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역의 힘든 것이 실로 창작 이상의 어려운 것이다”
1920년 주요한은 “번역의 성행”이 우리 문예의 발달을 위한 필수 조건이라는 논지를 전개하며 “번역이라면 일반이 멸시하지만 번역이란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다. 어떤 때는 창작보다도 더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창조』 7)라고 강변한 바 있다. 동시대에서 비슷한 발화자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번역의 힘든 것이 실로 창작 이상의 어려운 것인 줄 압니다.”(『개벽』 25, 1922)라고 한 현철, “누구나 번역이라는 일을 하여 본 이는 다 아는 바와 같이 번역이라 함은 원래 창작보다도 어려운 일이외다.”(『반역자의 모(母)』, 1924)라고 한 신태악, “시의 번역이라는 것은 번역이 아닙니다. 창작입니다. 나는 창작보다도 더한 정력 드는 일이라 합니다.”(『잃어진 진주』, 1924)라고 한 김억 등이 여기 해당한다.
그 문인들이 창작 이상의 어려움을 감수하면서까지 번역의 시간을 축적해나갔던 이유는 결국 주요한이 말한 “우리 문예의 발달”이라는 방향성을 모두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공유했기 때문이다. 형형색색의 번역물을 남긴 이들이 다름 아닌 한국근현대문학사의 주역들, 이를테면 홍명희, 최남선, 이광수, 진학문, 전영택, 조명희, 황석우, 김억, 김명순, 김일엽, 염상섭, 변영로, 홍난파, 방정환, 김동인, 김광주, 양건식, 현진건, 주요한, 홍사용, 이상화, 김동환, 박영희, 최서해, 박종화, 주요섭, 김소월, 나도향, 정지용, 노자영, 양주동, 김기진, 김진섭, 이익상, 김형원, 최승일, 박화성, 오천석, 송영, 이태준, 박용철, 조춘광, 이헌구, 정인섭, 강경애, 이주홍, 이효석, 임화, 최재서, 김유정, 박태원, 함대훈, 노천명, 백석, 이하윤, 김사량, 김수영, 김남주 등이었다는 점이 이를 잘 뒷받침한다. 개개인의 실천 방식이나 작업량에는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그들에게 번역과 창작은 ‘조선 문예의 발달’을 지향한 도정 위에 함께 붙박혀 있는 것이었다. 실제로도 번역과 창작을 넘나든 그들이었기에 ‘번역이 창작보다 어렵다’고 토로할 만한 온당한 자격을 갖추고 있었던 셈이다. 둘을 자연스럽게 비교하는 인식 틀은 이러한 배경 속에서 형성되었다.
● “결국 ‘나’의 번역에 호응하여 함께 해줄 ‘너’를 찾고 언젠가 그들이 ‘우리’가 되는 날”
이 책의 전체 구성은 5부이며 총 22편의 논문이 수록되어 있다. 단권의 연구서로는 최대치에 가까운 편수이자 분량이다. 이에 각 부에 여는 글을 배치하여 해당 파트의 의의 및 수록 논문들의 개요를 쉽게 파악할 수 있게 하였다. 제1부 〈번역, 한국 근대문학의 원천〉은 박진영, 제2부 〈번역의 조건과 언어의 경계〉는 이종호, 제3부 〈토대로서의 중역과 동아시아〉는 구인모, 제4부 〈세계문학과 식민지 번역장〉은 손성준, 제5부 〈냉전과 번역〉은 황호덕이 여는 글을 담당했다.
『한국근현대번역문학사론』을 만드는 과정에서 연구자의 연대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절실히 깨달았다. 힘을 모아 함께 말할 때, 그 의지는 종종 언어나 텍스트의 한계를 초월하며 때로는 세상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한국근현대번역문학사의 주체들이 꿈꿨던 것도 결국 ‘나’의 번역에 호응하여 함께 해줄 ‘너’를 찾고 언젠가 그들이 ‘우리’가 되는 날이 오는 데 있었을 터다. 연구자의 길도 본질적으로 상통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이후의 우리는 또 누구와 함께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