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라서 가능한 미래
- “나는 나무가 가득한 숲에 들어앉은, 할아버지가 된 나를 그려보았다.”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체가 벽돌을 진 듯 짓눌린 삶을 살고 있다. 그 짐을 좀 내려 놓고 쉬면 안 될까? 윤성중은 이 모든 생명체들을 다른 곳이 아닌 ‘산’에서 만난다. 그는 무엇보다 ‘산에서 대화하기’를 즐기는데, 그것은 나누기 힘든 얘기들이 산에서라면 가능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가장 친한 선후배와 또 때로는 아주 어색한 협력 업체 직원과, 그리고 때로는 사람뿐 아니라 나무나 달팽이 같은 산에서 사는 생명체들과도 대화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어느 날 그의 아내가 묻는다. “만약에 둘 중 하나가 세상을 뜨면 남은 한 사람은 대체 뭘 하면서 살까?” 윤성중은 이 쓸쓸한 질문을 안고 다시 산으로 향한다. 늘 걷던 길이지만 똑같지 않다. 이때 자연은 찬미의 대상이 아니라 비로소 ‘지금’을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가 된다. 그저 산을 채우는 나무라고 생각하고 넘겼던 각 존재들의 이름을 상기하고 그들이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음을 새삼 깨닫는다. “그날 오후 나는 집 뒷산으로 갔다. 슬픈 감정을 품고서가 아니라 설레는 마음으로. 노년에 나와 놀아줄 친구를 찾으러 가는 느낌으로. 그러자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는데, 이전에는 나를 둘러싼 것들이 그냥 ‘나무’ 혹은 ‘풀’이었다면 이 순간 나는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진정한 생명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작가는 말한다. 수많은 생명이 우리의 곁에 있다는 것을 자각할 때 우리가 얻는 것은 ‘공동체 감각’이다.
윤성중은 이 공동체 감각으로 유한한 존재로서의 불안을 이기며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한여름에도 에어컨 없는 삶을 살며 정말 힘겨울 때는 깊은 산 계곡으로 향한다. 사라질지 모르는 약수터를 조사해 찾아다니고, 산에 있는 새들을 알기 위해 탐조 산행을 하며, 몇 남지 않은 ‘오프라인‘ 매장을 찾는다. 《등산 시렁》이 이끄는 길로 따라 가다 보면 독자들은 주변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된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친절한 안내와 함께 자신만의 보폭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누구에게 이해받지 못할지라도, 모험이 주는 선물
- “산에서 달릴 때 나는 어린애가 된 것 같다.”
목표라는 것은 상식과 이해를 기반으로 하지 않는다. ‘정상적‘으로 잘 굴러가는 삶 속에서 이유 없이 헛헛함을 느낀다면, 상식과 이해 이상의 무엇이 우리에게 필요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윤성중은 이러한 삶에 새로운 숨구멍을 찾기 위해 ’농담’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천천히’ 가는 길을 즐기는 한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극기‘에 도전하기도 한다.
그는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새벽 달리기, 퇴근 후 달리기, 산에서 달리기에 도전한다. 불암산에서 시작해 수락산, 사패산, 도봉산을 거쳐 북한산을 한 번에 완주하는 ‘불수사도북’에 도전하기 위해 훈련을 해나가며 마침내 완주한 날을 기록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는 목표를 세우고 실행해 옮기는 마음에 대해 생각한다. 자신만의 목표를 가지고 차근차근 이루어나갈 때 어떤 기쁨을 만날 수 있는지 이야기한다. 목표를 이룬 “덕분에 나는 내가 이전보다 더 나아졌다고 여겼고 나아진 나의 능력으로 더 큰 일을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넘쳤고, 그로 인해 더 큰 기쁨을 가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지극히 개인적인 목표이기에 이해받지 못할지라도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바꾸기에는 충분하다고 윤성중은 《등산 시렁》을 통해 고백한다. 아주 작은 소망도 목표가 되어 실현하게 된다면, 우리는 더 큰 꿈을 꾸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닐지 모른다. 《등산 시렁》에는 소망을 갖게 하는 작은 움직임이 있다. 그 움직임의 시작에 더 많은 독자가 함께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