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세계
이혜순 시인의 시가 놓여 있는 지점은 생활 한가운데이다. 시인은 일상 속에서 흔히 접하므로 쉽게 지나치게 되는 사소할 수 있는 사건들에 시선을 멈추고는, 그것에 섬세한 관찰력과 독특한 시각을 투영시킨다. 시인의 시에는 도로를 달리는 자전거가 있고(「속도의 뒷면」), 붕어빵을 나누어 먹는 노인과 아이가 있으며(「붕어빵 가시」) 모란(「사월」)과 장미(「줄장미 담장」), 새(「휘파람새」)와 두꺼비(「두꺼비」), 다랑어(「다랑어」), 게(「도둑게」), 전복(「전복」) 등 생활 속 편린들이 담겨 있다. 이들 소재들은 시인의 시가 구체적 생의 체험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처럼 일상을 살아가면서 시인은 그 안에 스며 있는 철학을 놓치지 않는다. 그는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순간, 스치는 사물, 사소한 대화 속에서 깊이 있는 사유를 끌어낸다. 세상에 흩어져 있는 모든 존재들에게 말을 걸면서 시인은 그것들을 한 편 한 편의 시로 아름답게 승화시킨다.
시들에 투사되어 있는 시인의 생의 철학은 단적으로 말해 인간다움의 회복을 향해 있다. 시인이 일상의 체험들에서 주목하는 것은 존재들이 맺어가는 관계성이다. 그는 생활 속에서의 사태들 속에서 연민과 사랑, 공감과 위안, 인내와 포용을 읽어낸다. 그가 바라보는 존재들에게서 그는 그들 간의 끈끈한 얽힘을 포착한다. 이러한 시적 양상은 시인이 견지하는 철학이 긍정적 가치를 바탕으로 형성되어 있음을 말해준다. 세상의 모든 존재들을 향해 온기 어린 시선을 던지는 시인은 그들이 안고 있는 아픔과 고통을 미적 형태로 승화시키고자 한다. 시인의 시에는 이러한 시적 과정이 매우 안정적으로 구조화되어 있는바, 이것이야말로 시인이 추구하는 삶의 아름다움이자 시적 미학이다. ― 김윤정(문학평론가) 해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