국가 행정기관’이다. 지방 정부는 행정등급별로 ‘성급(省級: 성·자치구·직할시)’, ‘시급(市級: 시·자치주)’, ‘현급(縣級: 현·시·구)’ 정부로 나뉜다. 상·하급 정부 간의 관계는 상·하급 공산당 조직 간의 관계처럼 명령과 복종의 ‘영도 관계’다.
중앙 정부인 국무원과 각급 지방 정부는 국가 헌정 체제를 주도하는 국가기관이다. 개혁기에 들어 정부 역할은 더욱 확대되고 강화되었다. 공산당이 추진하는 개혁·개방 정책, 즉 시장화·사유화·개방화·분권화 정책은 대부분 정부가 집행해야 하는 업무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중국 정부는 다른 국가의 정부처럼 방대한 조직과 인원을 보유한 관료조직으로 변화했다.
중국에서는 공산당 중앙이 정책 주도권을 장악하고 하향식 정책 집행을 전개한다. 정부의 관료조직은 정책의 ‘결정’에는 관여하지 못하지만 ‘집행’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특징이 있다. 특히 코로나19 같은 위기 시기에는 공산당 중앙의 정책 결정권을 독점하고 관료조직이 일사불란한 집행으로 조직 역량을 ‘총동원’하며 대규모 대중 동원하는 모습을 보인다. ‘정부 계통(政府系統)’은 ‘의회 계통(人大系統)’이나 ‘법원 계통’과는 달리 막강한 힘을 동원할 수 있다. 이는 ‘공산당 계통’과 ‘군 계통’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국가 헌정 체제를 분석할 때는 정부 활동을 반드시 분석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헌법과 법률을 제정하는 중국 의회
개혁, 개방 정책으로 인해 점점 역할이 강화되는 이유
중국 의회는 중앙 의회와 지방 의회로 나뉜다. 중앙 의회의 정식 명칭은 ‘전국인민대표대회’이며 ‘전국인대(全國人大, NPC)’라고 줄여 부른다. 흔히 이를 ‘전인대(全人大)’라고 부르는데, 이는 명백한 잘못이다. 지방 의회의 명칭은 ‘지방인민대표대회’고, 약칭은 ‘지방인대(地方人大, LPCs)’다. 전국인대와 지방인대는 입법기관으로서 헌법과 법률을 제정한다. 이와 함께 다른 국가기관을 감독하는 역할, 국민의 의견을 대변하는 대의 역할, 공산당 통치를 정당화하고 합법화하는 체제 유지 역할을 담당한다.
중국의 의회 활동은 개혁기 들어서 본격화됐으며 시간이 갈수록 더욱 강화되고 있다. 개혁·개방 정책이 의회의 역할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중국 국가 헌정 체제를 분석할 때는 전국인대와 지방인대의 입법·감독·대의 활동에 주목해야 한다. 중국 의회는 상급 인대가 하급 인대의 활동을 감독하고, 문제가 있는 활동은 시정을 지시할 권한을 보유하는 ‘감독 관계’다. 그러나 상급 인대와 하급 인대 간의 관계는 ‘영도 관계’, 즉 상급 인대가 명령하면 하급 인대는 복종하는 관계는 아니다.
중국 의회의 독특한 특징으로 ‘이중구조 현상’과 ‘선택적 역할 강화 현상’을 꼽을 수 있다. 이중구조 현상은 중국 의회가 사실상 두 개로 운영된다는 것이다. 즉 전국인대 상무위원회가 전국인대와는 다른 구성·조직·권한을 가지고 기능한다. 전국인대 상무위원회는 전국인대를 폐회 기간에 잠시 대신할 뿐만 아니라 사실상 대체함으로써 강력한 위상과 역할을 갖는다. ‘선택적 역할 강화 현상’은 중앙 및 지방 의회가 행정단위별(級別)로 비교적 분명한 차이를 보이면서 역할이 강화된 것을 말한다. 전국인대는 입법을 중심으로 역할이 강화되었고, 현급(顯級) 인대는 감독을 중심으로 역할이 강화되었다. 반면 성급(省級) 및 시급(市級) 인대는 전국인대와 현급 인대의 중간에 위치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
중국의 정치 제도화와 민주화 딜레마
법제화된 통치 방식과 민주화 압력 사이의 갈림길
중국은 지난 40여 년간 정치 민주화가 아닌 정치 제도화를 목표로 개혁을 추진하며, 법률제도 확립과 행정 효율화를 통해 경제 발전과 사회 안정을 유지해왔다. 1987년 ‘당정분리’ 방침이 실패한 후, 1997년 ‘의법치국’ 방침이 도입되어 통치 방식의 법제화를 강조했으나, 국민의 정치적 자유와 참여는 제한되었다. 중국은 사회주의 시장경제와 의법치국 방침을 결합한 발전 모델을 구축했지만, 장기적으로 민주화 압력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중국은 정치 제도화를 유지하거나 민주화로 나아가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중국을 제대로 이해하고 적절히 대응하는 일은 현재 대한민국 국제정치의 최대 과제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중국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사실, 한국인이 중국을 이해하기란 근본적으로 어렵다. 중국과 한국의 정치 체제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 정치는 매우 은밀하게 작동한다. ‘외부인’이 알려고 다가가더라도 그 은밀한 속사정까지는 들여다볼 길이 없다. 공산당 조직과 운영은 더욱 그렇다. 이 책을 통해 중국 정치의 독특한 ‘실체(實體)’와 ‘실제 모습(像)’에 접근함으로써 중국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