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익 교수의 『칼 슈미트의 대지의 노모스 읽기』는 칼 슈미트의 『대지의 노모스』를 해설하고 분석하는 데 초점을 맞추며, 슈미트의 국제법 이론을 현대적 맥락에서 재조명한다. 이 책은 단순히 슈미트의 사상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의 이론이 오늘날의 국제정치적 상황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특히, 슈미트가 제시한 ‘대지의 노모스’ 개념은 국제법의 근원적 질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로 작용하며, 이는 현대 국제정치의 혼란과 위기를 해석하는 데 유용한 프레임을 제공한다.
슈미트는 『대지의 노모스』에서 전쟁과 평화의 관계를 동전의 양면으로 설명한다. 평화는 전쟁의 부재가 아니라 전쟁을 제한하고 억제한 결과물이다. 이러한 관점은 현대 국제정치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오늘날의 국제질서는 전통적인 주권 국가 간의 갈등을 넘어, 비국가 행위자, 다국적 기업, 그리고 초국가적 이슈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양상을 보인다. 슈미트가 강조한 ‘정당한 전쟁’ 개념은 이러한 복잡성 속에서도 여전히 국제법의 핵심적 논쟁점으로 남아 있다. 특히, 미국의 ‘세계경찰’ 역할과 같은 현대적 현상은 슈미트의 이론을 통해 재해석될 필요가 있다. 미국의 군사적 개입이 ‘경찰 행동’으로 규정되면서 전쟁의 개념이 희석되고, 이는 국제법의 전통적 틀을 흔들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슈미트가 예견한 바와 같이, 국제법의 근본적 질서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혼란을 반영한다.
에필로그에서 최형익 교수는 슈미트의 ‘대지의 노모스’ 개념이 냉전 시기를 거치며 어떻게 변모했는지를 분석한다. 냉전은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초강대국이 이데올로기적 대립을 통해 새로운 공간질서를 창출한 시기였다. 이는 슈미트가 말한 ‘대지의 노모스’의 변형된 형태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탈냉전 이후의 세계는 이러한 질서를 대체할 새로운 노모스를 창출하지 못한 채 혼란에 빠져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현대의 분쟁은 이러한 공간적 질서의 부재에서 비롯된 결과로 해석될 수 있다. 슈미트의 이론은 이러한 현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하며, 동시에 새로운 국제질서의 창출을 위한 방향성을 제시한다.
결론적으로, 최형익 교수의 『칼 슈미트의 대지의 노모스 읽기』는 단순한 해설서를 넘어, 현대 국제정치의 근본적 문제를 성찰하는 데 중요한 지적 도구로 기능한다. 슈미트의 이론은 전쟁과 평화, 주권과 국제법의 관계를 재고하는 데 여전히 유효하며, 이는 오늘날의 복잡한 국제정치적 상황을 해석하는 데 필수적인 프레임을 제공한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단순한 지적 만족을 넘어, 현실 정치의 혼란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는 데 필요한 통찰을 제공할 것이다.