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데 어째서 여자가 여자를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일까.”
1930년대 에스(エス) 문화와 계속되는 소녀들의 사랑
「마사코와 마키」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마사코’와 ‘마키’라는 이름을 지닌 두 여학생이 주인공이다. 마사코가 마키에게 보내는 편지로부터 시작되는 이 소설은 탐정 소설로서의 서스펜스보다는 두 사람이 주고받는 서신에서 포착되는 관계성이 훨씬 더 흥미롭게 다가오는 작품이기도 하다. “나의 귀엽고 귀여워서 삼켜 버리고 싶은 너에게”라든가 “마키는 언니의 영원한 시녀입니다.” 같은 표현들은 남성 작가인 오구리 무시타로에 의해 상상된 여성 간 사랑의 표현 방식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거침없이 솔직하게 표현하는 여성(여학생) 표상이라는 점에서 동시대의 다른 작품들 속 여성 표상과 비교해서 읽을 때 그 의의가 더 잘 드러난다. 역자가 〈부록〉으로 실은 「그 여자들은 왜 철도 자살을 하였나?」는 식민지 조선의 대중 잡지였던 『별건곤』에 1931년 5월 1일 실린 글이다. 실존 인물인 홍옥임과 김용주의 자살 사건을 다루고 있는 글로, 마사코와 마키의 이야기와 견주어 읽는다면 당대 여성을 둘러싼 소설의 환상과 현실의 격차가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마사코와 마키」는 소위 말하는 ‘열린 결말’의 형태로 끝을 맺는다. 과연 마사코와 마키는 이후에 어떻게 되었을까? 오구리 무시타로가 계속해서 에스 소설을 쓸 수 있었다면 그녀들의 또 다른 이야기가 이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1940년대에 일본이 총력적으로 들어서자, 유희 소설들이 지면에서 사라지며 「마사코와 마키」는 오구리 무시타로의 마지막 에스 탐정 소설이 된다. 여성 간의 애정, 연대, 가부장적 질서에의 탈주 등 「마사코와 마키」에 숨겨져 있던 작은 씨앗들이, 시대를 넘어 다양한 여성 서사들에서 어떤 모습으로 만개하였는지 찾아보는 것도 이 작품을 즐길 수 있는 한 방법이다. 마사코와 마키의 무수한 변주를 상상하며, 미완의 이 이야기를 즐겁게 곱씹어 보시기를 권한다.
◆ 틈에서 찾은 이야기, 틈 많은 책장에서 보내는 편지
술 도매상 가계를 둔 덕분에 유복했던 어린 시절, 중학교 졸업 후 전기 회사 취업, 20대 초 인쇄소 설립 및 4년 만의 도산, 30대 초 탐정 소설로 데뷔, 끝없는 책 수집과 생활고, 육군 징집, 45세에 뇌내출혈로 사망…. 작품 속에서 찾기 어려운 시대의 흔적은 아이러니하게도 오구리 무시타로의 삶 전반에 짙게 드리워져 있다. 1933년 데뷔 이래 오구리 무시타로가 가장 왕성하게 창작 활동을 한 10여 년은, 1920~30년대 초 인쇄 출판의 범람과 이에 호응하며 활기를 띠었던 대중문화가 일본 군국주의의 강화로 인해 급격히 쇠퇴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 아슬아슬한 시대 분위기 속에서 「마사코와 마키」 또한 탄생했다. 오구리 문학에 새겨진 ‘이단’의 기운은 시대를 방관하고 외면한 결과일까, 아니면 시대를 찌르는 방편이었을까. 그에 대한 답은 독자들의 판단에 맡긴다.
◆ 번역자가 보내는 편지
오늘날 일본에 대한 한국인의 관심은 이만저만 높은 것이 아닙니다. 관광지나 일본 음식, 아니메(アニメ)와 닌텐도만이 아닌 일본이 궁금하신 분, 근대 일본 문학과 문화를 더 깊이 알고 싶은 분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에스 탐정 소설 「마사코와 마키」가 전해 주는 이상한 나라의 색다른 이야기를 통해 에로, 그로, 넌센스 시대의 한 단면을 맛보시고 우리가 알지 못했던 일본 문학의 재미와 의미에 대해 탐구해 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